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다리 잡으러 이을개에 갔던 두칠이
- 물에 떠내려온 갓난아기를 데려와
- 낮이나 밤이나 가슴에 매달고 키웠다
- 새칠이라 불리며 쑥쑥 자란 그 아이는
- 바둑돌 가는데 비상한 재주를 보였다
- 기특하게 여긴 현감은 새칠이를 데려와
- 첩의 아들과 함께 바둑을 가르쳤다
기해년 6월 날이 밝기도 전인데 기장 관아 관청색(官廳色) 귀영이 읍저(邑邸)를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귀영의 걸음은 읍성 관아를 지나 관노방으로 곧장 향했다. 관노방에는 여러 장정이 뒤엉켜 잠들어 있었다. 귀영은 그중에서 어벙이 두칠이의 귀를 붙잡고 다짜고짜 밖으로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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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잔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기장 이동마을 포구. 옛날에 기포 또는 바돌개로 불린 곳이다. 바닷가에 반질반질 윤이 나는 검은 돌이 많았는데 이를 갈아 바둑돌을 만들어 한양으로 올려 보냈다 한다. 국제신문DB |
“니 당장 이을개에 좀 댕겨와야겠다.”
현감은 간밤에 술을 과하게 마셨다. 명목이야 기로(耆老)였지만 마지막에는 첩실 주홍의 아양이 안주였다. 그런 다음 날 아침이면 성게 미역국이면 딱 좋겠지만, 당장 성게 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니 도다리 미역국 정도는 올려야 했다. 달음산에서 내려온 일광천과 바닷물이 섞이는 이을개 갈대밭에는 어량(漁梁)이 있었다. 대나무를 이어 얼개를 만들어 물이 한쪽으로 흐르게 한 뒤 그 아래 통발을 놓은 어량에는 모치며 숭어 같은 것들이 수시로 걸렸고, 가자미며 도다리 같은 생선도 잘 올라왔다. 귀영이 노린 것은 도다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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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물로 바쳤던 검정 바둑돌의 원재료가 나던 곳임을 알리기 위해 이동마을 포구 방파제에 조성한 바둑판 조형물. |
지난 겨울 부임한 현감은 태어나기를 충청도에서 하고 자라기를 한양에서 했는데 관주(官廚)에서 올리는 음식을 먹지 못했다. 관주며 이속(吏屬) 식구들은 없어서 못 먹는 갈치젓이며 멸치젓은 비리고 짜다며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했고, 다시마, 서실, 톳, 모자반, 대황, 꼬시래기 같은 해초는 그것을 먹는 물고기들한테나 주라고 호통이었다. 한겨울 추수가 끝난 논에서 짚더미를 쌓아 불을 지르고 거기 붕장어며 민물장어를 던져 넣어 구워 먹는 것을 보고는 제풀에 놀라 며칠 끙끙 앓았다.
얍실얍실한 풍모에 계집처럼 성미 곱고 입맛 까다로운 현감 때문에 인리청(人吏廳)에서는 관청(官廳)을 닦달하고, 관청에서는 관주를 볶았다. 불똥은 귀영에게로 튀었다. 관주에 식재료를 대는 귀영이 부엌을 드나들며 밥상을 챙겼지만 도대체 방도가 없었다. 하루는 관주에서 늙은 식모 영천할미가 이을개 갈대밭에 쌔고 널린 참게를 주워 꽃새우, 닭새우, 황금새우를 섞어 참게탕을 끓였다. 귀영은 혹시나 하고 참게탕을 현감에게 올렸다. 들깨를 갈아 넣은 걸쭉한 참게탕을 맛본 현감의 눈이 둥그레졌다. 이후로는 입맛이 바뀌어 가자미 미역국이나 도다리 쑥국, 앙장구 비빔밥까지 올리면 올리는 대로 넙죽넙죽 잘 먹으니 현청이 한결 편안했다.
잠이 깨나 안 깨나 어리버리한 멍충이 두칠이는 도다리를 구해 오라는 귀영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을 하고는 어정어정 목너메를 넘고 새띠를 지나 이을개에 도착했다. 두칠이는 이슬에 젖은 풀섶에 엉덩이를 내려놓고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아이고 자부러버라.”
오 리를 내처 걸었는데도 도무지 잠이 깨지 않았다. 찰랑찰랑 어량에 물 들락거리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 두칠이는 한숨 더 자려고 고개를 푹 떨궜다. 두칠이는 잠이 많았다. 뱃속에서 열 달은 푹 자고 나왔어야 하는 건데 일곱 달 만에 나와서 그렇다고도 했고, 여기저기 젖을 얻어먹어서 그렇다는 사람도 있었다. 제 나이 서른인 것도 모르고, 장가를 들어야 한다는 것도 모르는 두칠이의 어미는 임신한 사실을 숨기려고 배를 싸매고 다니다가 핏덩이를 쏟고 죽었다. 핏덩이는 관비(官婢) 여인네들의 젖을 얻어먹고, 영천할미가 맷돌에 갈아 끓인 쌀죽으로 남은 배를 채우면서 소동방(小童方)에서 자랐다. 머리 쓰는 것이며 하는 짓이 영락없는 칠푼이라 머리 두(頭 )자에 일곱 칠(七)이 엮이어 이름이 되었다.
