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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장영실 놀던 공간…훗날 동래온천 오가는 미니열차 달렸다

아스라한 맘속 풍경, 세병교

이야기 공작소- 도란도란 연제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3-06 20:18:35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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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천천 세병교 옛 이름은 광제교
- 전쟁 병기 씻던 곳이란 의미
- 1900년대 초엔 나무교각 형태

- 일제의 부산진~온천장 경편열차
- 다리 뒤쪽으로 6년간 운행돼
- 국내 최초의 사설 열차로 기록
- 이후 철도는 일제 수탈 수단

- 조선 땐 장영실 호연지기 키워

옛 다리! 곰방대를 물고 양반걸음으로 점잖게 다리를 건너는 선비, 봇짐을 가득 멘 채 구슬땀을 흘리며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걸어가는 사람들. 오늘날 우리에게 아련하게 다가오는 그리운 풍경임에는 틀림이 없을 듯하다. 나막다리(나무다리) 하며, 흙다리, 매단다리 등은 이제 보기 힘든 추억이 됐다.
옛 세병교 너머 경편열차가 달리고 있는 모습. 전국 최초의 사설 열차인 경편열차는 높이가 사람 키를 조금 넘을 정도로 작다.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제공
옛 다리들은 대부분 초라하고 그리 볼품도 없다. 하지만 다리들로 인해 주변은 곰삭은 풍경으로 변한다. 다리는 마을과 사람, 사연이 만나고 이어지는 감성적인 공간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질적인 것과 떨어진 것을 이어주는 고마운 도구이기도 하다. 그뿐이랴. 시공을 뛰어넘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역사의 통로이자, 단절된 세대와 지역을 잇는 소통의 통로가 아니던가. 현명한 자는 다리를 놓고, 어리석은 자는 벽을 쌓는다는 말이 있지 않나.

■ ‘젖줄’ 온천천과 세병교

1900년대 세병교 모습.
부산의 온천천과 세병교가 그렇다. 온천천은 예로부터 부산 도심을 관통하는 젖줄이었다. 온천천은 금정산 고당봉 아래에서 발원해 천년 명찰 범어사의 속살을 어루만지면서 내려온다. 그래서 원래 이름은 ‘범어천(梵魚川)’이었다. 조선 시대 동래부를 적시며 드넓은 유역에 물을 뿌렸기에 ‘동래천’이라고도 불렸다. 한양으로 향하는 영남대로인 ‘황산도(黃山 道)’가 이 강변을 따라가기도 했다. 동래부읍지(1759)에는 ‘범어천이 부(府) 서쪽 3리(里)에 있는데 금정산에서 발원해 해운포로 흘러든다’고 기록돼 있다. 금정구와 동래구, 연제구를 통과하는 온천천은 풍부한 수량과 뛰어난 수질로 동래 미나리와 연뿌리를 길러낸 젖줄이었다. 해운대 백사장에 고운 모래를 퍼 나르는 고맙고도 수고로운 일을 한다.

조선 시대 범어천은 동래읍성을 지켜주는 일종의 해자 역할을 했기에 매우 소중한 방어자산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하천에는 3개의 다리가 있었다. 동래읍성에서 만덕고개를 통하는 쪽에 ‘만년교(萬年 橋)가 있었고, 동래읍성에서 하마정 방면으로 광제교(廣濟橋), 동래부에서 좌수영(左水營)으로 향하는 곳에 이섭교(利涉橋)가 자리했다. 이 중 광제교가 후일 세병교(洗兵橋)로 이름이 바뀌었다. 세병교는 동래읍성 남문을 감싸는 문루인 세병문(洗兵門)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부산진으로 가는 다리라 해서 ‘부산다리’로도 불렸다.

‘세병’은 글자 그대로 ‘병장기를 씻는다’는 뜻이다. 병기를 물에 씻는다는 건, 사용한 병기를 거둔다는 의미로 전쟁이 끝나 평화가 돌아왔음을 이른다.

세병교는 1900년대만 하더라도 가느다란 나무 교각 위에 흙을 덮은 토목재 다리였다. 당시 사진을 보면 보부상 차림의 남자 셋이 두 마리의 말 등에 짐을 잔뜩 얹혀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리를 건너가는 장면이 있다. 세병교는 훗날 돌다리로 개축되는데, 석재 교각을 갖추고, 들보가 기둥 위에 놓인 보(堡)다리 형식의 돌다리는 중앙이 약간 솟아 궁륭 형태를 이룬 조화미를 이뤘지만 일제가 보수한답시고 콘크리트 다리로 교체해버렸다.

