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라돈이 부산 강서구 한 대단지 아파트를 덮쳤다. 입주민들은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물론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외면당했다. 손 놓은 정부 기관들 탓에 입주민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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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강서구 A아파트 한 가구 화장실의 화강암 선반에서 기준치를 훨씬 초과한 라돈(25.6베크렐)이 검출되고 있다. 서순용 선임기자 seosy@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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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본지 취재팀이 강서구 A아파트의 한 가구를 찾아 ‘라돈 아이’로 30분간 농도를 측정한 결과 시간대별로 ㎥당 740~925베크렐의 라돈이 검출됐다. 실내 라돈 농도 기준치인 ㎥당 200베크렐을 4배 이상 초과한 수치다. 특히 측정이 시작된 후 10분간은 화장실 환풍기가 작동됐는데도 라돈 농도가 높게 나왔다. 집주인 B 씨는 당혹스러워했다.
이 아파트가 라돈 공포에 휩싸인 건 지난 8일이다. B 씨는 전북 전주시의 한 아파트 세면대에서 라돈이 검출됐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직접 ‘라돈 아이’를 구매해 집 곳곳에서 농도를 측정했다. 그러자 화장실 선반과 현관 입구 등에 사용된 화강암 자재에서 기준치를 최고 7배 초과한 라돈이 측정됐다. B 씨는 같은 아파트 입주민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 이런 상황을 알렸다. 이후 문제의 자재가 5000세대에 가까운 이 아파트 전체 가구에 사용됐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공포는 빠르게 퍼졌다.
시공사는 B 씨가 집을 리모델링하는 바람에 다른 가구보다 라돈 수치가 높을 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라돈이 검출된 B 씨 집 화장실은 리모델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B 씨는 “정작 리모델링한 천장을 측정했을 땐 라돈 농도가 기준치의 절반밖에 안 됐다”며 시공사 측 주장을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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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아파트 거실 입구 화강암 재질에서 라돈이 검출되자 집주인이 은박지를 붙였다. 서순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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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민들은 폐암을 유발하는 라돈 검출 소식에 놀라 원안위 국토교통부 환경부에 문제 해결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원안위는 “생활주변방사선안전관리법이 정하는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우리 위원회 소관이 아니다”고 했다. 국토부 역시 “문제를 해결해 줄 기준이 없다”고 답했고, 환경부는 “실내공기질관리법에 라돈에 대한 기준이 있지만, 권고사항일 뿐이라 법적·행정적 도움을 주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A아파트 입주민들은 “정부가 국민을 보호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불안해했다.
A아파트 상황을 전달받은 학계와 정치권은 제도 개선을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부산가톨릭대 최정학(환경공학과) 교수는 “라돈 피해를 막을 제도적 틀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더불어민주당 전재수(부산 북·강서갑) 의원은 “관련법을 개정해 현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A아파트 시공사는 “14일부터 일부 세대를 대상으로 라돈 농도를 정밀 측정해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임동우 기자 guardia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