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을 어처구니없이 옥죄는 낡은 규제가 생활 속에 널려 있다. 하지만 규제를 개혁한다고 하면 산업과 연관해 특정 업체에 특혜를 주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게 사실이다. 불합리한 규제가 개선돼야 시민 불편을 해소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 국제신문은 급변하는 시대에 맞지 않는, 손질이 필요한 낡은 규제에 어떤 것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부산시의 노력으로 그간 어떤 생활 속 규제가 철폐돼 왔는지도 살펴본다.
- 농·임·축산물 제조가공업체
- 정부, 관리상 이유로 불허
- ‘로스팅 커피’조차 수출 못해
- 12년째 항만 경쟁력 발목
- 입주 67곳 중 60곳 창고업
“물류 환적 과정에서 지역 제조업과 연계해 부가가치를 높임으로써 항만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지난 10일 민선 7기 취임 100일을 맞아 부산 울산 경남 시장·도지사가 부산항 국제컨벤션센터에서 함께 개최한 토크콘서트에서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이렇게 밝혔다. 오거돈 부산시장도 “부산항의 물류처리량은 상당한데 부가가치가 다른 항만에 비해 3분의 1밖에 안 된다. 부가가치를 올리는 일이 급선무”라고 거들었다. 이렇게 되면 항만물류를 기반으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견인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낡은 규제가 부산항 신항의 미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농·임·축산물 제조가공 업종은 자유무역지역 입주를 제한한다는 내용의 산업통상부 ‘자유무역지역의 운영에 관한 지침’이 대표적 독소 조항이다. 산업부는 농·임·축산물 제조가공을 허용하면 밀수 등 관리상의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2006년부터 이 지침을 고수하고 있다.
농산물 생산·가공업체가 자유무역지역인 신항 배후부지에 들어오려다 규제 때문에 투자를 포기하기도 했다. 신항 배후부지에 입주한 물류업체 A사는 커피콩을 들여와 이를 로스팅해 수출할 계획을 세우고, 업종 전환을 하려 지난해 관세청과 협의하다가 중도에 포기했다. 부산항으로 들어올 때와 나갈 때의 무게가 같아야 하는데 제조가공상 발생한 차이인지, 밀수로 악용됐는지 입증하기 어려워 공장 설립을 제한한다는 게 관세청의 설명이다. B 사는 350억 원을 투자해 200명을 고용하는 육류가공 공장을 신항 배후부지에 입주시키려 했으나 규제에 가로막혔다. 또 일본 유제품 업체인 C 사는 국내사와 손잡고 이곳에 유제품 가공공장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높이려 했으나 이 또한 업종제한 규제가 풀리지 않아 보류됐다. 부산시가 파악한 C 사의 투자액만 300억 원, 고용인원은 90명에 이른다.
더군다나 산업부 내부 지침에는 법률 규정이나 상위법의 위임 근거조차 없는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된다. 부산시는 “법적 근거가 없는 내부 지침으로 신규 제조가공업체 유치를 제한하는 것은 지나친 행정편의주의적 과잉 규제”라며 폐지를 요구했다. 시는 규제 철폐를 위해 지난 2일 열린 국무조정실 회의에서 산업부와 관세청 등 관계자와 회의를 열었다.
자유무역지역은 반입된 외국물품에 관세 부과를 유보하고, 임대료가 저렴하며, 각종 조세를 감면하고, 규제를 완화해줘 입주를 원하는 업체가 많다. 현재 부산항 신항 배후부지에 입주한 업체 총 67곳 중 제조업은 7곳(기계부품조립가공)에 불과하고, 나머지 60곳은 모두 창고보관 업종이다. 생산성을 높일 제조업의 비율은 10%에 그친다. 시 관계자는 “커피콩은 로스팅 후 판매하면 가격이 30배로 뛰어 부가가치가 매우 높다”며 “이렇게 생산성이 뛰어난 농·임·축산물 제조가공업체를 신항 배후부지에 유치하면 투자와 고용을 창출해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선정 기자 sjle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