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역사다. 길을 따라 문화가 꽃을 피웠고 문명을 낳았다. 부산의 옛길 또한 다르지 않다. 지역사와 생활사, 문화사의 궤적이요 기억의 탯줄이다. 기록과 흔적을 더듬어 부산의 옛길에서 캐낸 보석 같은 이야기들. 지역 중견 작가들의 창작소설을 연재한다.

- 유교 숭상 불교 배척 국가정책으로
- 범어사에 부과된 부역·노역 많아
- 스님들이 수행에 전념할 수 없어
- 동래부사에 간청했지만 ‘문전박대’

- 버려져 절에서 자란 아이 노연
- 가련한 시집살이 접고 절로 돌아와

- 부사마다 절 순찰 귀찮아했지만
- 이번에 온 분은 절 구석구석 살피니…

범어사로 올라가는 고즈넉한 옛길. 지금은 등산객들이 많이 애용하고 있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이 길을 감싸 안듯이 우거져서 길은 있다가도 없는 듯 보였다. 화려한 색깔의 나뭇잎들로 뒤덮인 하늘은 손바닥만 한 빈 공간도 없었지만 햇살이 밝아서 길은 어둡지는 않았다.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골이 깊은지 계곡물 소리가 힘차고 시원하였다. 머릿속에 들어있던 잡념이 한꺼번에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아 조엄은 크게 심호흡을 하였다. 흙은 부드럽게 다져져 있고, 큰 돌이 많지 않아 걷기에 편안했다. 그것은 이 길을 밟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는 말이었다. 나라 정책으로 절을 억압해 온 세월이 수백 년에 이르는데도 백성들은 부처님의 은혜 속에 있기를 바랐다. 부임 후 첫 순찰지로 범어사를 정한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었다. 조엄은 말고삐를 잡아당기며 말머리가 길 쪽으로 튀어나온 억센 가지에 닿지 않도록 주의 시켰다. 산길을 한식경쯤 올라가자 산속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넓은 채마밭이 나타났다. 조엄은 불현듯 그 풍경이 낯설지 않다는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오랫동안 가지 못했던 고향땅을 만난 듯한 깊은 향수였다. 조엄은 말을 멈추고 자신을 끌어당기는 기운에 굴복하듯 채마밭을 마주했다.

“범어사라….”

동래부사 조엄이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수행하던 이방이 얼른 말을 받았다.

“범어사는 신라 의상대사께서 창건한 절입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동국(東國)의 남산에 명산이 있어서 그 산정에 높이 50여 척의 거암(巨岩)이 있고, 그 바위 한가운데 샘이 있으며 그 물빛은 금색(金色)에다 물속에 범천(梵天)의 고기가 놀았다. 그래서 산명을 금정산(金井山)이라 하고, 절을 범어사(梵魚寺)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 고을의 토박이 아전다운 설명이었다.

“오호, 물고기가 노는 절이란 말이냐? 이런 첩첩산중의 범어라니, 과연 부처님의 자비가 삼라만상에 이르는구나.”

울창한 참나무 숲을 벗어나자 계곡이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얼마 전에 온 비로 계곡은 아이를 잉태한 여인네의 몸처럼 불어 있었다. 물은 거침이 없고, 하늘로 높이 솟은 나무들은 계곡 옆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로 뻗어 있었다. 풍광은 인간을 압도하였다. 그 기상이 가히 금정산의 능선을 넘어서는 산맥처럼 장엄했다.

범어사로 들어가는 입구의 다리 네 귀퉁이에 세워진 엄지기둥에 적혀있는 어산교라는 글자를 보는 조엄의 눈빛이 사뭇 아련해졌다. 어산교 건너편에 범어사 승려들이 부복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조엄은 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세웠다. 눈치가 빠른 이방이 뒤따르는 일행을 멈추게 했다.

“저기 보이는 것이 조계문입니다. 범어사의 일주문을 조계문이라 하온데, 전임 부사들께서 절을 시찰할 때는 통상 조계문에서 하마하셨습니다.”

