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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만든 고급진 어묵, 해방 후 우리 기술로 바꿔 대중화

부평깡통시장에서 만난 부산어묵 이야기-착한음식 부산어묵의 역사

이야기 공작소- 어묵따라 원조따라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4-02 18:47:40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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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선 ‘네리모노’로 통칭

- 제조법 따라 이름도 천차만별
- 으깬 생선살 쪄 먹는 ‘가마보코’
- 막대기에 붙여 구우면 ‘치쿠와’
- 기름으로 튀긴 ‘덴푸라’ 등 다양
- 오뎅은 국물에 끓여 먹는 탕 요리

# 부산 최초 동광식품이 생산

- 日 가마보코로 만든 오뎅 재해석
- 생선 통째 갈아 기름에 튀겨 판매
- 값싸고 영양 많아 국민음식 등극
- 피란민 몰려들자 호황 누리기도
- 밥 반찬은 물론 술 안주로 인기

‘부산어묵의 전성시대’다. 길거리 노점에 서서 먹던 군것질 음식이나 밥반찬으로 치부되던 어묵이 이제는 베이커리형 공간에서 사고파는 고급 음식으로, 또는 카페 등에서 커피나 맥주 등과 함께 먹는 어엿한 독립된 음식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부산의 어묵 회사가 주축이 되어 부산발(發) ‘음식의 창조적 혁신’ ‘어묵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대도시 기차역에 판매장을 두고 ‘어묵 크로켓’ 등 다양한 ‘베이커리 어묵’으로 대박이 나는가 하면, 대형 백화점 등에 입점하여 어묵우동, 어묵샐러드 등 다채로운 고급식품으로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부산 중구 부평깡통시장의 부산어묵 매장들. 부산어묵은 ‘늘 따뜻하고 착한 부산 음식’으로 평가된다. 사진 제공=박재완
■ 어묵은 재료, 오뎅은 탕 요리

‘어묵 역사’는 언제, 어디서부터였을까.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 진나라 때이다. 당시 권력자였던 진시황(기원전 247~210년 재위)은 평소 생선요리를 즐겨 먹었는데, 요리에서 생선 가시가 나오면 요리사를 바로 처형시켰다. 이에 한 요리사가 가시를 제거한 생선살로, 시황에게 ‘생선완자요리’를 만들어 바치자 매우 흡족해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도 조선 숙종(1674~1720년 재위) 때 ‘진연의궤(進宴儀軌)’와 ‘산림경제’ 등에 ‘생선숙편’과 ‘생선 완자탕’의 조리법을 소개하고 있다. 일본도 고훈시대(3~7세기) 두부와 생선살 등을 꼬챙이에 붙여 구워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부평깡통시장 어묵 안내 보드.
지금의 부산어묵은 일본과 다양한 인적·물적 교류로 만들어진 음식이라고 보는 의견이 많다. 역사적으로 조선통신사가 일본 사행(使行) 때 접대받았던 음식 중 어묵의 원류가 있었고, 초량왜관 시절 조선인에게도 꽤 인기가 있었던 고급 음식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광복 이후에는 지역화, 대중화 과정을 거쳐 우리네 식문화 속에 깊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의 이름은 어묵이 아니었다. 어묵은 일제강점기를 벗어난 우리 국민이 우리식으로 바꿔 부른 이름 중 가장 보편화되어 오늘날 정착된 이름이다.

그러면 그 시절 한국에서 불리던 어묵의 이름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아직 널리 쓰이는 것으로 ‘오뎅’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덴푸라’ ‘가마보꼬’ ‘간또’ 등이 있다. 이들 모두 일본에서 건너온 이름이다.

왜 우리 어묵에 이렇게 다양한 일본식 이름이 붙여졌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일본의 여러 어묵을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어묵은 네리모노로 통칭된다. 생선살을 으깨거나 갈아서 반죽을 만들고, 이를 다양한 모양으로 성형하여 찌거나 굽거나 튀겨낸 음식이 네리모노이다. 일본 어묵 요리의 총체가 바로 네리모노이다.

네리모노는 일본의 고훈(古墳, 3~7세기)시대 생선살을 나무 막대기 등에 붙여 불에 구워 먹었던 것이 그 시작이다. 그 이후 제조방법에 따라 찌는 것을 가마보코, 굽는 것을 치쿠와, 튀기는 것을 덴푸라로 대별하며 가장 일본적인 음식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가마보코는 헤이안(平安, 794~1192)시대에 영주들을 치하하는 잔칫상에 생선 으깬 살을 구워 올렸다는 기록에 등장한다. 갈아서 으깬 생선살을 대나무에 붙여 구운 것으로, 그 모양이 부들 꽃대와 비슷하다 하여 ‘가마보코’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에도(江戶, 1603~1868)시대부터는 생선살을 쪄서 조리하는 방식으로 정착되었다. 치쿠와는 에도시대 막대기에 생선살을 붙여 구운 후, 그 막대기를 뽑아내면 속이 빈 원통 모양의 어묵이 되는데, 마치 대나무 통처럼 생겼다 하여 이런 이름을 붙였다. 덴푸라는 에도시대 말 류큐국(현 오키나와)과 교류가 있던 사쓰마(가고시마)에서, 기름으로 튀겨내는 요리법으로 가마보코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시초다.

