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남아보다 더운데 에어컨 OFF
- 태국 냉방시스템 잘 갖춰 시원
- 한국은 전력공급 불안 가동 꺼려
- 1974년 석유파동때 누진제 도입
- 기업은 산업활동위해 싸게 공급
- 가정엔 에너지 절약 유도 불합리
- 정부 “관공서 내 26~28도 유지”
# 일본도 누진제 적용, 다른 대응
- 日 3단계 요금 격차 최대 1.5배
- 전력 소매시장 자율화로 저렴
- “열사병 우려, 냉방시설 가동”
- 경로당 마을회관 은행 도서관 등
- 부산 등 무더위 쉼터 개방 수준
올해 역대 최악의 폭염이 이어지면서 국민은 폭염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에어컨이 있어도 전기료 걱정에 마음껏 틀지 못한다. 폭염취약계층은 기껏해야 경로당이나 은행 등 무더위 쉼터에서 잠깐 더위를 피할 뿐이다. 문제는 폭염이 올해로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전기료 체계 개편 등을 통해 냉방을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폭염을 자연재난으로 규정하기로 한 만큼 적극적인 조치로 국민의 환경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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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무더위쉼터가 마련된 부산 북구 만덕동 중리경로당을 찾은 어르신들이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날 봉사단체 회원이 어르신들에게 수박 등 음식을 제공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
■동남아보다 더운데 에어컨 못 틀어
지난달 24일 태국 방콕의 환경기후시설국 소속 부시장 등 일행 71명이 환경시설물 인프라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부산환경공단을 찾았다. 이들이 환경공단 관계자들에게 한 첫마디는 “방콕보다 더 덥다”였다. 태국의 통상 8월 기온은 최저 25도, 최고 33도로 우리나라 기온과 비슷하다. 하지만 실제 체감하는 온도는 다르다. 태국은 국토의 28%가 삼림지대로 도심 곳곳에 나무를 심었다. 또 6월부터 10월까지는 우기에 속해 하루 30분 정도 갑자기 비가 쏟아져 내리는 스콜 현상이 일어난다. 이 때문에 태국 국민은 우리나라처럼 푹푹 찌는 듯한 더위를 느끼지 않는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 태국의 냉방시스템은 잘 갖춰져 있다. 태국만이 아닌 동남아 국가가 대체로 그렇다. 한국 관광객이 여름철 동남아 관광지로 여행을 많이 가는 배경이기도 하다. 지난달 중순 베트남 다낭에 다녀온 장지훈(31) 씨는 “기온은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어딜 가든 시원해서 특별히 더위를 느꼈던 적이 없었다”며 “일반 가정에서 숙박한 3일 동안 에어컨을 계속 틀어도 전기료 걱정은 안 했다”고 말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폭염 대비가 잘 돼 있지 않다. 현행 전기요금 체계로 무작정 냉방시설을 가동할 수 없다. 한국전력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4인 가구가 소비전력 1.8㎾ 스탠드형 에어컨을 하루 3.5시간만 사용해도 사용 전보다 월 6만3000원을 더 내야 한다. 10시간 사용 시에는 에어컨 사용료만 17만4000원이 증가해 총 22만9000원이 부과된다. ‘전기료 폭탄’이 두려운 서민의 가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충분하지 못한 전력공급량도 냉방시설을 마음껏 가동하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다.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을 우려해 정부는 관공서의 적정 실내온도(26~28도) 준수를 권고했다. 그럼에도 최대 전력수요는 지난 20일 기준 8808만 ㎾를 기록,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예비 전력은 1000만 ㎾ 이하로 떨어졌다. 신재생 등 친환경 에너지를 활용해 전력공급량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환경운동연합 최수영 사무처장은 “이제는 불합리한 전기료 체계를 바꿔야 한다. 기업의 산업활동이 위축된다고 값싸게 공급해준 패러다임에 변화가 필요하다”며 “가정용 요금에 누진제를 폐지하면 전력수급에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단계적으로 새로운 체계를 짜 일상화될 폭염시대에 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편하게 쉴 무더위 쉼터도 필요
전기료 부담은 ‘폭염 난민’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이는 가정에서 냉방시설 가동을 줄이는 대신 냉방이 잘돼 있는 백화점과 마트 등에서 머무는 시민을 뜻한다. 올해는 경로당이나 은행, 도서관 등이 무더위 쉼터로 지정돼 시민에게 휴식처를 제공한다. 그러나 대부분 좁은 공간에 개방 시간도 짧아 시민이 맘 놓고 편하게 쉴 수 없다. 박모(65) 씨는 “무더위 쉼터라고는 하지만 불편한 의자에서 오래 앉아 있기가 쉽지 않다. 오전부터 밤까지 더운데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길어봤자 한두 시간 정도다”고 불평했다. 지역 1006개의 무더위 쉼터 중 야간에도 개방하는 곳은 37개소뿐이다. 부산시는 올해 경로당 마을회관 노인정 냉방비 지원금을 25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올렸다. 이외 다른 무더위 쉼터의 냉방비는 지원되지 않는다.
■전기요금 체계 개편해야
우리나라는 가정용 전기요금에 누진제를 적용한다. 1974년 제1차 석유파동으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전기절약을 도모하고 저소득층 요금 부담을 덜고자 도입됐다. 구간은 3구간으로 나뉜다. 1구간(200㎾ 이하)은 ㎾당 93.3원, 2구간(201~400㎾)은 187.9원, 3구간(400㎾ 초과)은 280.6원의 요금이 붙는다. 전력 사용량이 많은 7~8월과 12~2월에는 월 사용량이 1000㎾를 넘을 시 ㎾당 709.5원이 적용된다.
올해 같은 폭염을 겪는 일본의 전기료 체계는 우리와 다르다. 일본은 누진 구간이 3단계로 돼 있기는 하지만 1~3단계 요금 차이는 최대 1.5배에 그친다. 도쿄전력 기준 시 1단계(120㎾)는 ㎾당 19.52엔(195원), 2단계(120~300㎾)는 26엔(260원), 3단계(300㎾ 이상)는 30.02엔(300원)이다. 사용량이 급증해도 누진제를 일률적으로 적용한다. 또 일본은 전력소매 시장 자율화를 실시해 전력 공급사간 경쟁으로 전기료가 낮다. 주말과 야간 등 다양한 할인요금제도가 있어 이를 잘 활용하면 싼값에 전기를 이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전기료 폭탄 걱정이 없는 일본은 정부가 오히려 냉방시설 가동을 권장한다. 후생노동성은 최근 “절전보다 열사병 등 폭염 대비에 더 만전을 기하라”는 홍보물을 제작해 배포했다.
전기료 체계를 바꾸라는 국민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정치권도 잇따라 누진제 폐지 관련 법안을 내놓고 있다. 하태경(바른정당) 국회의원은 특별재난 수준의 폭염기간에 누진제를 면제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조경태(자유한국당) 의원은 전기요금 누진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내놓았다. 이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