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안 곳곳 화재 자국 여전
- 외부서 침입한 흔적 없고
- 정확한 화재 원인 못 밝혀
- 경찰관 “가슴 한구석 답답”
“왜 안 빠져나오는지 몰라 모두가 발을 동동 굴렀죠. 주민들도 그 집 아이들을 잘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너무 안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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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화재로 일가족이 숨진 부산의 한 아파트 내부. 신심범 기자 |
19일 오전 부산 A 아파트 1층의 한 세대. 현관 복도로 난 쇠창살 사이로 ‘그날’의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불에 탄 집기나 그을음 등의 잔해는 경찰 등이 나서 모두 치웠지만 집안 곳곳에는 여전히 화재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천장은 앙상한 뼈대만 남긴 채 훤히 뚫려 있었고, 바닥과 집안 기둥은 모두 살갗이 벗겨진 것처럼 속을 드러내 보였다. 이곳에 살던 아이들이 다녔던 초등학교로부터 학생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친구이거나 선후배일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화마가 할퀴고 가 폐허가 되어버린 집의 모습과 묘한 대조를 이뤘다.
이 아파트에 불이 난 것은 지난 3월 29일 오전 5시40분께였다. 불이 났을 당시 집 안에는 아버지 B(45) 씨와 그의 세 아들이 있었다. 13살의 큰아들과 11살 둘째, 8살짜리 막내까지 한꺼번에 아버지와 함께 목숨을 잃었다. 아버지와 큰아들은 안방 바닥에서, 나머지 두 명의 아들은 방 안 침대 위에 반듯하게 누운 채 숨져 있었다.
B 씨 부자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화재로 발생한 연기 등과 같은 유독물질에 의한 질식사였다. 처음 불이 난 곳은 안방 출입문 주변으로 보여졌으나, 직접 화재를 일으켰을 만한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집 안에 있는 옷에 처음 불이 붙어 안방 문을 넘어온 것으로 추정했다.
끔찍한 화재 현장을 지켜본 아파트 경비원 C 씨는 지금도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그는 “참 의아했다. 집 밖으로 연기가 새어 나와 주민 모두 B 씨 부자를 걱정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문밖으로 나서지 않았다”면서 “왜 그랬는지 지금도 도무지 모르겠다”며 먼 하늘을 바라봤다. 이웃 주민도 B 씨의 집을 지날 때마다 안타까움에 눈물을 훔치곤 한다. 한 주민은 “그 집 애들이 어른에게 인사도 잘하고 무척 착했다. 아이들이 뛰어놀던 모습이 생생해 여전히 사고가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은 40대 가장과 아들 셋의 목숨을 앗아 간 화재 사고를 변사사건으로 내사 종결했다. 외부인이 들어와 불을 지른 흔적도 없었고, 피해자인 B 씨와 아이들이 이미 모두 숨졌기 때문이다. 당시 수사를 담당한 경찰관은 “경찰 생활을 하면서 이번 화재처럼 안타까운 사건은 처음이다. 화재로 일가족이 한꺼번에 숨지는 경우도 드물지만 화재 원인을 제대로 밝힐 수 없어 난감했다”면서 “풀지 못한 숙제를 남겨 놓은 것처럼 여전히 가슴한구석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많은 이의 안타까움과 의문을 간직한 채 B 씨와 아이들이 살던 집은 오늘도 쓸쓸한 모습으로 텅 비어있다.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