우리가 어묵과 혼용하는 오뎅은 여러 가지 어묵을 무, 곤약, 토란 뿌리, 삶은 달걀 등과 함께 국물에 푹 삶아낸 탕 요리이다. 원래 오뎅은 무로마치(室町, 1338~1573)시대, 두부를 꼬치에 꽂아 된장을 발라 구워 먹는 ‘덴가쿠’라는 음식에서 시작됐다. 덴가쿠는 모내기 때 풍년을 기원하며 행하던 춤과 노래, 즉 농악과 같은 들놀음이었다. 그때 야외에서 구워 먹었던 음식 또한 덴가쿠라고 불렀다. 덴가쿠를 다시마 국물과 진간장으로 간을 맞춰 따뜻한 탕으로 팔았는데, 이것이 지금의 오뎅이 된 것이다.

일본 전통의 맛을 중시하는 오사카 중심의 간사이(關西) 사람들이 이를 칸도(關東)지방에서 먹는 음식이라 하여 경시하여 부르던 것이 ‘칸도다키’였다. 우리가 어묵을 지칭하던 ‘간또’가 여기서 파생됐다.

■ 부산 부평시장에서 어묵 시작
으깬 생선살에 다양한 재료를 넣어 튀긴 일본의 각종 덴푸라.
‘부산어묵’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일까. 문헌상으로는 부산 중구 ‘부평시장’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확인되는데, 1915년 ‘부평시장 월보’에는 부평시장 내 주요 점포 중 가마보코 점포가 3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1924년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의 시장’에서는 ‘부평시장은 쌀, 가마보코, 채소, 청과물 등이 주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부평시장에서 시작된 어묵(가마보코)은 부평동 부근에 들어선 대좌부란 요정을 중심으로 소비되던 고급 식재료였다. 이곳의 대표 요리가 가마보코를 재료로 한 ‘오뎅’이었다.

이 가마보코는 해방 전후로 해서 ‘음식문화의 대중화’ 과정을 거친다. 일본인들이 남겨두고 간 어묵 설비와 기술로, 우리 실정에 맞게 어묵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1945년 한국인으로는 부산 최초로 부평동시장에서 어묵을 생산했던 동광식품(창업자 이상조)이 그 시작이었다.

여러 어묵과 곤약, 토란 뿌리 등을 넣은 전골 요리인 일본 오뎅.
지금의 ‘부산어묵’은 그 시절 일본식 기술과는 다른 환경과 다른 제조 방법으로 생산된다. 부산어묵은 자갈치시장을 중심으로 보급되었는데, 당시에는 시장에서 위판되고 남은 생선이나 상품 가치가 없는 생선을 ‘대수리’라는 돌절구에 함께 넣고 통째로 갈아, 정어리기름이나 고래기름 등에 튀겨내 어묵을 만들었다.

부산어묵의 제조공정은 크게 ‘막갈이’와 ‘덴푸라’로 구별된다. ‘막갈이’는 생선을 통째로 ‘갈아내는 것’을 말하고 ‘덴푸라’는 깡치(조기 새끼) 풀치(갈치 새끼) 등 잡어를 갈아 미군 드럼통으로 만든 기름 가마에 넣고 ‘튀겨내는 과정’을 말한다. 피란민이 몰려들면서, 부산에는 튀김 중심의 값싸고 영양가 높은 어묵이 호황을 누리며 대표적인 국민 음식으로 자리 잡는다. 1950년대에는 부평깡통시장의 환공어묵, 영도 봉래시장의 삼진식품(창업자 박재덕) 등이, 1960년대 이후에는 부평깡통시장의 미도어묵을 비롯해 초량시장의 영진어묵(창업자 박병수), 효성어묵, 대원어묵 등이 부산어묵의 대중화를 선도했다.

이 시기에 어묵은 주로 밥반찬으로 애용되었지만, 청주와 더불어 부산의 문화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안주로도 자리 잡는다. 한때 남포동, 중앙동 등지에는 ‘부산어묵’의 따뜻한 국물에 청주 한 잔 마실 수 있는 대폿집이 많았다. 이곳은 부산 문화예술인들의 문화사랑방 역할을 했는데, 특히 비 오는 날이나 유난히 추운 날, 삼삼오오 모여 예술을 논하며 술잔을 기울였던 곳이다. 이 대폿집들은 대부분 계산을 바둑돌로 했는데, 검은 돌과 흰 돌을 나누어 ‘돌 하나’에 ‘청주 한 잔’ ‘오뎅 한 접시’ 등으로 계산을 했다.

“약병 같은 병뚜껑에 바둑돌이 들어갈 구멍을 내고, 마신 대폿잔과 안주 수대로 바둑돌을 집어넣어요. 돌을 하나둘 넣을 때마다 딸그락딸그락 바둑돌 쌓는 재미가 꽤 쏠쏠했지요.” 부산민학회 주경업 회장의 말이다. 참 낭만적이면서도 합리적인 계산법이 아닌가.

현재 전국은 부산발 어묵 열풍에 휩싸였다. ‘어묵 로드’ 여행을 위해 부산을 찾는 이가 연간 100만 명이 넘고, 부산 곳곳의 어묵 매장에는 부산어묵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서고 있다. 전쟁 중 값싸고 양 많고 영양 풍부한 음식으로, 그 시절 대한민국 식탁을 책임진 ‘공유의 음식’이자 ‘배려의 음식’이었던 부산어묵. 비록 ‘최선의 음식’이 아니라 ‘차선의 음식’이었고 ‘대체의 음식’이었지만 부산어묵은 부산 사람을 닮아 ‘늘 따뜻하고 착한 부산 음식’이었다.

최원준 음식문화 칼럼니스트·시인

※ 공동기획: 부산중구·국제신문·(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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