두칠이는 여섯 살이 되자 소동방의 다른 아이들과 함께 바돌개로 갔다. 바돌개에는 오랜 세월 파도에 씻긴 오석(烏石)이 지천이었다. 그중에서 바둑돌로 쓸 만한 것을 주워 관아로 지고 와서 크기에 맞게 돌을 갈았다. 바둑돌은 기장현의 주요 공물 중 하나였다. 소동방에서 자라는 관노의 어린 자식들은 대여섯 살이 되면 바둑돌을 가는 데 동원되었다. 크기나 모양이 맞지 않으면 퇴짜를 맞았다. 작은 돌을 쥐고 바둑돌만 한 크기로 갈자면 아이들의 손톱은 닳아 없어졌다. 겨울이 되면 손이 트고 얼어 동상이 걸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검정 바둑돌은 좌수영에서 넘어온 흰색 바둑돌과 쌍을 이루어 한양으로 올라갔다. 열 살이 되면 바둑돌을 갈던 아이들은 관아의 여러 곳으로 흩어져 각기 일을 맡았다. 두칠이는 관주에서 장작을 패고, 아궁이에 불을 때고, 쌀섬을 옮기는 일을 했다. 한편으로는 바돌개에 가서 아이들과 검정돌을 주워 오기도 했고, 무거운 짐을 지고 심부름도 다녔다. 두칠이는 어벙하고 모자라서 제 신세가 서러운 줄도 몰랐다.
얼마나 잤을까. 꿈인 듯 아닌 듯,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두칠이는 귀를 한 번 후볐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어벙한 머릿속을 두드렸다. 사방을 휘둘러보다가 어정어정 아리송 버덩으로 건너가는 나무다리까지 가서 목을 쑥 뽑았다. 어량 쪽에서 분명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두칠이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갈대숲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어량을 치고 통발을 놓는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쪽배가 생각났다. 두칠이는 탕탕 뛰어서 나무다리를 건너 쪽배에 올랐다.
관노방 구석 두칠이의 누추한 방에 사람들이 몰려왔다. 두칠이가 아이 하나를 건져왔다는 소문이 돌았던 것이다. 두칠이는 제 누더기를 벗어 아이를 덮어 놓고, 구석에 처박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때에 찌든 누더기에 싸여 아이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혀를 찼다. 누가 아이를 물에 떠내려 보냈을까 중구난방 떠들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왜란 때 능욕을 당한 여인이 있다면 지금이 딱 그 씨가 나올 즈음이고, 그렇다면 저 아이는 왜놈의 씨일지도 모르니 바다로 떠내려가게 내버려 두는 게 좋았을 거라는 데까지 이르렀다.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고 살이 떨리는 왜란이었다. 임진년 때는 한양으로 치고 올라가기 바빠 점령지를 버려두었지만 지난 정유년에는 지역에 상주해 갖가지 만행을 저질렀다. 곡식과 무기, 토산물과 귀중품을 빼앗고 가옥에 불을 질렀으며, 노인과 아이를 서슴없이 죽이고 여인을 범했다. 겁간을 당한 여인들은 나무에 목을 매거나 바다에 몸을 던졌다.
포구는 여인의 죽음을 덮어주지 않았다. 항포에서 죽은 여인이 이을개로 떠밀려오고, 바돌개에서 죽은 여인이 드매(豆毛浦)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바돌개, 이을개, 항포, 드매로 이어지는 천혜의 비경 기장 해안길은 죽음의 길이 되었다. 저 아이가 그 한 많은 여인 중 하나가 몰래 낳은 아이가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때 영천할미가 낡았지만 깨끗한 포대기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예전 두칠이를 쌌던 포대기였다.
“우쨌든간에 목숨은 귀한 기다.”
영천할미가 아이를 덮은 누더기를 벗겼다. 알몸을 드러낸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실한 고추가 오줌을 뿜었다. 사람들은 그제야 우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영천할미는 아이를 포대기에 정성스럽게 쌌다. 그러더니 사람들에게 쑥 포대기를 내밀었다.
“누가 키울 끼고?”
사람들은 저마다 고개를 돌렸다. 자신들의 삶만 해도 지긋지긋했다. 거기다가 두 번에 걸친 왜란을 겪은 다음이었다. 현청 창고까지 딸막딸막해 먹을 것이 늘 모자랐다. 현청 밖 사람들은 쌀톨 하나 구경 못한 지가 몇 달이라고 했다. 그나마 관아에서는 밥이라도 먹여주니 차라리 관노가 되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런 형편에서 업둥이를 거둘 여유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를 떴다. 이윽고 두칠이와 영천할미만 남았다. 영천할미가 아이를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암만 봐도 왜놈 씨는 아이다. 이목구비가 반듯한 것이 참 잘 생깄다 아이가. 왜놈 씨믄 또 우짜겠노. 두칠아. 인자 니는 아부지고, 나는 할미다.”
