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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완의 통일 내비게이션…지금 북한은 <2> 북한의 한류- 남조선 날라리풍, 북한 흔들다(하)

“남조선 배우처럼 ‘직발(스트레이트 파마 헤어스타일)’ 해주시라요”…남한 따라하기 대유행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6-07 18:56:59
  •  |   본지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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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당서 몰래파는 한국 DVD
- 검열 피하려 구매않고 빌려봐
- 파는 사람도 목숨걸고 불법유통

- 몸매바지 스키니진 따라 입고
- 프러포즈 같은 외래어 쓰며
- 드라마 속 패션·말투·화장 모방

- 단순 사회현상 넘어선 의식변화
- 취향까지 통제받는 체제 아래서
- 자유에 대한 갈망의 표현 아닐까

남한 영상물은 북중 접경지역에서 밀수로 은밀히 유입된다. 압록강 상류지역으로 갈수록 국경선은 희미해진다. 한 걸음만 건너면 북한에 닿을 듯 가까운 거리다. 특히 양강도 혜산시는 대표적인 국경도시로 외부상품이 유입되는 밀수의 근거지다. 실제로 겨울에 가보면 눈 내린 압록강 위로 양쪽을 오간 사람의 선명한 발자국을 쉽게 볼 수 있다.
한 방송사가 최근 기획한 북한 관련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북한의 장마당을 다루고 있다.
밀수는 국경경비대와 조직적으로 연계된다. 북한 당국은 주민이 ‘자본주의 날라리풍’에 물드는 것을 우려해 남한 영상물 유통과 시청을 엄격히 단속한다. 하지만 남한 영상물이 이미 큰 이익을 남기는 인기 상품이 되면서 북한 내 ‘한류’는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남한 영상물 판매 상인은 청진시, 나진시, 혜산시 등 국경무역을 하는 곳에서 상품을 구입한 후 내륙 지역에 가서 웃돈을 받고 판매한다.

북한 주민은 주로 장마당에서 남한 영상물을 구한다. 남한 DVD(알판)는 불법이기 때문에 함부로 거래할 수 없다. 장마당에서 남한 영상물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상인은 평소 친분이 있거나 믿을 만한 사람과 주로 거래한다. 매대 위에는 북한영화 DVD(알판)를 진열해 놓고, ‘아랫동네(남한을 의미)에서 온 것이 있느냐’고 손님이 물어보면 몰래 데리고 가 은밀히 거래하는 방식이다.

DVD나 녹화기를 빌려주는 대여업도 성행한다. 북한에서는 불법영상물을 직접 소유한 것과 남의 것을 빌려서 단순 시청할 때 그 처벌 강도가 다르다. 직접 구입해 보관하는 것보다 한번 보고 돌려주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고 비용도 적게 든다.

북한 접경 지역인 양강도 혜산시. 이곳에서 밀수가 잘 일어난다.
북한에서 직접 남한 영상물을 빌려본 경험이 있던 탈북민은 “줄이 다 있어요. 몰래 파는 사람이 서로 연결 돼서. ‘천국의계단’ 같은 드라마는 20알이에요. 비싸단 말이에요. 그래서 돈 주고 빌려 보는 거에요. 그런 걸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어요. 이틀 동안 20편을 다 봐야 하는 거죠. 밤이고 낮이고 문을 딱 채우고. 한번 보고 너무 재미 나서 또 빌려 봤어요. 사지는 않았어요. 그런 거 가지고 있어봤자 불편하니까. 그냥 제깍제깍 빌려보는 게 낫지. 가지고 있다가 검열에 걸리면 안 되니까요”라고 말했다.

일반 주민이 아닌 간부는 조직적으로 유통에 개입한다. 남한 영상물을 단속해야 할 안전원이 압수 물건을 자신의 친지나 지인과 돌려본다. 단순 시청에 그치지 않고 전문 상인과 결탁해 재판매할 때도 있다. 불법 영상물을 단속하면 DVD나 USB는 물론 녹화기를 비롯한 재생장치까지 압수한다. 검열원이나 단속원이 압수한 물건을 폐기하지 않고 몰래 판매하는 것이다.
몇년새 급속히 확장한 북한 장마당
북한에서 남한 영상물을 불법으로 판매했던 한 탈북민은 “장마당에서 몰래 팔아요. 아는 사람끼리 통해서 왔다갔다 하는 거에요. 한국 알은 믿을 만한 사람들끼리 내통하는 거죠. 당 간부가 한국 드라마 많이 봐요. 안전원도 단속해서 많이 봐요. 죽어 나는건 평민이에요. 한 알당 2000원짜리를 북한에서 1만 원에 팔아요. 이윤이 높아 목숨 걸고 하는 겁니다”고 증언했다.

