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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1-1> 장병윤의 귀농이야기- 가느개에서 보낸 사계

자연의 리듬에 맞춰 몸을 굼니니(꿈지럭거리는) 행복하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9-02 18:50:44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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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가장 큰 로망이 귀농·귀촌인 때가 있었다. 지금도 유효하다. 은퇴자들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직장인들도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에 국제신문은 귀촌인들의 목소리를 현장에서 직접 생생하게 듣는 ‘귀촌’ 시리즈를 시작한다. Ⅰ부는 언론인 출신 장병윤 씨를 통해 귀농을 결심하기부터 실행까지 몸소 겪은 이야기를 들어본다. Ⅱ부에서는 부산 울산 경남의 귀촌인들을 찾아가 만나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 소음·인공 불빛·뉴스 없는
- 삼무지락의 가느개 살이
- 손바닥만 한 땅뙈기에
- 텃밭 수준의 농사라
- 귀농이라기엔 낯간지럽고

- 한 달에 한두 번씩
- 부산과 원주 들락거리니
- 미심쩍어하던 토박이들도
- 서툰 자연농법엔 관심 각별
- 지난 봄 소소한 집들이 후론
- 주민으로 받아 주는 낌새다

- 서너 시간 땅에 머리를 박고
- 흙냄새 맡으며 땀 흘리니
- 육체와 정신이 균형 잡혀간다

해 질 녘 남한강을 싸고돌며 아득히 펼쳐진 산등성이 위 서쪽 하늘은 진홍의 물감을 푼듯 황홀하다.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풍광을 연출하며 눈길을 사로잡는 이곳의 활짝 열린 하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설레며 자연과 더불어 숨 쉬고 있음을 실감한다.
   
활짝 열린 하늘은 시시각각 새로운 풍광을 연출하며 자연의 품에서 숨쉬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멀리 보이는 산은 미륵산.
잿빛 구조물 사이에서 자연과 단절된 일상에 익숙해 있던 시선에 널찍하게 열린 하늘은 놀라움 그 자체다. 하늘과 함께 산과 강, 들이 변주해내는 이곳의 풍광은 닫혔던 도시의 마음을 자연의 경이와 우주의 질서 앞으로 안내한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느릿하고도 평화롭다.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는 자연의 넉넉한 품은 지친 몸과 마음을 맡기기에 충분하다.

내가 귀농한 곳은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단강리 ‘가느개마을’, 세포(細浦)마을이다. 지명으로 봐서 남한강이 물산의 대동맥 역할을 할 때 이곳까지 나룻배가 드나들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도심에서 시내버스로 한 시간쯤 걸리는 이곳은 원주시 서남쪽으로 백운산에서 발원해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운계천을 사이에 두고 충북 충주와 접경을 이룬다.

   
국제신문에서 정년퇴임을 한 뒤 귀농한 장병윤 씨. 얼굴엔 무공해 천연 팩을 붙였다.
남향받이인 마을 뒤로는 안온한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산자락 아래로 밭들이 펼쳐져 있다. 마을 앞 도로 건너엔 제방을 쌓아 일군 논들이 제법 널찍하다. 서쪽으로 5분 정도 달리면 남한강이 나온다. 한때는 쉰 가구 넘게 살았는데 지금은 여느 농촌처럼 퇴락한 채 10여 가구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 이 마을의 작은 농가를 구해서 들어왔다. 열댓 평쯤 되는 농가 주택에 백여 평의 밭이 딸려 있다. 나이 들면 더 따뜻한 곳을 찾게 마련인데, 왜 멀고도 추운 원주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현실적인 요인들보다는 마음이 그곳에 쏠렸다고 해야 할 성싶다. 어지러운 시절 무위자연의 삶을 제대로 보여준 장일순 선생의 향기가 남아 있는 지역이다. 마음 넉넉한 어르신과 벗들이 생명의 가치를 앞세워 생태적 삶을 함께 모색하고 실현하는 곳이라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왔다.

