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자취 잇는 길 시작은 은사마을
- 평창 이씨 350년 집성촌 이뤄
- 옥동마을 등 거쳐 회귀하는 코스
- 사집봉·성성대 등 선현들 흔적
- 세종 태실지로 택할 만큼 명당
선비는 세상이 어지러우면 벼슬도 사양하고 진흙탕을 비켜나 위기지학(爲己之學)으로 난세가 침잠하기를 기다렸다. 한두 해가 아니라 평생이어도 그랬다. 경남 사천시 곤명면 은사(隱士)마을은 등과(登科)를 싫어하는 선비들이 은둔하여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난세는 아니어도 이곳에서 은거하며 뜻을 세운 평창 이씨가 350여 년을 살아온 집성촌으로 사집봉(士集峰), 성성대(省省臺), 유청산(儒廳山), 의숙대(誼塾臺) 등 곳곳에 선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잘 다듬어진 관광형 길이 아니라 시골의 여느 오솔길과 별 차이는 없지만, 선비의 숨결을 느끼며 조용하고 차분하게 하루를 보내고 싶은 걷기 마니아에게 권하고 싶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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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동마을의 들판 가운데 자리한 우람한 숲 사이로 들어가면 단종 태실지가 나온다. 일제가 부지를 매각한 탓에 친일파의 묘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초입부터 선비 흔적 묻어나는 길
진주에서 하동과 연결되는 국도 2호선의 곤명면 원전마을에서 옥종면 방향으로 4㎞를 달리면 오른쪽에 ‘범죄 없는 은사마을’이란 표석이 있다. 선비길은 여기서 시작이다. 마을 입구에 ‘은사동 도원곡’이라고 쓰인 비석이 있다. 이 마을이 중국 도연명의 시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이라는 의미다. 글씨는 이 마을 출신인 이현수 전 국회의원의 장인인 윤길중 제11대 국회부의장이 썼다. 여기서 100여m를 걸어가면 오른쪽에 아름다운 은사마을이란 뜻의 정자 ‘가은정’이 있고 맞은편에는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선비 형상의 조형물이 있다.
■오솔길 남아 있는 한적한 길
마을 앞 다리를 지나 오른쪽의 하천 둑길을 따라 걸었다. 길가에는 콩이나 들깨를 타작하고 남은 부스러기가 쌓여 있다. 추수를 끝낸 들판을 바라보니 시골 냄새가 물씬 풍겼다. 집집마다 있는 감나무에 빨갛게 익은 감이 아직 매달려 있고, 까치와 직박구리가 연신 홍시를 쪼아댔다. 꼭 고향에 온 듯 포근한 풍경이다.
이 마을에서는 대부분 논농사를 짓지만 들판 한쪽에는 비닐하우스와 블루베리 농장도 있다. 은사마을 끝에서 윗마을인 정골마을 입구까지 500여m는 자동차가 다니기 어려울 만큼 좁은 옛길 그대로였다. 정골마을 입구 부근 100여m는 사람이 다니는 길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눈치껏’ 길을 찾아야 할 구간이다.
정골마을에 들어서면 좁은 길을 따라 한쪽으로 집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스무 가구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은 조용하고 한적하다. 가끔 요란하게 짖어대는 개들이 사람 사는 동네임을 알려준다. 이 집 저 집을 내 집처럼 쳐다보며 걷다 보니 마을 뒤 야트막한 고개에 다다랐다. 이 고개를 넘으면 옥동마을이다. 울창한 밤나무와 메타세쿼이아 사이로 난 시멘트 길을 따라 잠시 걸었는데 너른 개활지다. 10여 분을 둘러보다 오른쪽 들판 아래로 봉긋한 소나무 숲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남도 기념물 31호로 지정된 단종 태실지다.
■세종과 단종의 태실지가 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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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사교구 옆에는 100여 년생 느티나무 아래 쉼터와 ‘마을유래비’, 가은정이 있다. |
세종은 손자의 태실을 자신의 태실과 가까이 두려고 이곳에 안치했다. 그러나 일제가 조선왕조의 정기를 끊는다며 경기 양주로 옮기고 부지를 매각했다. 지금은 일본강점기 중추원 참의를 지낸 자의 묘가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친일·반민족 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도 환수하지 못한 땅이다. 화려한 친일인사 묘 주위에 석물 몇 개와 안내판이 태실임을 말해주는 게 고작이다. 사천시와 문화재 관리단체가 친일인사 묘를 관리하는 모양새여서 씁쓸하다.
단종태실지에서 500여m를 더 가면 세종대왕태실지가 나온다. 애초 야트막한 산 정상에 태실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옮겨지고 일부는 훼손돼, 남은 것이라고는 석물 20여 개가 전부다. 그것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을 산 한쪽 귀퉁이에 모아 철책을 둘러놓은 정도다. 매년 10월 중순에 사천시 다인회에서 헌다례를 올리는 것이 유일한 추모 행사라고 하니 안타깝다.
주차장 옆에 서 있는 안내판은 일 년이 넘도록 ‘정비작업 중’이며 방치돼 있음을 알려준다. 당시 왕실이 세종의 태실을 설치하기 위해 태실도감을 두고 전국의 길지를 찾다가 한양에서 이곳까지 왔다. 그 정도로 명당이며 길지라는 말인데, 지금 모습은 세월의 흐름인가 싶다.
세종 태실지에서 삼정마을 쪽으로 하천을 따라 200여m를 가면 곤양군수 어득강이 태실지를 살피고 난 뒤 지역 유림과 시를 짓고 담론했다는 고반대(考盤臺)도 있다. 나중에 지역 유림이 계(契)를 만들고 해마다 시회(詩會)를 열었는데, 지금은 명맥조차 이어지지 않고 있다. 세종대왕태실지에서 처음 시작했던 은사마을 입구로 내려오는 1㎞의 길은 농로를 따라간다. 아스팔트의 차도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농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골길이 더 정겹다.
은사마을에서 만난 이재극(77) 씨는 “길이 다듬어지지 않아 불편할지 모르지만, 마을 구석구석에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며 “선현들 행적을 그리며 하루를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코스로는 제격이다”고 말했다.
이완용 기자 wyle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