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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를 넘어 공존으로 <상> 배타…분노에 물들다

무차별·폭력적 ‘인격테러’에 그들의 삶이 무너집니다

  • 김민주 기자
  •  |   입력 : 2018-12-31 19:39:10
  •  |   본지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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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누군가를 극도로 미워하고 배격하는 감정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상시 일어나며 시기·질투보다 강도가 높다. 안타깝게도 최근 1, 2년 새 ‘혐오’가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나와 다른, 소수 집단에 대한 차별과 공격이 혐오로 이어지면서 사회갈등, 분열의 키워드가 됐다. 이에 본지는 혐오에 멍든 대한민국의 모습을 살펴보고, 다양한 혐오 현상이 증가하는 원인을 분석, 공존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기로 했다.


- 남을 미워하고 배격하는 감정은
- 상시 일어나며 어느덧 일상이 돼
- 온·오프라인에 독버섯처럼 번져
- 난민·장애인 등 소수자란 이유로
- 마구 공격해 씻지못할 상처 남겨

- 나와너, 우리가 다함께 공존하는
- 평등사회로 나아갈 길 고민을

혐오의 또 다른 이름은 미움과 증오다. 대상은 이주민, 성 소수자, 여성, 노인, 탈북민, 장애인, 난민 등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가 대부분이다.
   
혐오에 상처 입은 집단이 또 다른 집단에 칼날을 세우는 방식으로 혐오는 사회 구성원 서로에게, 전방위로 스며들었다. 여성에게 가해지던 차별·폭력 등 혐오는 ‘미투(#MeToo)’ 운동을 통해 개인이 아닌 사회적 문제라는 공감대를 얻었다. 하지만 미투가 여성운동으로 크게 번지자 성폭력 근절로 이어지는 대신 오히려 여성을 배제하는 분위기(‘펜스 룰’)가 생겨났다. 온라인 공간에서 양성 간 서로를 비방·혐오하는 목소리는 급기야 ‘이수역 폭행 사건’ 논란으로 표출됐다.

제주 예멘 난민 포용 찬반 의견은 온·오프라인에서 충돌하고, 전국의 퀴어축제 현장에서는 성 소수자보다 더 많은 ‘반대 세력’이 규탄 집회를 열어 축제 참가자를 막아섰다. 지금 우리 사회는 혐오에 중독됐고, 혐오에 격동하고 있다.

■일상이 된 혐오

“살고 싶어 도망쳐 한국에 왔고, 적응하려 애썼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벌레’(충)로 불린다는 걸 알았을 땐 참 서러웠죠.” 내전을 피해 수년 전 한국에 들어온 시리아 출신의 인도적 체류자 A 씨의 말이다. 그는 지난해 ‘제주 난민 사태’ 이후 사람들이 훨씬 적대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난민충’이라는 말을 접한 것도 그 무렵이다. 경남 김해에 사는 A 씨는 “난민 등 외국인이 ‘한국인들은 친절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대부분 외국인은 터무니없는 혐오나 적대에 괴로워한다. ‘친절한 한국인’은 아직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털어놨다.

성 소수자인 B 씨는 ‘아웃팅’(원하지 않게 성 소수자임이 드러남)당하면서 2년 전 부산의 한 직장에서 해고됐다.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모든 영역에서의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이 없어 대응조차 못했다. 그는 “나뿐 아니라 부모님에게 ‘애를 잘못 가르쳐 망쳐놨다’ ‘역겹고 더러운 병을 옮긴다’는 비난을 하는 게 더 가슴 아팠다”고 말했다.

도움의 형태를 띤 ‘온정적 혐오’도 당사자에게는 상처가 된다. 여성 C 씨는 스토킹 신고를 하러 경찰서를 방문했을 때 경찰로부터 “예쁘고 말투도 나긋나긋해서 남자들이 오해할 수 있으니 조심해라”는 조언을 들었다. C 씨는 “이런 소릴 들으면 매우 불쾌하고 말문이 막히지만 막상 화를 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혐오는 일상에서 자주 발생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7년 발표한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에서 ▷성 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기타 남녀 집단의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이주민을 제외한 4개 집단 응답자의 90~98%가 온라인에서 혐오표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주민 집단이 혐오표현을 경험했다는 답변은 50%다. ‘제주 난민 사태’가 불거지기 전에도 2명 중 1명이 혐오에 시달렸다. 오프라인에서 같은 경험을 했다는 답변 비율은 63~92%로 상당히 높았다. 혐오표현도 다양하다. 특히 싫어하는 대상에 벌레를 뜻하는 ‘충(蟲)’을 붙인 맘충, 한남충, 급식충, 틀딱충 등. 사람을 벌레에 빗대는 이 같은 표현으로 비하와 경멸의 의미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혐오 확산의 온상, 인터넷

스마트폰 등 인터넷 환경은 혐오를 확산하고 굳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익명의 공간에서 누군가를 혐오하는 데 열을 올리는 커뮤니티도 생겨났다. 애초 어떤 대상에 대한 은근한 혐오를 가졌다가 자신에 동조하는 무리를 발견해 집단의 논리를 갖게 되면 순식간에 혐오는 확산되고 수위가 높아진다.

하버드대 로스쿨 캐스 선스타인 교수는 2007년 저서 ‘리퍼블릭닷컴2.0’에서 이 같은 인터넷 발달의 부작용을 예측했다. 선스타인 교수는 이용자가 인터넷에서 마음에 드는 정보만 접하면서, 극단적인 사고의 틀에 갇혀 반대편 의견에 동감하지 못할 것으로 우려했다. 극단적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일베) 저장소와 여성 우월주의 사이트 워마드 등이 그렇다. 이들은 가상의 공간에서 성격이 다른 집단을 배격하면서 극도의 혐오표현을 만들어내는 산파가 됐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 박아란 선임연구위원은 “인터넷에서 특정 정보만 걸러주는 ‘필터링’ 기능이 점차 강화되면서 이용자는 입맛에 맞는 정보만 접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만 더 확고해져 의견의 양극화를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혐오가 단기간에 번진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장기간 지속된 불평등이 박탈감을 불러와 나와 다른 존재에 적대감을 드러낸다고 분석한다. 부산복지개발원 유동철(동의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원장은 “그간 사회적으로 배제됐던 이들이 목소리를 내며 ‘주류 사회’로 진입하려 할 때 불안감을 느낀 기존 구성원들에게 혐오의식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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