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계도 “젠더의식 결여” 반발

술에 취해 부산대 여자기숙사에 침입해 성폭행을 시도하고 주먹을 휘두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성에게 1심 법원이 심신미약을 인정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번 판결을 놓고 여성계는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부산지법 형사6부(최진곤 부장판사)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강간 등 상해) 혐의로 기소된 A(26) 씨의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고 2일 밝혔다. 재판부는 또 성폭력치료강의 40시간 수강,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제한 5년을 명령했다.

A 씨는 지난해 12월 16일 새벽 1시30분 술 취한 상태로 부산대 여성 전용 기숙사인 ‘자유관’에 침입해 계단에서 만난 여학생의 입을 막고 성폭행하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A 씨가 자신이 인정한 범행 당시 만취 상태(블랙아웃)였다는 주장을 이유 있다고 판단했다”며 A 씨의 심신미약을 인정했다.

이어 “이 사건으로 피해자는 상당한 수치심과 육체적·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면서 “다만 A 씨가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고 미수에 그친 점,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이 인정되고, 피해자와 합의한 사실이 양형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징역 10년, 신상정보공개 20년을 구형한 검찰은 구형 이후 피해자가 A 씨와 합의했고, 법원이 심신미약을 인정하면서 변경된 사정을 검토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최근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인정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가운데 법원의 이번 판견을 놓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시대를 역행하는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2013년 성폭력처벌 특례법에 ‘음주에 따른 심신장애 상태에서 성폭력 범죄를 범한 때에는 감경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규정이 신설된 이후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은 대체로 인정되지 않았다”며 “인정 여부는 재판부 재량이지만 이를 극히 제한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입법취지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법원이 A 씨를 집행유예로 풀어주면서 ㈔부산성폭력상담소 등 지역 여성단체는 즉각 성명을 내고 “젠더의식이 결여됐다”며 반발했다. 이들은 “이번 판결로 법원의 젠더의식이 결여됐음이 또다시 입증됐다”며 “가해자의 주장만 받아들인 이번 판결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고, 범죄로부터 여성을 보호할 의무도 저버렸다”고 비판했다.이어 “검찰은 A 씨가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즉각 항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승희 신심범 기자 shchoi@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