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화조서 발생한 가스 유입된 듯
- 수영구 “관리사무소가 관리해와”
- 동일 시스템 화장실 불안감 커져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주변 공중화장실에서 한 여고생이 농도 기준치 60배를 넘은 황화수소에 노출돼 사경을 헤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자동 정화조가 오염물질을 하수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유독가스가 발생했지만, 화장실 관리 책임이 있는 수영구는 10년 넘게 이런 위험을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지역 공중화장실 중 같은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곳이 얼마나 있는지 실태 파악조차 안 돼, 피서철을 맞아 안전사고 우려가 커진다.

부산 남부경찰서는 지난달 29일 수영구 민락동 회센터 공중화장실에서 A(19) 양이 의식을 잃고 쓰러진 지 20여 분 만에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4일 밝혔다. 사고가 난 화장실은 회센터 건물 지하에 있다. 10여 년 전 확장 공사를 해 관광객과 시민에게 개방된 이후 수영구가 관리해 왔다.

경찰은 수영구 소방재난본부 한국가스안전공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과 함께 지난 2일까지 두 차례 현장 조사를 한 결과 회센터 정화조 ‘펌핑’ 때 생성된 황화수소가 화장실 배수구로 배출되면서 사고가 난 것으로 판단한다. 펌핑이란 회센터 건물에서 나온 오물과 화장실 분뇨가 섞인 정화조에 산소를 넣는 작업을 말한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황화수소가 발생하는 것을 확인했다.

보통 회센터 정화조 펌핑 작업은 매일 새벽 3~4시께 이뤄진다. 국과수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화장실 배수구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의 단시간 허용 농도 기준치(15PPM)의 60배가 넘는 황화수소 1000PPM을 검출했다.

현재 이 화장실은 폐쇄됐다. 경찰은 유독가스가 화장실로 유입된 경로를 파악하고, 국과수 시뮬레이션 결과를 토대로 담당 공무원의 관리 부주의 여부도 조사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펌핑 작업을 거치는 부산 전역 공중화장실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실태가 파악된 게 없을뿐더러, 사고가 발생한 화장실을 관리하는 수영구도 “청결 관리만 할 뿐 정화조 관리는 구 책임이 아니다”는 태도를 보인다.

수영구 관계자는 “공중화장실 분뇨가 회센터 오·폐수와 함께 처리되다 보니 그동안 관련 설비를 관리사무소가 관리해 왔다”며 “10년 넘게 화장실에서 유사 피해가 접수된 적이 없어 문제가 있을 줄 몰랐다”고 해명했다.

A 양의 가족은 수영구의 사고 처리가 무성의하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A 양의 언니는 SNS에 올린 글에서 “동생이 심정지로 뇌에 손상까지 입었다. (그런데도) 현장 조사 때 수영구 직원은 ‘화장실에 환풍기가 있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말만 했다. 가족에게 사과도 한마디하지 않았다. 수영구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강성태 수영구청장은 “지어진 지 20년 이상 지난 건물의 정화조 시스템이라, 구에서는 미처 문제점을 인지하지 못했다”며 “5일 A 양이 입원한 병원을 찾아 위로의 말을 전하겠다”고 밝혔다.

이승륜 기자 thinkboy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