이방의 말에는 아랑곳없이 조엄이 말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나는 어산교에서 내리겠다.”

조엄이 성큼성큼 걸어서 어산교를 건너자, 승려들 사이에서 으흠 하는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엎드린 그들의 어깨가 굳어지고, 순간 사방이 고요해졌다.

원우행자는 사추리에 불이 나도록 계단을 뛰어올랐다. 한시라도 빨리 공양주 할멈에게 이 소식을 알려야 했다. 두 칸을 한꺼번에 올라가다가 넘어져 무릎에 빨갛게 피가 맺혔다. 그새 바지를 찢어놨다고 또 할멈한테 잔소리를 듣게 생겼지만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었다.

범어사 입구 어산교의 현재 모습.

“어산교, 어산교! 할멈, 아니 보살님, 어산교….”

공양주 할멈에게 할멈이라고 하는 걸 주지스님이 듣기라도 하는 날엔 또 종아리를 걷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할멈이라는 말은 원우행자 입에 붙어서 잘 고쳐지지 않았다. 할멈이라고 말하면 꼭 엄마 같은 느낌이 났다. 그 느낌이 원우는 하염없이 좋았다.

“아이고 우리 원우행자님, 왜 이리 급하실까. 마당을 그리 쾅쾅 밟으면 새가 놀랍니다요….”

손님 준비에 여념이 없어서 그런지 할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야기했다.

“그 분이 오셨다니까, 그 분이….”

“오늘 수령께서 오시기로 한 거는 저기 우듬지에 앉은 까치도 다 아는 사실인 걸 뭘 그리 호들갑이실까….”

“아니, 그게 아니라 어산교에서 말을 내리셨다고 그 분이.”

부지런히 찻상을 준비하던 공양주 할멈의 굽은 등이 순간 뚝 멈추었다.

“놀랐지? 응? 놀랐지?”

버릇없이 키웠다고 스님들에게 싫은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할멈은 원우가 자신을 그렇게 대할 때가 좋았다. 원우행자는 어산교 앞에 버려져 있던 아기였다. 십여 년 전 탁발을 끝내고 돌아오던 주지스님이 안고 온 아기를 공양주 할멈이 맡아 키웠다. 원우는 공양주 할멈과 꼭 같은 운명이었다. 공양주 할멈 역시 수십 년 전 강보에 싸인 채 범어사를 오르는 산길에 버려진 신세였던 것이다. 그래서 할멈은 늘 원우가 제 자신 같고, 한 몸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산교에서 말을 내리셨다고?”

“그렇다니까 할멈.”

급하게 행주치마에 손을 닦은 할멈이 공양간 밖을 나섰다. 한참을 종종걸음 치던 할멈은 대웅전 마당 한쪽 가에 서 있는 느티나무 둥치 뒤로 얼른 몸을 숨기었다. 수행원을 대동한 동래부사 일행이 조계문을 지나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할멈의 가슴이 다듬이질하는 것처럼 둥당둥당 울리기 시작했다.

강보에 싸여 이 절에 들어온 후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았다. 잠시 현감댁 살림일을 봐주느라 속세에 붙들린 적이 있었지만 그때도 늘 이곳이 그리웠다.

“노연아, 너는 이 길로 현감 마님을 따라 나서거라. 젊은 수행자들에게 니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역이 많아서 공부할 시간도 없는 행자들이 또 다른 잡념에 잠기게 해서야 되겠느냐.”

죽을 때까지 스님들 모시고 공양간에 있겠다고 하자 주지스님이 하신 말씀이었다. 주저하는 노연 앞에서 스님은 단호한 목소리로 한 번 더 이름을 불렀다. 노연아!

