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2만 호를 맞은 국제신문에는 부산 경남은 물론 대한민국의 역사가 담겨있다. 해방정국의 혼란과 한국전쟁의 상흔, 산업화와 근대화, 민주화, 디지털화까지 우리 민족이 겪었던 파란만장한 역사를 돌아봤다.

- 위풍당당 제호 ‘産業新聞’
- 해방 후 국가재건 핫이슈
- 여성 소설가 김명순 칼럼
- 본지 이념적 유연성 눈길

일제 36년의 지배를 벗어난 해방정국. 광복을 맞았지만 미국과 소련이 남북을 분할 통치하면서 한반도의 미래는 말 그대로 풍전등화였다. 신탁과 반탁의 갈등(사진)은 폭발 직전이었다. 오랜 일제의 지배로 아시아에서 가장 후진적인 국가 중 하나였던 만큼 국가 재건도 큰 이슈였다.

신문 1면 우측 상단에는 세로 제호 ‘産業新聞’이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머리기사로는 “산업, 교통의 동맥-도로개수, 정비가 긴급’이 실렸다. 해방 후 도시 인프라 등 국가 재건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짐작된다. 주서울 AP통신 특파원 ‘래ㅁ버-트’ 씨와의 인터뷰 내용도 흥미롭다. 그는 “조선이 통일이 되느냐 여부는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만약 통일이 된다면 공업지구 북조선과 농업지구 남조선이 재결합하는 것인 만큼 조선 문제는 긴급히 해결될 것이다”고 내다봤다. 당시 남한보다 북한이 오히려 공업이 발달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필명 칼럼도 눈에 들어온다. 필명 망양생(望洋生). 우리나라 첫 여성 근대소설가인 김명순(金明淳·1896 ~ 1951)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정치파동과 산업’이 그것이다. 김명순은 젊은 시절 매일신보 기자로도 활동한 언론인 겸 칼럼니스트였다. 김동인의 소설 ‘김연실전’의 모델이기도 하다. 보수적인 남성 문인들의 공격으로 말년에 일본에서 생활한 것으로 전해진 그가 산업신문에 글을 썼다는 것은 당시 이 신문의 이념적 유연성을 보여준다.

신문 맨 왼쪽 상단에는 ‘지령 76호(No. 76)’와 ‘1947년 8월 9일 제3종우편물 허가’가 선명하게 인쇄돼 있다. 남한 과도정부는 산업신문이 창간되기 두 달 전인 7월 1일 행정명령 4호로 국어를 공영어로 지정했지만 지면 대부분이 이전에 쓰던 한자로 채워져 있는 것도 특징이다.


- 한국전쟁 발발 긴박함 속
- 우리 군 승전보 기사 등장
- 부모·형제 찾는 광고 많아
- 월 신문가격 600원 이색

지령 1039호. 산업신문이 창간 3년을 열흘가량 앞두고 제호를 ‘國際新報’ 로 변경한 뒤 처음 내놓은 신문이다. 신문 제호가 세로에서 가로로 바뀐 게 우선 가장 눈에 띈다. 영문 제호 ‘THE KUKKJE SHINNPO’도 따라붙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50일을 갓 넘긴 시기였던 만큼 지면에도 전시체제의 긴박감이 그대로 담겨 있다. 특히 기습적인 북의 침략에 밀려 초반 고전했지만 유엔의 개입으로 반격을 개시해 승전보가 많이 등장했다.

1면 머리기사로는 ‘아군 총반격’이라는 제목으로 적군이 낙동강에서 퇴각했고 우리 공군이 적에 맹공격을 퍼부었다는 뉴스가 실렸다. 인천상륙작전(1950년 9월 15일)을 앞두고 ‘아군이 인천 부근 ○○島에 상륙했다’는 반가운 뉴스도 실렸다. 맥아더 원수의 국연(國聯·유엔) 보고 내용도 비중 있게 보도됐다. 맥아더 장군(사진)은 유엔 보고를 통해 “유엔군의 용기에 경탄했다. 한국군의 진보가 현저하다”고 승전을 예고했다. 유엔 안보리가 18일 재개됐다는 뉴스와 중국과 소련 간에 교섭이 진행됐다는 소식도 전쟁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게 한다. 광고도 당시 시대 상황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 가득하다. 우선, 전쟁으로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형제와 부모, 친척 등을 찾는 광고가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부산지구계엄사령부에서 각도 연락관 집결 광고가 게재됐고 경남경찰국에서 경찰통역생 모집 광고도 실렸다. ‘강남치과’와 ‘동광내과’ 등 병원 광고도 한귀퉁이를 차지했다. 당시 신문 가격이 표기된 것도 이채롭다. 일 30원(圓), 월 600원.


- 이승만 대통령 담화문
- 1면 머리기사로 실려
- 부산공고·경남사범대 등
- 신입생 광고 경쟁적 배치

지령 3001호 석간. 영문 제호가‘THE KUKJE SHINBO’로 조금 바뀌었다. 제호 옆에 신문사의 위치도 나온다. 부산시 남포동 2가28. 머리기사로는 이승만 대통령(사진)의 담화를 실었다. 메인 제목은 ‘부강한 나라 이룩하자’, 부제로는 ‘곡식증산 등 강조, 외원(외국원조) 의존말고 자급자족토록’. 전쟁으로 전 국토가 초토화된 국가의 수반이 국민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與, 상임위장 독점’이라는 기사도 눈에 띈다. 자유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던 시절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사설과 기자 칼럼 성격인 ‘기자석’ 같은 고정 코너도 배치됐다. ‘주간정계’라는 코너를 통해 한주간의 정가 소식을 전하는 것도 최근 신문 편집 방식과 엇비슷하다.

하단에 배치된 광고란을 통해서는 전쟁 후 변화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보릿고개’라 불리던 못 먹고, 질병에 취약했던 때인 만큼 ‘간 건강을 위한 메치오닌’ 같은 약 광고가 많이 보인다. 지역 학교들의 학생모집도 대거 실렸다. 경남사범대학, 남도여자중학교, 부산공업고등학교 건국중·상업고등학교, 덕원중·고등학교의 신입생 선발 모집 광고가 기사 하단에 경쟁적으로 배치됐다. 광복동 국산우량 양복전문점인 ‘만우(萬友)’의 광고는 ‘특별 써-비스’를 강조하며 지면 하단에 가장 크게 자리잡았다. 국내 굴지의 목재 회사인 ‘동명목재상사’의 동명베이아합판 생산 개시 광고도 눈에 들어온다.

최현진 유정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