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길찾기 추진위’ 구성
- 본지 캠페인 호응 힘입어 시작
- 68만 명 참여한 축제로 거듭나
# 부산 대표 관광상품 ‘갈맷길’
- 9개 코스 278.8㎞ 91시간 거리
- 외국인 포함 939명 전체 완주
# 숨겨진 전설 스토리텔링 성과
- 길마다 품고 있는 지역·생활사
- 이야기꽃 더해 문화콘텐츠로
올해로 10살을 맞은 부산 갈맷길. 2009년 6월 해안·강· 숲 따라 길이 열렸고, 어느덧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만큼 흘렀다. 지난 10년의 세월 동안 갈맷길은 헤아릴 수 없는 부산시민의 발걸음 소리와 함께 성장했다. 어떤 이에게는 힐링의 길로, 또 어떤 이에게는 명상과 사색의 길로, 또 다른 이에게는 치유의 길이었다. 덜 걸음으로서 생기는 정신적, 육체적 문제의 해결사였던 것이다. 비록 많은 수는 아니지만 갈맷길을 찾는 외지인들도 꾸준해 길동무 또한 다양해졌다.
 |
| 갈맷길은 부산의 생활길이면서 문화자산이다. (사)걷고싶은부산은 ‘갈맷길 그린워킹’ 행사를 10년째 이어오면서 길 지킴이와 알림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사진은 2014년 6월 제56차 부산 금정구 오륜동 그린워킹 행사. 국제신문DB |
내년 가을엔 갈맷길을 주 무대로 ‘걷기 아시안게임’으로 불리는 ‘부산 ATC(아시아 트레일즈 콘퍼런스)’가 열린다. 아시아권 민간 트레일 단체와 회원 1000여 명이 참가할 예정. 갈맷길을 국제무대에 첫 선보이는 셈이다. 부산만의 길을 더욱 격조 있게 다듬는 계기로 삼아야 함은 물론이다. ‘걷고 싶은 도시’를 표방하는 부산에 주어진 새로운 과제인 것이다.
명품길을 만드는데 지름길은 없다. 무엇보다 지역민들이 갈맷길을 많이 걷고, 제대로 알아야 한다. 좋으면 좋은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피드백이 계속 일어나야 길의 보완과 개선도 신속, 지속화될 수 있다. 10년을 맞은 지금, 갈맷길의 재조명부터 필요한 이유다.
 |
| 봄 쑥을 캐며 수다 떠는 ‘쑥덕쑥덕’ 그린워킹(2011.4) |
갈맷길을 걸으면서 동행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어떻게 갈맷길이 만들어졌는지 아느냐”고. 어렴풋이 나마 대답하는 사람조차 찾기 어려웠다. 갈맷길 마니아도 이런데 일반 시민들이야. 그런데 당연한 것이다. 걷기는 우리 삶에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 행동 아닌가. 길은 있으면 되는 것이지 굳이 연혁까지 시시콜콜 기억하고 알 필요는 없는 게다. 그럼에도 이참에 우리가 갈맷길 10년의 발자취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은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부산 ‘걷기 문화’의 서막
국제신문은 일찍이 ‘그린워킹(Green Walking) 문화혁명’을 기치로 시민 걷기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그린워킹을 자연과 생명을 중시하고, 성찰을 통해 녹색 성장을 추구하는 생활 속 문화혁명으로 봤기 때문이다. 이것이 불쏘시개가 돼 지난 2008년 5월 부산지역 30여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부산의 길, 생명의 길 찾기 추진위원회’가 구성되고, 이듬해 4월 ‘부산 길걷기 시민모임’이 발족됐다.
탄력을 받은 국제신문과 길걷기 시민모임은 MOU를 통해 체계적 도보길 조성 등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고, 부산시가 가세하면서 그린웨이 구축 사업이 궤도에 올랐다. 당시는 몸과 마음의 치유·회복을 의미하는 힐링(Healing)이 우리 일상에서 중요시되면서 걷기의 생활화, 전문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 또한 높아지던 때였다.
우리나라에서 계획적인 도보여행길 조성의 시작은 제주도다. 부산보다 빠른 2007년 9월 (사)제주올레가 발족하면서다. 제주는 섬 한 바퀴를 도는 도보길을 ‘집에서 거리까지 나가는 작은 길’을 뜻하는 제주방언을 끌어와 ‘올레길’이라 이름 붙였다.
 |
| 영도다리 복원 기념 추억의 그린워킹(2014.3) |
‘갈지(之)’자 형상처럼 산, 강, 바다를 모두 포함하는 부산의 길은 어떻게 통칭할 것인가. 국제신문과 부산시, 부산 길걷기 시민모임은 네이밍 시민 공모를 실시했다. 그 결과 2009년 5월 24일 부산의 상징인 ‘갈매기’와 ‘길’을 결합한 ‘갈맷길’로 결정됐다. 또한 갈맷길은 짙은 초록색을 뜻하는 순우리말 ‘갈매’와 ‘길’의 합성어이기도 하다.
