표현의 자유는 민주사회의 기본이다. 한일 관계가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대 위기에 처한 지금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불만을 품은 일본 정부가 한국 기업에 대해 수출규제를 단행한 것의 연장선상이라는 이야기에 더욱더 기가 찬다. 비정상적인 일본 정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일본은 자국 최대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출품된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강제로 중단시켰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과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의 통보로 철거됐다. 소녀상이 출품된 ‘표현의 자유, 그 후’ 전시는 일본 정부의 외압으로 전시되지 못한 현대미술 작품을 한데 모은 트리엔날레의 기획전이다. 전시는 사흘 만에 소녀상과 함께 통째로 중단됐다. 표현의 부자유가 그대로 입증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일본 정부는 독일에서도 소녀상 전시를 막기 위해 압박을 가했다. 일본 대사관은 베를린의 여성 예술가 전시관인 ‘게독’에 공문을 보내 철거를 요구했다. 전시관은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출품된 것과 같은 김운성, 김서경 작가의 소녀상을 지난 2일부터 전시하고 있다. 독일의 또 다른 전시에서는 10㎝ 크기의 소녀상이 일본의 집요한 요구로 결국 지난해 철거된 일도 있었다.
믿기 어려운 사실은 일본 정부가 문화 행사에 직접 개입하고 압력을 가한 점이다. 자기 주장과 맞지 않으면 표현의 자유까지 억압할 수 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전형적인 전체주의적인 발상이다. 이 때문에 일본은 안팎의 질책에 시달리게 됐다. 일본 문화계에서조차 역사적 폭거이며 전후 일본 최대의 검열 사건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아사히신문 등 언론도 일부 정치인의 압력과 우익의 협박을 비판했다. 국제사회도 일본의 옹졸과 독단을 지적하고 있다. 무엇보다 일본은 이번 일로 민주주의 국가가 맞느냐는 소리까지 듣게 된 점을 반성해야 한다.
감민진 성전초 교사
# 어린이 사설 쓰기
중국에서 유방과 함께 천하를 통일한 한신은 남다른 지략과 더불어 사람을 포용할 줄 아는 마음가짐이 그를 대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한신은 푸줏간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동네 건달들이 한신에게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야! 푸줏간 칼을 찬 모양이 그럴듯한데 한 판 붙어 보자! 자신 있으면 나에게 덤벼 봐. 만약 싸울 용기가 없다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 한신은 분노가 끓어올랐습니다. 당장이라도 칼을 뽑아 들고 건달을 해치워 버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한신은 큰 일을 이루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그 순간을 참고 또 참았습니다. “어서 덤벼 봐!” 건달이 다시 소리 쳤습니다. 건달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한신은 아무 말 없이 그의 가랑이 밑을 기어갔습니다. 주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구경꾼들이 모두 한신을 비웃었습니다.
몇 년 후 한신은 유방을 받들어 큰 공을 세우고 영주가 되어 금의환향하게 되었습니다. 한신은 자신을 가랑이 사이로 지나가게 했던 그 건달을 찾아갔습니다. “지난 날 자네로부터 받은 굴욕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 주었네.” 보통 사람이면 당장이라도 복수하려고 했겠지만 한신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건달에게 벼슬을 주고 자신의 휘하에서 일하도록 해주었습니다. 그 건달은 감격해 죽을 때까지 한신을 받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무모하게 용기를 과시하고 철부지처럼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에 생명을 거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치 일본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용기가 아닙니다. 큰 그릇이 될 사람은 사소한 일에 흥분하거나 다툼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미래를 위해 오늘의 굴욕을 딛고 일어서 수 있는 것이 참된 용기입니다. 이번에 우리가 일본에게 당한 굴욕을 이겨내기 위해 어떤 용기가 필요할까요? 곰곰이 생각해보고 논리적으로 써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