‘길에서 만난 가련한 아이라고 노연이라고 이름을 지었다지.’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마당을 서성이던 노연 앞에 낭백스님이 나타난 것은 기다리다 못한 현감댁 몸종이 노연의 손목을 마구 잡아 끌었을 때였다. 스님은 합장을 한 채 노연 앞에 서 있었다. 스님의 입에서 노연아, 라는 이름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금정산 깊은 골짜기 물소리가 스님의 목소리인 듯해 노연은 깊이 허리를 숙였다. 멀리서 돌아본 낭백스님은 당간지주 같았다. 이 절을 위해서 그렇게 평생을 서 계실 것 같았다.

노연이 다시 범어사로 돌아온 것은 모진 세파를 겪을 대로 겪은 후였다. 자신과 똑같이 부모 없는 남자를 만나 살림을 차렸지만 혼인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병약했던 남자는 석 달을 넘기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버렸고, 노연은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며 겨우 입에 풀칠을 하고 살았다. 힘들 때 범어사 쪽으로 합장을 하면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절 길에 버려졌다면 그것이 정해진 제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 순리를 거역하니 남자가 죽고, 사는 것이 한순간도 행복하지 않은 것이었다. 다시는 돌아올 생각 말고 속세에 기대어 살라고 주지스님은 말했지만 노연의 마음은 늘 절에 있었다. 노연은 범어사로 돌아가야만 했다.

범어사 산길은 변한 것이 없었다. 어디선가 멧새가 울더니 한차례 바람이 삼나무 숲을 흩뜨려 놓았다. 바쁜 걸음을 쉬면서 바위에 걸터 앉았다. 하늘이 잔뜩 찌푸린 것이 꼭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였다. 이마의 땀이 바람에 차갑게 흘러내렸다. 바람결에 노연아, 라고 부르는 낭백스님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노연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온 정신을 모아 귀를 기울였지만 휘이잉 바람소리뿐이었다.

‘이것은 그저 내 마음의 소리였던 것이야.’

스님이 그 이름을 입에 올리실 리가 없었다. 늘 한 곳에만 머물러있는 노연의 눈길을 한 번도 받아준 적이 없는 분이셨다. 어쩌면 그런 노연의 마음을 주지스님이 읽고 계셨을지도 몰랐다.

조계문에 이르러 합장을 올리면서 노연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범어사를 둘러싼 숲은 푸르고 깊었으며 짐승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사방은 고요했다.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비록 승려가 되어 부처님을 모시지는 못하지만 노연은 공양간에서 그렇게 살고 싶었다. 세속의 모든 연을 끊고 참선을 하는 것이 절 안이면 어떻고, 공양간이면 어떠랴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니가 있는 곳에서 너의 본래 면목을 참구하고 깨달으면 된다고 하시던 낭백스님의 말씀이기도 했다.

법당은 어찌된 일인지 염불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스님들이 모두 일을 하거나 참선 중일 때에도 염불소리가 끊이지 않았는데 어찌된 일일까. 오랫동안 아무도 돌보지 않은 폐사에 온 듯한 기분이 들어 노연은 덜컥 겁이 났다. 그 때 저만치서 행자스님 한분이 뛰어왔다. 노연은 얼른 달려 나가 합장을 올렸다.

“행자님, 스님들은 다 어디로 가셨심니까?”

“스님들은 전부 일하러 가셨심다.”

“한 분도 남김 없이 모두 가셨단 말임니까?”

“예, 저는 저녁 공양 준비하러 일하다 말고 쫓아오는 길입니다요.”

“오늘 공양은 제가 준비할 터이니 행자님은 조금 쉬이소.”

공양을 준비한다는 노연의 말에 놀랐는지 행자스님의 눈이 동그래졌다.

“지는 오래 전에 이 공양간을 도맡아 일했던 공양줍니다. 걱정 마이소. 공양간이라면 훤합니다. 그런데 스님들 일이 그렇게나 많슴니꺼?”

“말도 마시이소. 밤늦게까지 일이 이어져서 예불도 못 볼 지경이라예. 오죽하면 낭백스님께서 스님들 주무실 시간이 없다고 새벽 예불을 쉬라고 하셨겠슴니까?”

“낭백스님…, 낭백스님은 어디 계시는데예?”

“저-어기-.”