솔직히 가느개에서 나의 삶은 귀농이라고 하기에 낯간지러운 면이 있다. 손바닥만 한 땅뙈기에 텃밭 수준의 농사니, 귀농이라 하기에 민망하다. 부산생활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하고 한 달에 한두 번씩 양쪽을 드나든다. ‘셔틀귀농’인 셈이다.

하지만 농사를 전업으로 하는 것만이 귀농이라 규정짓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농촌공동체가 농사일로만 살아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마을에는 농부 외에도 집 짓는 이, 아이 가르치는 이, 이발하고 미용하는 이도 필요하다. 모든 걸 자급할 수 없는 이 시대에 농촌공동체에 필요한 역할을 하면서 어울려 사는 게 바로 귀농 아니겠는가. 지난 일 년 이곳에서 자연의 풍광에 매료되고, 밭일에 몰두하면서 서서히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다. 농작물을 가꾸고 집 안팎을 수리하는 등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면서 도시생활의 독을 빼는 시간이었다. 부산에서 들락날락하는 나를 미심쩍어하던 토박이들도 지난봄 집들이 뒤엔 주민으로 받아들여 주는 낌새다.

   
원주 가느개마을에서 자연농법으로 키운 토마토. 잡초와 함께 자라 이파리는 볼품없지만 때깔 좋고 육질이 단단해 맛이 진하다.
이곳 생활은 풍광의 중요함을 새삼 깨닫게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바라보는 풍광이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너무 소홀하게 생각한다. 문명이란 이름 아래 풍요와 편리를 누리고 있지만, 자연과 결별한 채 살아가는 도시의 삶은 본질적으로 소외된 삶이다. 자연 속에서 느리게 전개되는 일상은 보이지 않는 문명의 사슬로부터 해방감을 선사하면서 몸과 마음의 주체를 되찾게 한다. 자연의 시간, 우주의 질서에 순응하는 일상은 몸의 활력과 마음의 안정을 가져온다.

나는 가느개 생활을 ‘삼무지락(三無之樂)’으로 소개하곤 한다. 이곳 생활이 번잡한 도시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만 그중에서도 세 개가 없다는 게 너무 좋다. 소음과 인공불빛, 뉴스가 없다. 밤에 집안의 전등을 끄면 칠흑 같은 어둠이 사방을 장막으로 둘러치거나 고요한 달빛이 마당으로 부서져 내린다. 마을 앞을 2차선 지방도가 지나가지만 차량통행이 뜸하다. 차 소리마저 끊긴 밤에는 풀벌레 소리 새 울음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인터넷을 들이지 않고 TV를 보지 않으니 뉴스가 없다. 평화롭고 적요한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소음과 빛의 공해에 시달렸는지, 넘쳐나는 정보의 범람에 휩쓸려 살았는지 새삼 깨닫는다.
이곳에서의 일상은 단조롭다. 하루 서너 시간 밭일을 하고, 서너 시간 책을 읽고, 한 시간 반 정도 운동을 한다. 책 보고 운동하는 것은 도시에서와 같으나, 집중도는 이곳이 훨씬 높다. 요즘은 주로 동학 관련 서적이나 다석 선생의 글을 읽는데 명료하게 잘 들어온다. 퇴직 뒤 건강을 위해 배운 몸살림운동도 자연의 기운을 받으면서 해서 그런지 호흡과 몸짓을 통해 몸을 온전하게 느낀다.

농번기를 제외하고는 새벽에 제방 길을 걷는다. 남한강 샛강 어귀까지 천천히 걸으면서 흘러가는 물길, 오리 떼와 재두루미의 날갯짓, 날마다 달라지는 숲과 들판의 색을 살핀다. 길섶의 작은 꽃 한 송이를 들여다보면서 세상이 인드라망처럼 얽혀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깨우친다. 들길에서 ‘화엄의 세상’을 알아채며 하루를 시작한다.

