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북구 덕천동 부산도시철도 덕천역. 예나 지금이나 역은 교통의 중심지다. 사람과 물자가 끊임없이 드나들므로 상업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도시철도 덕천역 일대는 사통팔달이다. 서부산과 서부 경남을 잇는 낙동강, 남해고속도로 만덕대로 금곡대로 강변대로 등 도로와 다리(구포낙동강교), 경부선 철도까지 거미줄처럼 덕천역 일대를 휘감고 있다.
만덕대로를 중심으로 형성된 ‘덕천동 젊음의 거리’는 부산 서면에 못지않게 먹거리와 볼거리, 놀거리가 풍부하다. 상주 낙동진, 합천 밤마리나루와 함께 낙동강의 3대 나루로 꼽히던 구포나루 감동진, 세곡 창고 감동창을 앞세웠던 구포가 옛 상업의 중심지였다면, 구포 바로 옆의 덕천은 현재 진행형이다.
도시철도 3호선 덕천역에서 숙등역에 이르는 구간은 젊은 층을 겨냥한 상가가 또 다른 세상을 연출한다. 여기서 궁금한 게 있다. 만덕대로를 따라 늘어선 숙등 남산정 만덕 등 도시철도역 이름의 유래다.
숙등(맑을 淑, 고개 嶝)은 덕천동에 있던 자연마을에서 따왔다. 지명 유래에는 몇 가지가 있다. 강변에서 맑은(淑) 바람이 불어오는 언덕(嶝)이라고 해석되기도 하고, 백양산의 한 자락인 주지봉 북쪽 사면(嶝)에 쑥이 많아 쑥등이라고 불리다가 나중에 숙등으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어 숲등으로 부르다가 숙등이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다음은 남산정(南山亭). 말 그대로 남산의 정자다. 백양산 주지봉 남쪽 산줄기 아래에 있다고 해서 남산이라는 지명이 생겨났다고 한다. 구포와 이곳에서 동래로 넘어가는 만덕 고개 입구에 길손이 쉬어 가던, 500살이 넘은 정자나무가 있었던 터라 남산과 정(亭) 자를 붙여 남산정으로 불렀다는 얘기다.
‘만 가지 덕’으로 얘기되는 만덕(萬德)은 만덕사지(부산시 기념물 3호)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만덕사 터는 만덕 제1터널 입구 왼쪽 산기슭에 있다. 만덕사지는 고려 전기에 건립돼 고려 후기까지 있었던 절터로 보인다. ‘고려사’의 공민왕 즉위년 12월 기록에 ‘만덕사’라는 내용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만덕 고개는 예전에 상업 중심지 구포와 동래를 잇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이 때문에 상인을 노리는 도적이 많아 이를 피하려고 많은 사람이 다 함께 고개를 넘었다는 뜻에서 만등 고개로 불리다가 만덕으로 바뀌었다는 설, 임진왜란 때 피란 온 1만 명이 화를 면하고 덕을 입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이름만큼 지명 유래도 ‘만 가지’다. 오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