저-어기 라며 행자스님이 손짓을 하였다. 울울한 숲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저쪽 어디쯤이었다.

“아니, 절에 계시지 않는단 말씀이요?”

행자스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나라의 방침으로 범어사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종이, 붓, 새끼, 짚신 같은 일상품부터 갖가지 농작물에 이르기까지 범어사에 철마다 부여된 부역과 노역의 수는 셀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낭백스님은 어떻게 해서라도 스님들의 고역을 면하도록 노력하였다. 몇 번의 간청 끝에 동래부사를 만나 관권 구속과 혹사 없이 스님들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부역을 줄여 달라 하였지만 부사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범어사로 돌아온 낭백스님은 스님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해서든 관가의 부당한 처사는 없어져야 한다. 하지만 출가자의 신분으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나는 금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내생에는 고급관리가 되겠다. 그리고 그 관리의 특권으로 범어사 스님들의 부역을 혁파하리라.”

낭백스님은 당장 다음날부터 범어사를 떠나 복을 짓기 시작하였다. 범어사를 오르는 산길 옆에 비바람이나 겨우 피할 작은 초막을 짓고 혼자 힘으로 산비탈을 개간했다. 밭이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추자 그곳에 오이와 감자를 심고 가꾸어 수확을 하고, 수확한 농산물을 하나도 남김 없이 배고픈 사람들에게 보시했다.

“그뿐이 아임니더. 동래로 가는 길목에 샘물을 파서 행인들의 식수를 제공하고, 밤에는 짚신을 삼았심더. 여러 켤레의 짚신을 길가 나뭇가지에 걸어 놓아 아무나 가져가 신도록 하셨고예. 그러다 보니 인근에 낭백스님을 모르는 사람이 없슴니더. 지나가다가 밭일하고 있는 스님을 보면 걸음을 멈추고 합장하며 예를 갖추고예…. 사람들이 와서 알려줍디다. 새벽길에 초막을 지나다 보면 스님께서 잠도 주무시지 않고 범어사를 향해 정성스럽게 기도하시는 모습을 본다꼬예.”

노연은 차오르는 울음을 삼키려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범어사를 바로 세우고 스님들이 공부와 수행에 힘쓰게 하기 위한 낭백스님의 애끓는 노력이었다. 스님은 그렇게 살고 계셨다. 처음 낭백스님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만 해도 당장 달려가서 그리운 존안을 뵙겠다고 생각했던 노연은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깨달았다. 노연은 공양간에서 복을 짓겠다고 생각했다. 범어사를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업을 쌓고 싶었다. 노연의 눈빛이 채마밭을 물들인 석양이 그 바쁜 걸음을 멈출 정도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범어사의 금강계단에서 절을 하는 부사의 뒷모습을 본 스님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이제 갓 부임한 젊은 부사는 나이답지 않게 위엄이 있고 기상이 넘쳤다.

“절을 하시는 모습이 수십 년간 불공을 드린 스님 못잖게 자연스러우시지 않은가?”

웅성거리는 스님들을 나무랄 만도 했으나 주지스님 역시 그 말에 동의라도 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계셨다. 나라에서도 배척하는 종교이니 부임해 오는 부사들이 절 순찰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했다. 대부분 눈으로 한 바퀴 휘 돌아보고는 발걸음을 돌리곤 했는데 조엄은 그러지 않았다. 대웅전을 나와서도 절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폈다.


◇ 조엄(1719년·숙종 45~1777년·정조 1)

1752년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 동래부사 · 충청도 암행어사를 거쳐 대사헌·승지·이조참의 등을 지냈다. 문장에 능하고 경륜(經綸)도 뛰어났다. 민생 문제에 관심을 가져 남긴 업적이 적잖다. 동래부사 시절 범어사에 과중하게 부과된 부역과 폐해 혁파도 그중 하나. 통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대마도에서 고구마 종자를 가져와 보급한 것도 그의 공덕.

박향 소설가

공동기획:부산시문화원연합회, 국제신문,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