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출신 외국인 500여 명이 제주로 몰려들어 난민 자격을 신청하면서 국내에서도 난민 수용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난민법 폐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 참여자가 60만 명을 넘었다. 지난 4일 실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예멘 난민 수용에 반대표를 던진 응답자는 53.4%를 기록했다. 관심 밖이던 난민이 적극적 ‘포비아’의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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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민으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한 시리아 출신의 마무드 하무위 하산(38) 씨가 6일 경남 김해시 자택에서 자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한미 김해제일외국인지원센터장과 대화하고 있다. |
6일 부산출입국·외국인청의 통계를 보면 부산청에 난민 인정을 신청한 외국인 수는 급증세다. 2013년 46명에서 지난해 399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지난 5월까지 343명이 난민 인정을 신청했다. 같은 기간 전국에서 7737명이 신청했다. 난민 자격을 얻어 부산에 거주하는 이들은 30명이다. 주로 파키스탄 러시아 인도 출신으로 사상구 등지에서 자동차 관련 일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는 그동안 4만470명이 난민 자격을 신청해 2%인 839명만 인정을 받았다.
국제신문 취재진은 시리아 출신 난민 신청자인 마무드 하무위 하산(38) 씨의 집을 방문했다. 단독 주택 2층의 60㎡ 남짓한 공간엔 마무드 씨와 아내 다삼 밀바트(33) 씨, 슬하 다섯 남매를 포함해 7명이 산다. 큰아들 함자(13) 밑엔 동생 아바스(5), 후세인(4), 알랍(여·2), 알리(1)가 있다. 이웃엔 마무드 씨의 부모와 형 등 가족도 함께 산다. 폐차 일을 하는 마무드 씨의 수입은 불경기 속에 줄어가는데, 일곱 식구 식비와 월세로만 한 달에 260만 원이 든다고 한다. 최근 두 달 치 월세가 밀렸다. 고향인 시리아 알레포에 살 땐 사정이 달랐다. 자동차 관련 사업을 한 마무드 씨는 한때 알레포에 집을 여러 채 보유하기도 했다.
마무드 씨는 “모든 건 2013년에 끝났다”고 말했다. 2011년 시작된 내전의 참화가 2013년 그가 살던 도시를 덮쳐 터전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그의 왼쪽 종아리엔 당시 포탄 파편이 남긴 흉터가 선명했다. 마무드 씨는 “가족과 두바이로 피신했다. 하지만 집 월세가 2000달러에 달하는 등 버티기 어려웠다. 2년 만에 한국행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1999년 사업차 한국에 온 일이 있다. 2015년 입국해 처음 정착한 곳은 부산 사상구였다. 사업차 익힌 영어로 폐차 부품 수출업에 뛰어들었다. 마무드 씨는 “부산에 1년 머무른 뒤 부모 형제가 있는 김해로 왔다”고 설명했다.
난민 지위가 인정되면 교육과 의료 등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마무드 씨를 포함해 이들 가족은 난민이 아닌 ‘인도적 체류자’ 자격이어서 이런 혜택을 보지 못한다. 그나마 마무드 씨는 직장이 있어 직장에서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다. 이 때문에 아내 다삼 씨는 충치의 고통을 그저 참아 넘긴다. 큰아들 함자는 인근 초등학교에 다니지만, 동생들은 보조금을 받지 못해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다. 1인당 드는 월 30만 원 안팎의 사립 시설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마무드 씨는 “한국은 고맙고 친절한 나라다. 하지만 의료와 교육 혜택의 폭이 조금만 더 넓어지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시리아에 대해선 “너무나도 그리운 고국이다. 내전만 끝나면 돌아가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난민 신청자가 급증하면서 원래 6개월 이내로 결정을 내리도록 한 난민법은 현실에서는 잘 적용되지 않는다.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결정을 빨리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신대 이병수(국제문화선교학과) 교수는 “지금 우리는 난민을 상당한 두려움으로 대한다. 인도적 관점에서 한국어 교육을 비롯한 시스템을 마련하는 등 수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아대 박형준(사회학과) 교수는 “외부인의 급격한 유입은 기존 질서와 문화를 흔들어 적대감을 낳고, 자칫 사회적 갈등으로 비화된다”며 “동화정책과 공동체 관리를 병행해 장기적으로 수용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글·사진 김민주 기자 min8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