   
지난해 귀농을 위해 마련한 가느개마을 집. 열댓 평 주택에 백여 평의 텃밭이 딸려 있다.
비록 백여 평 남짓밖에 되지 않은 밭이지만 내게는 소중한 농토고 거룩한 일터다. 평소에 생각해오던 자연농법을 실천하고 있다. 거름조차 주지 않는 ‘무투입 농법’이다. 작물들 사이에 난 풀을 베어 덮을 따름이다. 부산 집에 갔다가 일주일 만에 올라와도 풀들은 무릎까지 자라 아우성이다. 낫으로 잘라 이랑 위에 덮는다. 덮은 풀들이 삭으면 자연스레 거름이 되고, 수분을 유지하고 풀의 번성을 막는 멀칭효과를 낸다.

요즘처럼 뜨거운 날씨에는 낮에 일할 엄두를 못 낸다. 새벽녘이나 저녁나절 두 시간씩 일한다. 뙤약볕을 피한 시간이라도 잠시 움직이면 온몸이 땀에 젖는다. 무더위 속에서도 일에 몰두하면 마음과 생각들이 집중되고, 일이 끝난 뒤 땀을 식히면 그렇게 편안하고 행복할 수 없다.

자연이 주는 풍성한 수확에 늘 감사한다. 씨앗만 뿌리고 부산으로 오가며 제대로 돌보지 못해도 때가 되면 잘 여문 열매를 선사한다. 토마토나 가지 오이 상추 등은 육질이 단단하고 맛이 진하다. 수경재배나 하우스재배로 나온 시중의 것과 비교가 되지 않고 특히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하다.

가느개마을에는 일곱 가구가 붙박이로 살고 나처럼 들락거리며 사는 가구가 일곱 가구다. 상주하는 가구는 오랫동안 살아온 토박이로 연로하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 세대가 세 가구나 되고, 월남전에 참전했던 70대 부부, 엽채와 고추 등 하우스 농사를 짓는 반장 부부와 설비기술이 있는 농사짓는 택시기사에다 몇 해 전 전원주택을 짓고 귀농한 은퇴 부부 등 60대가 세 가구다.

우리 부부가 마을에 처음 들어서는 날, 땡볕 아래 콩밭을 매던 할머니(아흔이 내일모레다)가 허리를 펴면서 어디서 오느냐며 말을 건넨다. 부산에서 이곳으로 이사 오는 가족이라고 하니, 당신의 일흔 난 첫딸이 마산에 살고 있다며 이야기타래를 푼다. 밭머리에 앉아 해방과 전쟁을 겪었던 이야기며 일곱 자식을 낳아서 건사한 이야기 등 끝이 없다. 생면부지인데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뤄져 내심 적잖이 놀랐다.

마을 사람들은 내가 작은 밭뙈기에 짓는 농사에 관심이 각별하다. 마치 자기 일인 양 일일이 들여다보고 훈수를 둔다. 앞집 할머니는 손수 갈무리한 양대와 땅콩, 옥수수 등 씨앗을 주고 옆집에 사는 월남참전 아저씨는 고구마 모종을 가져다준다. 그게 고마워서 두유를 한 박스씩 사드렸는데, 처음 한 번 받고는 다음부터는 사양하신다. 복숭아도 따주고 자식들이 사온 이것저것을 나눠준다.

아직 가느개 살이가 서툴지만 새롭고 흥미롭다. 땅에 머리를 박고 흙냄새를 맡으며 땀을 흘리고 나면 온몸이 개운하다. 지금까지 머리로 살아온 내게 몸을 굼니는 밭일은 육체와 정신의 균형을 잡아준다. 자연의 시간에 맞춰 하루하루를 보내고 우주의 리듬에 일상을 맡기면서 이제껏 누려보지 못했던 행복감을 만끽한다. 농부의 마음과 몸이 만들어지면 이웃의 노는 땅을 빌려 제대로 농사지어 볼 요량이다.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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