사전 준비를 끝내고 부산시는 2009년 6월 7일 전국 광역단체 중 최초로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 선포식을 개최했다. 공식적으로 이날이 갈맷길의 출발인 셈. 이후 시는 2년여에 걸쳐 628억 원을 집중 투입해 갈맷길을 비롯한 부산 전역 184개소 863㎞에 이르는 도시 그린웨이를 조성했다. 부산시의 걷기 문화 정착을 위한 다각적 노력은 2015년 갈맷길 조례 제정으로 이어졌다.
국제신문은 2009년 10월 부산 길걷기 문화의 전위 역할을 수행하고자 비영리 단체인 (사)걷고싶은부산을 창립했다. 시민건강 증진과 슬로우 라이프의 실현, 길을 통한 부산의 재창조를 목적으로 뒀다. 걷고싶은부산은 2009년 11월 부산시와 함께 제1회 갈맷길 축제를 열었고, 올가을이면 10회째를 맞는다.
(사)걷고싶은부산은 혹한·혹서기를 제외하고 매월 ‘갈맷길 그린워킹’ 행사를 많은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개최하고 있다. 걷기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도 병행한다. 제1차 그린워킹 행사가 열린 것은 갈맷길이 결정되기 이전인 지난 2008년 6월 낙동강 삼락길에서다. 그게 중단되지 않고 계속 이어져 올해 6월 23일 제78차 갈맷길 그린워킹이 화명수목원~금정산성 동문솔숲에서 열렸다. 그간 행사 때마다 도보 거리는 평균 7㎞. 78차까지 550㎞쯤 걸었으니 갈맷길을 두 바퀴 돈 셈이다. 갈맷길이 열리면서 지역 걷기 동호회도 늘어나 80여 개에 이르고 있다. 이들 동호회는 갈맷길 그린워킹 행사의 단골. 각 구·군 갈맷길 걷기 대회 및 축제 시민 참여도 2013년 연 32만 2200명에서 2017년 68만 5600명으로 증가했다.
■숫자로 본 갈맷길
 |
| 동해남부선 폐선 기념 기차길 그린워킹(2013.12) |
애초 263.8㎞로 시작한 갈맷길은 가장 최근 6-3코스(구포역~금정산성 동문 11.3㎞) 구간이 신설되는 등 조금씩 보완을 거쳐 현재 9개 코스, 21개 구간, 총연장 278.8㎞로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제주올레길(425㎞) 보다 147㎞ 짧지만 만만찮은 거리다. 산술적으로 전 코스를 답사하려면 어른 걸음으로 약 91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평지라도 일반인이 하루 10시간 30㎞를 걷는 것은 육체적으로 힘들다. 매일 그게 가능하다손 쳐도 갈맷길을 완주하는 데는 최소한 9일이 소요된다. 코스별 난이도까지 감안하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개인별 편차 또한 클 수밖에 없다.
갈맷길을 완주하고자 하려면 남다른 각오와 인내심이 필요하다. 포상은 성취감이다. 2013년 1월부터 실시한 ‘도보인증제’는 갈맷길 전체 코스를 걸은 사람을 ‘완주자 클럽’에 올리는 제도. 단지 빠르게 걷는 것이 아니라 느림의 미학으로 머물며 즐길 수 있는 갈맷길로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행됐다.
제1호 완주 주인공은 도입하자마자 탄생했다. 부산시민 박수선(60) 씨는 그해 1월 1일부터 짬날 때마다 걷기 시작해 1월 20일 전 코스 완주 도장을 찍었다. 총 도보 시간은 88시간. 당시는 지금보다 15㎞ 정도 짧았다. 그는 오래전부터 걷기 동호회에서 활동한 도보 마니아다. (사)걷고싶은부산 자원봉사자로도 참여했다. 이런 인연으로 혼자서 갈맷길을 걸어 첫 완주자로 등재가 된 것이다. 지금도 그는 그린워킹 행사에 한결같이 참여하고 있다.
2018년 6월 말 현재 갈맷길 완주자는 총 939명이다. 지난 5년의 추이로 볼 때 연내 1000명을 가뿐이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완주자 중에는 부산시민이 당연히 856명으로 가장 많다. 하지만 외지인들도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경남(42명)에선 가까운 양산, 김해뿐만 아니라 함안, 거제, 사천 시민들도 갈맷길을 찾았다. 서울을 비롯해 용인, 의정부, 김포, 성남, 안양, 구리, 화성 등 수도권의 원정 도보 꾼도 27명이 포함돼 있다. 대구·경북 6명, 호남 3명도 갈맷길 완주자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부산외대 대만인 남자 유학생과 프랑스 여성 등 외국인 2명도 2016년 6~12월 사이 갈맷길을 단독 주파했다. 당시 프랑스에서 한국에 와 1년 3개월간 체류형 여행 중이던 디우프레우스 제니 씨는 외국여성 첫 완주자라는 점 때문에 국제신문에 인터뷰가 보도 되기도 했다. 올해 5월에는 걷기에 도가 튼 제주도 일가족 3명이 갈맷길을 전부 답사한 이색 사례도 있다. 이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50~60㎞를 걸어 총 67시간, 6일만에 완주하는 대단한 기록을 세웠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말했다. ‘최고의 약은 바로 걷는 것이다’라고.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도 일갈했다. ‘걸으면서 쫓아버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생각이란 하나도 없다’고. 니체는 ‘진정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다’고 설파했다. 루소 또한 ‘걷는 것에는 내 생각에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는 무엇이 있다’고 찬양했다. 갈맷길 완주의 가치도 여기서 찾을 수 있겠다.
