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도 변호사가 됐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결국 스스로 꿈꿔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합니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한 소녀가 새내기 변호사가 됐다. 주인공은 법무법인(유한) 정인(正人)에서 수습교육을 받고 있는 김지수(27) 변호사다.
1997년 터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당시 많은 기업이 문을 닫고 해고자들이 속출했다. 행복했던 가정들도 순식간에 무너졌다. 김 변호사의 집도 IMF 외환위기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었다. 당시 김 변호사는 4살 때부터 키워온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었다. “꼭 그 이유는 아니었지만 피아노를 그만 두는데 영향은 있었다”며 “IMF 외환위기 이후 아버지의 사업에 문제가 생겼다. 사업이 반짝하고 좋아지는 게 아니다 보니 학창시절 상황이 계속 어려워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건설업을 하던 김 변호사의 아버지는 여러 법적 분쟁들에 휩싸였다. 그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김 변호사는 이때부터 법조인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김 변호사는 “어린 마음에 열심히 공부해서 아버지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변호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와이즈유 법학과,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졸업하고 올해 변호사 시험에 한 번에 합격했다. 로스쿨 졸업시험(변호사 모의시험)에서는 수석을 차지했고, 변호사 시험은 1100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공부비법에 대해 “특별한 게 없다. 단지 ‘엉덩이가 무거워야 합격한다’라는 말을 철저히 지켰다”고 했다. 수험생 시절 매일 학습실에 들러 하루 12시간을 공부했다. 효율성 보다는 한 가지 부분이 막히면 이해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파고들었다.
김 변호사는 변호사시험을 치렀던 날을 잊을 수 없다. 그는 “시험장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자마자 부모님이 눈물을 펑펑 흘리셨다. ‘우리 딸 대견하다. 너무 고생 많았다’라는 말에 수험 생활동안 수험생인 저만큼이나 함께 아파하고 힘들어했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외로운 수험생활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지켜봐 주신 부모님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현재 변호사 실무수습을 받으면서 변호사로서 자신만의 색을 찾아 가고 있다. 김 변호사는 “저는 변호사를 의뢰인들의 ‘법적인 보호자’라고 생각한다”며 “여러 분야의 전문 변호사가 있지만 사람의 인권이 기초가 되지 않는 변호사는 위험할 수 있다. 인권의식을 가지고 있는 변호사. 그만큼 소외계층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그런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김지수 변호사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 이런 평을 듣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채호 기자 chaeho@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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