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00여㎡ 주민 편의시설 제공
- 주민대표 참여 협의체 등 제안
- 오늘 주민대책위 투표가 분수령

- 중재는커녕 사태 악화에도 뒷짐
- 정치권·지자체 비난 목소리 고조

지어진 지 48년 된 부산 남구 용당동 북부산세관(옛 용당세관) 청사를 재건축하는 사업을 놓고 세관 측과 지역주민 간 극심한 갈등(국제신문 지난 17일 자 10면 등 보도)이 오랜 기간 계속되고 있다. 행정과 정치권이 중재에 나서기는커녕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20일 부산 남구 용당동 북부산세관 앞에서 주민들이 청사 철거 공사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수십 년간 지역 단절… 세관 나가라”

북부산세관은 20일 한동안 주민 반발로 중단했던 청사 철거 공사를 다시 시작했다. 이날 보조 시설물을 설치한 세관 측은 22일 본격적인 철거를 강행할 예정이다.

북부산세관 청사는 1971년 세워졌다. 용당동 한복판을 가르는 1만9000여 ㎡ 부지에 사무실 1동과 지정장치장 5동 등 건물이 들어섰다. 외곽에 2~3ｍ 높이인 담장을 둘렀다. 이 때문에 이곳 주민은 “수십 년간 마을이 단절돼 고사할 지경”이라며 세관 이전을 강하게 요구한다.

주민이 북부산세관 청사 재건축 계획을 안 건 지난 3월 중순이다. 이때부터 용당동을 중심으로 한 남구 주민은 피켓 시위를 이어가고, 최근 자체 주민투표를 진행해 재건축 반대 방침을 분명히 하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주민비상대책위원회 이희숙 부위원장은 “주민 대부분이 북부산세관 신·개축 허가가 진행되는 사실을 몰랐다”며 “우리는 힘이 없으니, 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북부산세관 청사 신축공사는 2017년 행정안전부의 청사수급관리계획 승인에 이어 지난해 12월 건축허가 등을 받은 국책사업으로 총사업비 196억 원이 투입돼 내년 완료될 예정이었다.

이 때문에 세관 측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담을 허물고 주민 휴게시설을 짓는 등 공간 일부를 주민에게 내주려고 검토하지만, 좀처럼 협의의 장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북부산세관 관계자는 “우리는 대민 기관이 아니라 대지역 기관”이라며 “국가기관인 세관과 주민 간에 문제가 생겼는데 지자체가 중재하지 않아 아쉽다”고 토로했다.

■“정치권·지자체, 중재 나서야”

같은 날 오전 이곳 주민이 세관의 이전을 요구하며 집회를 벌이는 모습.

북부산세관은 이날 철거 공사를 재개하면서 주민에게 새로운 타협안을 제시했다. 청사를 재건축하는 조건으로 현재 부지 가운데 6600여 ㎡(2000평)를 주민 편의 시설 용도로 제공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또 어떤 시설을 건립할지 등을 논의하기 위해 남구 주민 대표와 구의원, 국회의원, 교수 등 전문가 집단이 참여하는 공동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협의체가 구성되면, 현 청사를 철거하고 주요 업무 시설을 지은 다음 남는 부지를 지역사회 공헌을 위해 사용할 방안을 함께 논의하자는 취지다.

주민대책위는 일단 세관 측이 내놓은 타협안을 두고 21일 주민투표를 진행하기로 했다. 주민대책위 김만식 위원장은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그동안 갈등이 물리적 충돌로 번질지, 극적으로 해결될지 판가름 날 것”이라고 했다.

세관 측의 타협안 제시로 일단 사태가 전환점을 맞은 만큼, 지금이라도 정치권과 행정이 적극적으로 중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까지 정치권과 주민은 갈등 정도가 점점 심해지는데도 선거 등을 의식해 뒷짐만 진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박재호(부산 남구을) 의원은 “주민 입장과 함께하겠다”며 북부산세관을 영도구 해양수산연수원 부지로 이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가, 공간이 협소해 무산되자 관망하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담당 지자체인 남구 역시 주민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수년 전부터 주민이 북부산세관 이전을 요구해온 사실을 알면서도, 신·개축 허가 때 예견된 갈등을 외면했다는 것이다. 결국, 지역에서 갈등은 갈수록 번지는데 이를 중재해야 할 지자체와 정치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던 셈이다.

부산참여연대 양미숙 사무처장은 “갈등을 조정하고 건강한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할 정치권과 지자체가 당장 이해관계에만 매몰된 양상을 보인다”며 “정치권과 지자체가 지역의 해묵은 갈등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꼬집었다. 최승희 이승륜 임동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