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아, 심·뇌혈관 등 긴급환자
- 양산 등 타지역 병원으로 후송
- 골든타임 놓치는 경우도 잦아

지난 24일 밤 기장군 장안읍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의 응급실은 병상 9곳 중 8곳이 텅 빈 채 한산한 모습이었다. 경미한 질환으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 1명이 치료를 받고 있을 뿐, 여느 대형 병원 응급실의 분주한 모습을 이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병원 관계자는 “평상시 모습 그대로다. 현재의 의료진 수와 설비, 시스템으로는 이 정도 환자 수가 적당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24일 밤 부산 기장군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응급실에서 의료진이 빈 병상의 시설을 살피고 있다. 이승륜 기자 thinkboy7@kookje.co.kr

부산 기장군 주민들이 첨단 시설을 갖춘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을 곁에 두고도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다른 지역 병원 응급실을 찾아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28일 기장군과 동남권원자력의학원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의학원은 방사선의학에 특화된 암 치료와 원자력 방제, 방사능 재난 시 현장의 비상진료 기능을 담당하는 공공의료기관으로 2010년 개원했다. 의학원은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지역 응급의료기관이기도 하다. 의학원 응급실은 메르스, 결핵 등과 같은 전염병 환자를 수용할 음압병실 등과 같은 최신 시설을 갖췄지만, 정작 긴급 의료 서비스가 필요한 환자는 거의 찾지 않고 있다. 암 환자 치료에 한정된 병원 특성상 야간에 환자를 치료할 의사와 설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의학원 응급실 당직의사는 3명으로 신생아를 포함한 소아나 심·뇌혈관 쪽 응급 시술이 필요한 환자를 치료할 설비나 의료진은 전혀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구 8만 명의 정관신도시에서 심야에 아동이 고열이 나거나 임신부 과다 출혈, 노인의 심혈관 질환 등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약 30㎞ 떨어진 해운대백병원이나 25㎞ 거리의 양산부산대병원을 찾아야 한다. 소방재난본부 자료를 보면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기장군에서 발생한 119 응급환자 이송 건수(1만5253건) 중 기장군 외 지역으로 후송한 사례는 1만157건으로 전체 67%에 달했다. 반면 의학원으로 이송된 환자는 825명으로 전체 5%에 불과했다.

상황이 이런 데도 의학원은 예산 부족으로 대책 마련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기장군이 ‘응급의료 취약지’로 분류돼 의학원은 2016년부터 매년 1억~3억 원의 응급실 유지·관리 예산을 받았지만, 이마저도 올해 중단됐다. 관련 법이 개정돼 지원 기준이 ‘군 지역과 인구 15만 명 미만 도농 복합 시’에서 ‘30분 이내 지역응급의료센터나 1시간 이내 권역의료센터에 도달 불가한 인구 비율이 30%가 넘는 지역’으로 바뀐 탓이다.

이에 의학원은 시와 군에 응급의료 활성화를 위한 예산 배정을 요구하고 있다. 의학원 손은주 기획조정부장은 “지난해까지 누적 적자가 200억 원에 달한다. 많은 지원을 받아 진료 과목이 늘어나면 좋겠지만, 급하게나마 응급실 운영 자금이라도 수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부산시의회 구경민 의원은 “지역 환자들이 다른 지역 병원을 찾느라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의학원이 적정한 응급 의료 시설과 인력을 갖출 수 있도록 예산 확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승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