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피고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불출석한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의 ‘국정원 특활비 상납·옛 새누리당의 선거 공천 개입’ 관련 1심 선고공판이 열리고 있다. 이날 열린 재판에서 박 전 대통령은 ‘국정원 특활비’ 징역 6년·33억원, ‘공천개입’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왼쪽부터 이승엽 판사, 재판장 성창호 부장판사, 강명중 판사.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혐의와 관련해 1심 재판부가 징역 6년에 추징금 33억 원의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성창호 부장판사)는 20일 오후 박 전 대통령의 ‘국정원 특활비 수수’ 혐의와 ‘공천개입’ 혐의에 대한 선고 공판을 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기한 횡령에 의한 국고 손실 혐의에 대해 “피고인이 수령한 33억원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다”고 판결했다.

성 판사는 “국정원 특활비와 관련해 청와대 3인의 비서관으로부터 (피고인이) 법적으로 문제 없다면 받아서 사용하라고 지시했다는 진술이 나왔다”며 “국정원장들이 피고인의 지시 요구에 따라 특별사업비를 전달했음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공모관계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특별사업비로 증액된 돈이 계속 사용된 점에 비춰볼 때 피고인이 자금 증액을 지시하지 않았으나 암묵적인 공모 관계가 인정된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또 재판부는 “특수활동비는 기밀유지가 필요한 사건수사나 국정 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돈으로, 사용내역의 증빙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해당 기관의 목적 범위에서 엄격하게 사용돼야 한다. 국정원장 특별사업비는 특수활동비의 하나로 국정원장의 직무 범위에 한정돼야 한다”며 “특수활동비는 사용 내역을 증빙할 필요가 없어도 사업 목적에 한정해 국정원장의 재량권이 있다. 법률이 정한 엄격한 절차에 따라 사업비의 목적 전환이 가능하다”고 전제했다. 이어 재판부는 “피고가 특활비의 불법 영득 의사가 없거나 위법성 인식이 없었다는 점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며 박 전 대통령의 국고 손실 혐의는 유죄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국고 손실 공소 사실 중 피고인이 받은 2억 원에 대해서는 공모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성 판사는 “특별사업비의 정기적인 전달은 국정농단 의혹이 발생하면서 피고인의 명시적인 지시 승인에 의해 중단됐다. (특활비 전달에) 피고인이 직접 관여했다고 볼 근거가 없다. 국정원장이 자발적으로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며 “범죄 성립 이후 사정으로 피고인을 횡령 혐의의 공범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단을 했다. 재판부는 “대통령은 정부 수반으로 국정원 차장 등을 임명할 수 있다. 대통령의 지휘 감독 하에 국정원 업무가 수행된다”면서도 “대통령과 지휘를 받는 국정원장이 업무 관계가 있다고 해서 뇌물 수수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통상 공무원 뇌물수수는 청탁을 매개로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금품을 주는 식으로 이뤄진다. 이번 사건은 상하급 공무원간의 뇌물 공여와 다른 점 있다”며 “피고인이 특별사업비를 전달 받은 것은 횡령한 공범들 사이에서 귀속받은 것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과거 국정원 자금을 청와대가 지원 받은 사례가 있는데다 국정원이 대통령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하부 기관으로서 예산 지원 차원에서 특별사업비를 청와대에 지급했을 것으로 본다는 게 재판부의 입장이다.

성 판사는 “공모자들이 청와대 밖에서 은밀한 방식으로 돈을 주고 받은 것은 국정원 내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의식한 행동으로 해석된다”며 “국정원장들이 국정원장 임명에 대한 대가로 피고인에게 사례 보답할 동기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국정원장 직무 수행을 위한 각종 편의를 기대했다고 보기에는 현실적 동기기 부족한데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국정원장들이 피고인에게 지급한 특별사업비를 직무와 관련한 대가성으로 보는데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박 전 대통령 측이 2016년 20대 총선에서 비박계 후보를 배제하고 친박 후보를 대거 당선시키기 위해 선거운동 기획에 관여하고 새누리당 경선에 참여하는 등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있다며 공소 사실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당시 친박과 비박 진영이 갈등을 겪는 상황에서 국민경선이 비박에 유리한 상황이었다”며 “피고인이 총선 이후 당을 친박 세력이 차지하는 걸 목표로 삼고 전체 행위에 가담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현기완이 정무수석실 내 신동철 등에게 선거 전략을 수립하도록 지시했고, 피고인이 총선 관련 자료를 보고 받고 지시했다는 증언이 정무수석실 지원들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이에 재판부는 “오랜 기간 여론 조사가 이뤄지고 총선 관계 자료가 만들어진 뒤 선거 관련 전략의 상당수가 실행됐다”며 “정무수석 개인이 대통령 승인 없이 10억 원이 넘게 소요되는 행위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피고인의 묵시적 승인 아래 진행됐을 것”이라고 판단 내용을 설명했다.

재판부는 “공천관리 위원장을 대통령이 지정했다는 진술과 당시 정치적 상황, 새누리당 권력 역학 관계 등을 종합해 볼 때 정무수석 현기완이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서 공천관리위원회 구성에 관여했다”며 박 전 대통령의 공모를 인정했다.

또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시와 총선 관련 자료 작성 등의 행위가 공직선거법이 금지하는 기획 행위에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성 판사는 “총선 실시 전에 미리 지지율이 많이 나오는 친박 인물이 누구인지 알고 후보로 내 당선시킬 목적으로 볼 수 있다”며 “총선에서 친박 인물의 선거운동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계획 수립 차원에서 공직 선거법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성 판사는 “당내 경선 과정에서 친박 후보자가 지역구를 바꾸도록 종용한 것은 공직선거법이 금지하는 경선운동에 해당한다”며 “이런 이유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선고에 앞서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24년을 선고받았다. 이번 1심 형량까지 합치면 박 전 대통령은 총 32년간 징역을 살게 된다. 이승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