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으로 지난 11일 검찰에 소환된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이 관련 혐의를 대부분 부인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검찰이 이른 시일 내 양 전 대법원장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검찰이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어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을 확보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르면 이날 대법원장을 다시 소환해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부터 6년간 대법원장으로 있으면서 임종헌(60·구속기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박병대(62)·고영한(64)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등에게 ‘재판거래’ 등에 관한 문건을 보고받거나 직접 지시를 내린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민사소송 재판거래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 개입 ▷헌법재판소 내부정보 유출 ▷사법부 블랙리스트 ▷공보관실 운영비 비자금 조성 등 각종 의혹에 대부분 연루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지난 11일 양 전 대법원장 첫소환에서 14시간30분 동안 재판거래와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고강도 조사를 벌였다. 특히 조사 시간의 절반 이상을 강제징용 재판개입 의혹에 할애하면서 혐의를 입증할 강력한 물증을 확보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검찰은 법원이 ‘소명 부족’을 이유로 박·고 전 법원행정처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이후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찾는데 수사력을 집중해왔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업무수첩,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양 전 대법원장 면담결과 내부문건 등이 검찰이 확보한 주요 물증으로 꼽힌다.

이날 조사에는 강제징용 재판 관여 의혹 외에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재판 개입 의혹, 대법 판례를 깨고 긴급조치 피해자에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한 김기영 당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현 헌법재판관)의 징계 추진 등 양 전 대법관이 직접 챙겼을 개연성이 큰 사안들이 다뤄졌다. 직접 관련 문건에 결재 서명을 한 사실이 드러난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도 조사했다.

다만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조사에서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실무진이 알아서 한 일” 등 혐의를 대부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2차 조사에서는 통합진보당 관련 재판개입 사건과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 수집, 전 부산고법 판사 비위 은폐 축소 의혹, 공보관실 운영비 불법 사용 등을 집중적으로 파헤칠 전망이다. 검찰은 한두 차례 더 조사를 하고 이를 토대로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 청구 여부도 결정할 방침이다.

한편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11일 첫 검찰 소환 당시 이례적으로 대법원 앞에서 ‘대국민 입장’을 발표하고 예고한 대로 검찰 포토라인은 ‘패싱’ 했다. 이날 오전 9시 대법원 앞에 선 양 전 대법원장은 “국민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송구스러운 마음이다”며 “제 부덕의 소치에 의한 것으로 모든 책임을 제가 지는 게 마땅하다”며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부당 지시가 없었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편견이나 선입견 없는 공정한 시각에서 소명되길 바랄 뿐”이라고 강조했다. 대국민 입장을 밝히는 양 전 대법원장 뒤로는 기자회견을 저지하기 위해 전날 저녁부터 진을 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 등의 규탄 목소리가 울렸다. 5분 간의 기자회견을 마친 그는 곧장 차에 올라타 맞은편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이동한 뒤 검찰 포토라인을 단 10초 만에 지나갔다. 최승희 기자 shchoi@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