영천할미가 두칠이에게 아이를 안겨주었다. 울음을 그친 아이가 빤히 쳐다보았다. 두칠이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그날부터 두칠이는 가슴에 아이를 달고 다녔다. 심부름을 갈 때도, 일을 할 때도 두칠이 가슴에는 아이가 매달려 있었다. 어느 날 누군가 아이를 ‘두칠이에게 매달려 있는 새끼’라고 부르더니, 한동안 아이는 ‘두칠이 새끼’로 통했다. 그러다가 누군가 ‘두칠이 새끼니까 새칠이지’ 하고 부르자 아이의 이름은 새칠이가 되었다.
새칠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두 돌을 넘기자 관주 아궁이를 들락거리며 놀았다. 세 돌을 넘기자 관주에서 가까운 소동방을 기웃거렸다. 새칠이는 소동방 아이들이 바둑돌을 갈고 있는 것을 보고 끼어들었다. 새칠이가 조그만 손으로 바둑돌을 잡고 싹싹 야무지게 가는 것을 어느 날에 두칠이가 보았다. 두칠이 가슴 한쪽에서 쩌엉 소리가 났다. 두칠이는 새칠이가 아이들과 어울려 바둑돌을 갈지 못하도록 다시 제 가슴에 매달았다.
하루는 두칠이가 바돌개로 돌을 주우러 갔다. 정신없이 돌을 줍다 보니 가슴에 매달려 있던 새칠이가 빠져나가 조개껍데기를 줍고 있었다. 두칠이는 얼른 새칠이를 붙잡아 가슴에 매달았다.
“가만히 좀 있으라 카이. 니가 머슨 일을 한다꼬 그래쌓노. 쪼매 있으믄 신물이 나도록 하고 또 할 낀데.”
새칠이는 대답 없이 두칠이 가슴에 폭 안겼다. 이튿날 새칠이는 두칠이가 낮잠을 자는 사이에 살그머니 소동방으로 갔다. 아이들이 넓적돌에 대고 바둑돌을 갈고 있었다. 새칠이는 그 옆에 끼어들어 가지고 온 조개껍데기를 갈기 시작했다. 바돌개에서 주워온 크고 단단한 조개껍데기였다. 한참 조개껍데기를 갈아 바둑돌 모양이 되자 새칠이는 그것으로 본을 삼아 바둑돌을 갈았다. 새칠이가 여러 개의 바둑돌을 갈았는데 모두 모양이 똑같았다.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따라서 했다. 조개껍데기 본이 생기고부터 바둑돌을 가는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일이 수월해지다 보니 생산량이 늘었다. 현감이 사실을 알고는 새칠이를 보러 왔다. 현감은 새칠이를 한참 살피더니 내아(內衙)로 데려갔다.
그날부터 새칠이는 현감의 첩실 주홍이의 아들 득(得)이와 동무해 살게 되었다. 깨끗한 옷을 입고 득이와 놀이도 하고 공부 시중도 들었다. 득이의 공부 시중을 들면서 글도 배웠다. 새칠이는 득이와 바둑놀이 할 때가 제일 좋았다. 다섯 개의 검은 돌과 흰 돌을 먼저 나란히 세우는 쪽이 이기는 오목놀이를 하면서 새칠이는 오묘한 바둑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거 참, 바둑에 아주 재주가 있는 놈이로군.”
현감은 신기해하면서 득이와 새칠이에게 바둑을 가르쳤다. 새칠이는 빠르게 실력이 늘었다. 다섯 돌을 넘기고 여섯 살이 되면 관노 아이들은 바둑돌을 갈아야 했지만 현감은 새칠이를 득이 곁에서 계속 지내게 했다. 바둑돌을 갈기에는 아까운 아이였던 것이다. 가을이 되자 현감은 바둑판을 내아 사랑채에 두고 고을에서 바둑께나 둔다는 선비들을 불렀다. 쌀 석 섬을 건 내기 바둑이 시작되었다. 새칠이는 참가자들을 다 이기고 쌀 석 섬을 지켰다. 현감은 쌀을 관주에 내려 관노들이 나누어 먹도록 했다.
두칠이는 그런 새칠이가 자랑스러웠다. 그렇지만 매일 볼 수 없으니 문제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칠이를 보러 내아를 기웃거렸다. 그런데 새칠이는 아비를 자꾸 피했다. 두칠이가 멀찌감치 나타나기만 해도 숨어 버렸다.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두칠이는 날이면 날마다 새칠이 보고 싶다 타령이었다. 사람들이 그 꼴을 보고 쯧쯧 혀를 찼다.
“참 모진 놈이대이. 지는 편하게 살믄서 친자식처럼 키워준 애비한테 저래 대할 수가 있나.”
“왜놈 씨가 맞는지 모른다 카이. 모질고 독한 것이 꼭 왜놈 같다 아이가.”
조명숙 작가
※공동기획:부산시문화원연합회, 국제신문,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지식문화연구소 (주)리멘Li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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