■갈맷길에서 캐낸 이야기
 |
| 인문학과 함께하는 갈맷길 그린워킹(2011.10) |
부산시민의 규칙적 체육활동 조사(부산발전연구원)에서 1위는 걷기(57.2%)였다. 등산은 12.4%. 많은 사람이 걷기 활동에 참여하지만 무심히 길을 걷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길은 하나의 역사다. 지역사와 생활사, 문화사를 품고 있다. 갈맷길도 기록과 흔적을 더듬어보면 씨줄날줄로 얽힌 풍성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길 따라 피어있는 이야기꽃을 따가며 걷기를 권유해 본다.
지난 10년 동안 적잖은 이야기가 책으로, 신문 기획물로 소개가 됐다. ‘갈맷길 스토리텔링(부산시)’은 9개 코스 길에서 마주치게 되는 지명과 마을의 유래, 설화와 전설, 역사·문화 유적, 생태와 자연환경, 지리적 특성 등 261개 항목을 총정리했다. 갈맷길 백과사전인 셈.
스토리텔링은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 할 수는 없다.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력과 재미, 창의적 옷을 입히는 작업이다. 국제신문이 2012년 20회에 걸쳐 연재한 ‘작가들이 쓰는 갈맷길 아라리’는 갈맷길의 의미와 가치를 재발견하고, 길 자원을 콘텐츠화하려는 시도였다. 기존 설화·전설의 단순 재활용보다 현대적으로 재해석, 재가공해 스토리텔링화한 것이다.
조내기 고구마(영도 갈맷길) 물속의 고향(금정구 회동수원지) 성지곡 원숭이 401일간의 자유(초읍 성지곡) 다대포 처녀 윤백년(사하구 다대포) 우암동 포부대 가는 길(남구 우암동) 등을 통해 길 위에 묵혀 둔 이야기 원석을 캐냈다.
‘부산, 스토리 갈맷길(걷고싶은부산)’은 갈맷길을 다섯 가지 시각에서 들여다봤다. ‘푸른 바다의 전설’은 부산판 춘향전인 매바위 월매와 어사 이도령 등 8편의 이야기를 글 맛있게 풀어냈다. ‘갈매기도 스타되는 길’은 영도 흰여울마을 등 부산지역 곳곳 영화촬영지를 소재로 삼았다. ‘예술을 품다’는 갈맷길에서 만날 수 있는 건축작품과 조각품, 갤러리 등을 흥미롭게 소개했다. ‘바다와 하나되다’는 갈맷길을 따라 등장하는 부산의 해양레저·스포츠 자원을 엮었다. ‘길 따라 부산 한 바퀴’는 에코힐링 코스를 스토리로 만들었다.
‘갈맷길, 해피 트레킹투어(부산시·부산관광공사)’는 갈맷길 중에서도 바다, 숲, 강 따라 가장 아름다운 길과 그 속의 이야기를 버무린 스토리텔링 가이드북이다. 해안절경길(용호 유람선터미널~오륙도 해맞이공원, 6㎞) 흙내음숲길(명장정수사업소~상현마을, 6.5㎞) 강바람낙조길(하단역 만남의 광장~몰운대)은 누구나 한번 쯤 걸어 볼 만한 코스다.
변영상 대기자 bys@ kookje.co.kr
부산 갈맷길 주요 발자취 |
2009년 |
4월 부산 길걷기 시민모임 발족 5월 시민공모 ‘갈맷길’ 명칭 선정 6월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 선포식 10월 국제신문(사)걷고싶은부산 창립 11월 제1회 갈맷길 축제 |
2010년 |
6월 갈맷길 지도 발행·이정표 설치 10월 제2회 갈맷길 축제 |
2013년 |
1월 갈맷길 1호 완주자 탄생 7월 제50차 갈맷길 그린워킹 10월 제5회 갈맷길 축제 |
2015년 |
7월 갈맷길 안내체계 모니터링 |
2016년 |
3월 제65차 갈맷길 그린워킹 6월 갈맷길 현장 실태조사 |
2017년 |
10월 제9회 갈맷길 축제 |
2018년 |
5월 ‘2019 ATC’ 부산 유치 6월 제78차 갈맷길 그린워킹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