■ 경편열차를 아시나요

1900년대 온천천 모습.
옛 세병교 사진 자료 중 놓쳐서는 안 될 장면이 있다. 1910년대 초반 돌다리 뒤쪽에 철길이 보인다. 그리고 열차가 지나간다. 앙증맞을 정도로 작다. 일제강점기 전차가 도입되기 전 운행됐던 경편(輕便)열차다. 경편 열차란 궤도 폭이 좁은 기차를 말하는데, 열차 높이가 사람 키를 조금 넘을 정도였다. 부산진에서 동래 온천휴양지를 연결한 9.5km 구간은 전국 최초의 사설 철도 기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열차에는 일제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수탈하기 위해 지원한 게 사설 철도였다. 총독부는 당시 경부, 경인, 경의, 경원선 등 간선철도를 계속 건설했지만 대규모 철도 건설자금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자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사설 철도를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그 효시가 1909년 운행을 시작한 부산의 경편열차였다. 경편열차는 기관차 2량에 1등 객차 1대, 2등 객차 2대, 3등 객차 2대가 포함됐다. 정원은 20명 남짓. 여객 운임은 두 정거장 기준(1.6km) 3등석이 2전, 2등석 4전, 1등석 5전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한 정거장 가는 데 3등석이 100원, 1등석이 250원 정도 받았으니 일반 주민은 타기 힘들 정도로 비싼 요금이었다. 하기야 전국적으로 유명한 동래온천을 즐기러 가는 유람 열차였으니 당연하겠다. 경편열차는 1915년 전차가 다니기 시작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경편열차의 종착지는 온천장이었다. 1950년대 유행했던 노래 ‘부산행진곡’ 3절을 보자. “봄바람 동래온천 여름 한철 송도요/ 달 마중 해운대도 부산 항구다/가느니 못 가느니 종열차에 베루(벨)가 운다/ 경상도 사투리 아가씨들의 이별이 좋다.”

■ 장영실의 놀이터, 세병교

부산 온천천 세병교. 상징 조형탑 등을 세워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국제신문DB
세병교의 또 다른 이름이 있었다. 바로 ‘안뜰교’다. 조선 시대 세병교 아래는 바다였다. 세병교 바로 앞까지 고래가 떼를 지어 몰려와 자기 집 안뜰처럼 노닐었다 해서 불린 명칭이다. 앞으로는 드넓은 바다에 고래가 헤엄치고, 세병교 양옆으로 모래사장이 널찍하게 펼쳐진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흥이 난다.

이런 천혜의 자연을 접하면서 꿈을 키운 아이가 있었으니 조선조 불세출의 기재 ‘장영실’이었다. 동래현에서 노비로 태어나 정3품 대호군 벼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역시 불세출의 성군 세종의 손과 발이 되어 찬란한 전성기를 열어나가다 홀연히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가 자란 집은 세병교 옆, 지금의 내성중학교 인근으로 추정될 뿐이다.

어린 장영실은 세병교에서 놀며 무엇을 꿈꿨을까? 장영실은 세병교를 걸어 주변으로 펼쳐진 찬란한 백사장과 드넓은 바다를 보며 호연지기를 길렀을 것이다. 거대한 진리의 바다를 반드시 파헤칠 것을 다짐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세병교는 장영실의 미래를 열어준 통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남두육성(南斗六星)의 전설을 들어보셨는지. 김미숙 작가의 드라마 소설 ‘장영실’에는 그의 탄생이 픽션으로 꾸며졌다. 일부 각색해서 소개한다.

■ 남두육성의 전설, 장영실

전설은 기재(奇才)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금정산에 사내아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중략) 온 우주가 아이를 향해 일제히 기운을 모아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아이는 바로 동래현 관기 옥향이 낳은 아들이었다. 아이를 받은 이는 고려의 신통력 뛰어난 점성술가요, 능력이 뛰어난 책사로 천하를 주물렀던 호룡성. 카리스마적 권위를 누렸던 그가 나라가 망한 지금 몸을 숨겨 동래현 깊숙한 곳, 금정산에 그 그림자를 묻어두고 살고 있었다. 호룡성은 옥향을 보면서 간밤의 신비한 꿈을 떠올렸다. 푸른 연꽃이 둥둥 떠 있는 깊은 연못을 등에 별자리가 그려진 광목 차림의 아이가 말을 탄 채 건너고 있었다. 그 아이 뒤에 비단옷 차림의 또 다른 남자아이가 붙어 있었는데, 귀한 가문 출신으로 보였다. 갑자기 뒤의 아이가 사라져 버렸고, 광목을 입은 소년이 놀라 연못에 첨벙 뛰어들어, 한참을 허우적거리다 마침내 비단옷 차림의 아이를 구해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중략) 호룡성은 그 아이를 풍이라고 불렀다. 권력의 탐욕으로 가득 찬 세상,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붙여준 이름이었다. 호룡성은 풍이 태어난 날 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잔뜩 긴장했다. 일생에 한 번 보기도 힘든 진기한 현상, 즉 북두칠성과 남두육성이 함께 하늘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북두칠성은 하늘이 내린 임금이요, 남두육성은 하늘이 내린 불세출의 기재이자 재상이었던 것이다. 풍의 등에 난 여섯 개의 점, 바로 남두육성이었다(이쯤 되면 알 것이다. 북두칠성이 세종, 남두육성이 장영실임을).

금정산 너머로 환하게 펼쳐지던 밤하늘에 별빛이 요동치더니, 이내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한 갈래 별 바람은 북두칠성을 휘감아 하늘을 한 번 돌더니 남두육성 쪽으로 달린다. 남은 한 갈래 별 바람은 남두육성을 휘감더니 북두칠성에서 달려온 별 바람을 만났다가 돌연 찬란한 광채를 발하며 한양 정안군 이방원의 집으로 떨어진다. 북두칠성의 아들 이도(세종)와 남두육성의 아들 장영실의 운명적 만남을 그린 전설은 이렇게 여운을 남기며 끝맺는다.

최원열 전 국제신문 논설위원

※ 공동기획: 부산연제구·국제신문·(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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