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 선비길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 은구재다. 세종대왕 태실지가 있는 태봉산 끝자락에 있는 은구재는 근세의 유학자로 일제에 항거하며 교육에 전념했던 독립지사 유암(有菴) 이후림(李厚林·1893~1972)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며 만년을 보낸 곳이다. 선생은 전주 이씨로 서포면 금진리에서 출생해 간재(艮齋) 전우(田愚), 송산 권재규(權載奎) 선생에게 학문을 익혔다. 그 뒤 서포면 금진마을에서 학당을 세우고 제자를 가르쳤는데, 학당에 나오는 학동이 일본인이 세운 개화 학교 학생 수보다 늘어났다. 일제는 헌병을 앞세워 선생에게 개화 학교 교사로 취임하라고 협박하다 거절하자 강제학당을 철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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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암 이후림 선생이 만년을 보내며 후학을 양성했던 은구재. |
그 뒤 하동 진교와 와룡산 아래 용산정, 하동 북천면 직하정 등지에서 강학했으나 번번이 일경의 박해를 받았다. 곽종석의 파리장서 사건으로 경찰에 연행됐다가 상투를 자르려하자 “더러운 손에 내 몸을 굽힐 수 없다”고 자해하며 절의를 보이기도 했다. 해방 후 은구재를 세워 만년을 보냈는데 제자로는 제헌 국회의원, 도의회 의장 등이 있다.
곤명면 정곡마을에서 금성마을을 들어서면 왼쪽의 야트막한 동산에 연강정(練江亭)이 있다. 이곳이 연강재(練江齋) 문후(文後·1574~1644) 선생이 만년을 보내며 후학을 지도하던 곳이다. 선생은 산청군 단성면에서 태어나 진주 수곡면의 각재 하항, 거창의 모계 문위 선생께 글을 배웠다. 각재, 모계, 한강, 송정 선생은 당대에 학행을 떨친 남명 선생의 제자다. 연강재는 남명 선생께 직접 글을 배우지 못했지만 남명의 제자들에게 학문을 익혔다. 삶 속에서 학문의 길을 찾고자 했던 그는 구암 이정 선생과 함께 사천 유맥의 정신적 지주다.
이완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