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0 청년 모인 ‘바둑시그널’
- 最古 ‘일석회’ 유일 ‘여성기우회’
- 현재 부산 동호회 60여 개 활동
- 1990년대 바둑인구 100만 명
- 영어열풍에 밀려 차츰 사라지다
- 알파고-이세돌 대국 때 재조명
- 젊은층 당길 기원시설 현대화 등
- 위축됐던 바둑계 재도약 준비
직장인 송왕한(30) 씨는 부산지역 2030 청년 바둑동호회 ‘바둑시그널’ 회원이다. 7세 때부터 배운 바둑 실력은 아마 4단. “어릴 때 바둑학원에서 배운 ‘학원 세대’들이 어른이 돼 바둑을 두고 싶어도 기원은 연령대가 너무 높다 보니, 취미로 이어갈 수 있는 공간이 없는 편이죠. 비슷한 나잇대가 모여 수를 연구하는 것도 재밌고, 정겹게 마주 앉아 수담(手談)을 나눌 수 있어서 더욱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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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지역 바둑동호회인 ‘일석회’, ‘부산여성기우회’, ‘바둑시그널’ 회원들이 부산 동래구 사직동 한국기원에 모여 바둑을 두고 있다.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
바둑시그널 회원 25명은 바둑이 좋아 가입한 청년들. 21세부터 36세까지 나이도 실력도 다양하다. 동료 회원을 차근차근 가르쳐주는 게 동아리의 특징. 바둑시그널 배두한(30) 회장은 20대 초반 인터넷 바둑을 접한 뒤 바둑에 푹 빠졌다. 지금은 초등학교 방과후학교에서 바둑강사로 활동한다. “바둑이 좋아 바둑을 일로 택하게 됐다. 기원에는 어르신이 많아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또래와 같이 바둑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에 3년 전 바둑시그널을 창단했다. 온라인 바둑과 달리 실제로 두는 바둑은 손맛이 느껴져 좋다”고 배 회장은 말했다.
■“바둑판은 인생·업무 공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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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부산사직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19회 부산시민바둑대회에서 어린이 참가자들이 바둑 경기에 열중하고 있다. 국제신문 DB |
일석회는 1978년 김철중 고문 등 부산지역 아마 강자 6명이 창립한,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바둑동호회다. ‘바둑에 죽고 못 사는’ 체질인 멤버들이 자연스럽게 모였다. 창립 직후 전국대회에서 상을 휩쓸며 부산 아마 바둑의 탄탄한 실력을 전국에 떨쳤다. 올해 창립 41주년을 맞은 일석회 회원은 18명으로 50~60대 회원이 많다. 지난해는 창립 40주년을 맞아 일석배 부산여성아마바둑대회를 여는 등 오랜 전통에 걸맞게 대외적 활동도 활발하다. 부산바둑의 터줏대감인 김철중 고문은 “매월 첫째 일요일 모이는데 명절에도 모임을 여는 등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 ‘함께 바둑을 한 번만 두면 친구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바둑을 통해 삶의 이치와 화합을 깨닫는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바둑연맹 부산지부는 1979년 창립한 부산지역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기우회다. 창립 멤버 조명선 씨는 “창립 초기에는 기원에서 여자 회원이 바둑을 두면 어르신들이 신기해하고 서로 가르쳐주려고 했다. 지금도 전국 바둑대회에 회원들과 함께 팀을 꾸려 출전하는데 노년 생활에 큰 활력소가 된다”고 말했다.
■제2의 전성기 기대
바둑은 이창호 9단 등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바둑 인구가 10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1989년 조훈현 9단이 중국의 녜웨이핑을 누르고 초대 잉창치배에서 우승할 때는 카퍼레이드를 벌였을 정도다. 1990년대 들어서는 조훈현과 이창호의 사제 대결이 폭발적인 관심을 일으켰다. 10대 천재 이창호의 등장에 한국 사회는 ‘이창호 신드롬’을 앓았다. 학부모들은 앞다퉈 자녀를 바둑 교실로 보냈다. 198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이창호 키드’는 어깨너머로 바둑을 배운 이전 세대와는 달리 효율적인 바둑교육 프로그램의 혜택을 보았다.
그러나 근래 바둑 인구가 줄면서 바둑대회도 줄어 위기를 느낀다. 바둑의 가치를 보호하고 공유하기 위해 구체적인 노력과 토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돼 왔다. 김철중 고문은 “1990년대 부산에만 바둑학원이 70개가 넘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침체가 시작됐고, 영어 열풍 등에 밀려 바둑 교실이 속속 문을 닫으며 바둑 인구도 급속도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2년 전 알파고와 이세돌 9단 대국이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바둑 열풍이 잠시 불었다.
현재 부산에는 바둑 동호회 60여 개가 활동 중이다. 알파고 이후 부산 전체 초등학교의 절반인 150여 곳에서 방과후학교로 바둑 교실을 운영한다. 부산바둑협회와 자치단체 등이 주최하는 대회는 올해 7개가 열린다. 특히 올해 20회째를 맞은 부산시장배 시민바둑대회(부산시·국제신문 주최)는 해마다 1000여 명이 참가하는 성황을 이룬다.
이를 바탕으로 바둑은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3월 바둑계가 학수고대한 ‘바둑진흥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한동안 위축됐던 바둑이 마인드 스포츠로서 저변 확대와 질적 향상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바둑진흥법 제정안에는 ▷바둑 단체 지원 및 바둑 전용 경기장의 조성 ▷바둑 연구 활동 및 국제교류 지원 ▷바둑 관련 창업 및 기술개발 지원 등이 담겼다. 김영순 부산바둑협회 전무는 “이런 지원이 이뤄진다면 바둑이 갖는 긍정적인 효과를 시민이 더 많이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원 현대화·지자체 관심 필요
클럽 교류전이나 클럽 자체 대회는 수시로 열리지만, 지자체가 주최하는 구군 협회 대회는 거의 없다. 특히 부산은 어린이 바둑대회가 적다. 부산초등바둑연맹 송준민 회장은 “울산만 해도 어린이바둑대회가 연 5, 6개는 열리는데 부산은 2개(교육감배, 한화생명배)뿐이다. 지자체의 관심이 높아지면 대회를 열 여건이 마련되고 저변 확대가 촉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원 시설 현대화도 과제로 꼽힌다. 김 전무는 “인터넷에선 바둑 게임이 호황을 누리지만, 동호회 형식 오프라인 모임은 점차 줄고 있다. 기원을 젊은 세대가 모일 수 있도록 현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홍주 안세희 기자
※공동기획 : 국제신문·부산광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