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쇄국주의 상징 기장 척화비
- 일제에 의해 바다에 던져져
- 대변리 청년들 인양해 복원
- 죽성리 왜성 임진왜란 아픔 서려

- 해송 자라는 작은 언덕 황학대
- 유배온 고산선생이 매일 찾은 곳
- 오랑대도 일출명소로 인기

흔히 부산 기장군 하면 ‘신도시’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기장은 양반 문화가 살아있는 전통의 고장이다. 선사시대 고분군에서부터 조선 시대 서구 열강 등 외세를 배척한 척화비까지 알려지지 않은 문화재가 곳곳에 널려있다. 해안 절경은 또 어떤가. 동해의 풍광에 취해 고산 윤선도가 시상을 떠올렸던 황학대(黃鶴臺)는 보길도의 운치에 뒤지지 않는다.

	기암절벽을 부딪는 파도와 떠오르는 해가 장관을 이뤄 일출 명소로 손꼽히는 기장군 연화리의 오랑대 공원. 서정빈 기자

■열강에 맞선 기장史의 보고

기장읍 대변리 용암초(옛 대변초) 안에는 높이 144㎝, 폭 52.5㎝, 두께 21㎝의 화강석 재질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초등학교 교정에 어울리지 않는 한자. 바로 조선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서 승리한 후 세운 척화비다.

비문은 ‘洋夷侵犯非戰則和主和賣國戒我萬年子孫, 丙寅作辛未立(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아니하고 화친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니 우리 자손만대에 경계한다. 병인년에 만들어 신미년에 세운다)’. 호시탐탐 조선을 노렸던 서구 열강을 배척하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내용은 강서구 가덕도와 부산박물관의 것과 같지만, 기장 척화비의 스토리는 특별하다. 기장 척화비는 쇄국주의의 상징이지만, 아이러니하게 일제에 의해 바다에 던져졌었다. 원래 대변항 방파제 안쪽에 세워져 있었는데, 일제가 항만을 축조하면서 바다에 던져버렸다. 이것을 1947년 대변리 마을 청년이 힘을 모아 인양해 대변항 어판장 뒤 주택가 축대에 옮겨 놨다. 이후 지역 도로 개설과 건물 신축으로 현지 보존이 어려워지자 2005년 용암초 교정으로 이전해 복원했다.

뛰어난 풍광으로 죽성리 왜성(시 지정기념물 제48호)은 임진왜란의 아픔이 서린 곳이다. 기장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3일째인 1592년 4월 15일 새벽 왜장 가토 기요마사의 부대에 의해 함락됐다. 이듬해 명과 일본 사이 강화협상에 따라 왜군은 그해 4월 20일 군대를 한반도 남부해안에 포진시키며 장기전에 들어갔다. 이즈음 왜장 구로다 나가마사는 기장을 근거지로 삼아 성을 쌓았는데, 그것이 바로 죽성리 왜성이다. 둘레는 약 960ｍ, 성벽높이는 약 4ｍ 정도다.

기장은 울산의 서생포 왜성과 부산포 증산 왜성을 연결하는 중간 요충지였다. 구로다는 1597년까지 이곳에 주둔하면서 인근 지역에서 도공·사기장·칠기장 등 장인과 조선 백성을 붙잡아 일본으로 끌고 갔다. 임진왜란 7년 중 조선 삼남 지역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 숫자는 1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안절경 품은 황학대·오랑대

	병인·신미양요에서 승리한 후 세운 척화비가 기장 용암초에 서 있다. 서정빈 기자

죽성리 왜성에서 바다 쪽으로 가면 해송이 자라고 있는 작은 언덕이 있다. 고산 윤선도 선생이 사랑했던 ‘황학대’다. 육지와 이어진 황색 바위가 길게 바다 쪽으로 튀어 나온 모습을 하고 있다. 윤선도는 이곳을 이태백 등 많은 시객이 노닐었던 양쯔강 황학루에 비교해 이곳을 황학대라고 이름 붙였다.

윤선도는 1618년부터 6년간 기장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이곳에서 견회요, 우후요 등 시조 6수를 비롯해 서·제문 등 29수를 남겼다고 전해진다. 윤선도는 유배시절 날마다 황학대를 찾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갈매기를 바라보고 파도소리를 들으며 긴 유배 생활의 시름을 씻어냈다.

황학대와 쌍벽을 이루는 절경은 기장읍 연화리에 있는 오랑대다. 이곳은 기암절벽을 부딪는 파도와 떠오르는 해가 장관을 이뤄 일출 명소로 인기가 높다. 특히 4월에는 바다를 바라보는 언덕에 유채꽃이 만발해 상춘객의 마음마저 사로잡는다.

오랑대라는 이름은 기장에 유배 온 친구를 만나러 왔던 다섯 명의 친구가 함께 술을 마시고 풍류를 즐겼다는 설화에서 유래했다. 해안 절경에서 파도 소리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을 풍류객의 모습을 상상하면 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이 일대는 기장의 절경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먹거리도 풍성하다. 연화리는 최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러 찾는 핫 플레이스다. 연화포구를 중심으로 50여 개의 횟집이 즐비하게 서 있어 다양한 해산물과 전복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연화리와 붙어 있는 대변회촌도 빼놓을 수 없다. 대변회촌은 고즈넉한 바다 풍경과 함께 기장 멸치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매년 4월에는 기장 멸치 축제도 열린다. 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