북한에서 남한 영상물이 대량으로 복제되기도 한다. 밀수를 통해 공(空)CD를 대량으로 들여와 복제하고 중간상인을 통해 유통하는 방식이다. 알 복사기를 갖고 있는 사람이 복사해서 유통한다. 걸리면 중벌을 받는데도 이윤이 많이 나 목숨을 걸고 불법유통을 하는 셈이다.

북한에서의 한류 확산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북한사회 변화 때문이다. 남한 스타일을 모방하는 이른바 ‘남한 따라하기’ 현상이 나타난다. 북한주민은 남한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스타일은 물론 말투부터 패션까지 나름의 개성을 표현한다. 북한에서 남한 드라마나 영화를 본 사람들을 ‘세련되다’고 표현한다. 남한 배우의 헤어스타일을 따라하는 것은 북한 주민에게 또 하나의 관심거리다. 북한에서 미용사 일을 했다는 한 북한이탈주민은 드라마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몰래 들여온 한국 잡지를 보면서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익혔다고 한다. 잡지를 미용실에 붙여 놓고 손님이 마음에 드는 헤어스타일을 선택하면 그대로 해 주었다. 손님 중에는 남한 영상물 CD(씨디알)를 가져와 영상물에 나오는 모습처럼 해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북한에서 가장 인기 있는 헤어스타일은 스트레이트 파마(직발)였다.

헤어스타일뿐만 아니라 패션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몸매바지’라는 스타일이다. 남한의 스키니 바지를 일컫는‘몸매바지’를 입고 굽이 15㎝나 되는 킬힐을 신고 다니는 것이 유행했다. 패션 스타일의 변화는 단순히 사회적 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의 의식변화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남한 배우가 여름에 치마를 짧게 입고 등장하는 모습을 보면 ‘시원하고 좋겠구나. 자유롭다’ ‘생활 풍습이 저렇게 변했구나’ ‘자본주의 생활방식이 저렇다’는 생각을 한다. 북한에서 치마는 무릎 밑으로 내려오고, 윗옷은 어깨를 드러낼 수 없으며 젊은이의 노출 패션은 단속 대상이다. 길을 가다가도 단속원이 가위를 들고 단속 대상이 되는 복장을 자르기도 한다.

남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많이 따라 하는 건 남한말이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남한 말이 낯간지럽게 들리고 ‘간사하다’고 느껴져 거부감이 들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남한 드라마를 보면 남녀는 물론 나이 어린 사람에게 존댓말을 쓰는 모습이 자신과는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에 대한 극존칭어에 밀려 정작 일상생활에서 웃어른과 서로에 대해 존칭, 존댓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북한에서 사용하지 않는 외래어 발음을 그대로 따라 해 보기도 하고, 분명하지만 부드러운 아나운서의 억양에 ‘악감정’이 녹아든다며 좋아하기도 했다.

북한에서 남한 드라마를 본 한 탈북민은 “친구가 함께 모여서 남한 드라마 시청 중에 대사를 흉내 내다 다같이 웃곤 했다. 같은 또래에 마음이 맞는 친구끼리는 서울 말씨를 쓰다가도 어른과 말할 때는 얼른 ‘본투(본래 말씨)’로 바꿨다. 남북한 언어 차이로 인해 알아듣지 못하는 표현이 많았다. ‘프러포즈’는 남조선 드라마에서 처음 듣는 외래어로 생소하게 들렸다”고 설명했다.

북한 주민은 남한 영상물을 보면서 간접적이나마 자유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드라마에 비친 남한 사람은 자신의 취향대로 옷 입을 자유가 있다. 그에 비해 북한은 단속이 너무 많다. 옷 입는 것에서부터 헤어스타일까지 일일이 단속한다. 자기반성과 상호비판하는 사상교육 시간인 생활총화를 할 때도 비사회주의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자주 언급해야 한다. 생활총화에서‘누구 머리 모양이 어떻고 누구 옷차림이 어떻고’라는 비판이 오가기도 했다.

이처럼 북한 당국은 자본주의 퇴폐문화라 해서 옷차림이나 말투, 헤어스타일을 통제하지만 북한 주민의 욕구를 완전히 제어하는 데 한계가 있다. 국가로부터 사상과 개인의 자유를 억압당하는 사람이 최소한 자신의 스타일만이라도 개성 있게 표현하고픈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옷 화장 헤어스타일 말투 등 남한 스타일을 따라하는 것은 어쩌면 북한주민의 자유에 대한 목마름일지도 모른다. 그 목마름이 어떻게 용솟음칠지 지켜볼 일이다.

부산 하나센터장·동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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