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산주의와 민주화를 거치며
- 처절한 투쟁 치른 헝가리
- 부다페스트 젖줄 다뉴브강엔
- 투사의 흔적 동상으로 남았다
- 마르키드 다리·체인다리 지나
- 제로킬로미터 스톤까지 걷는 길
- 존엄이 구원받는 출발점으로
엘리자베스 다리에서 체인 다리까지 옛 산책로에는 ‘위대한 헝가리인’이라 불리는 정치가 세제니이(Istvan Szechenyi)의 삶이 스며있다. 부다 지역과 페스트 지역을 하나로 묶기 위한 그의 제안으로 1849년 다리가 개통되고 헝가리 언어, 예술, 과학의 연구와 발전을 위한 그의 후원으로 1865년 ‘헝가리 과학 아카데미’가 문을 열자, 1867년 강변에 호텔들이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산책로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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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뉴브강은 부다페스트를 부다 지구와 페스트 지구로 나누며 흐른다. 위 사진은 부다 지구에 있는 부다 왕궁. |
공산주의가 몰락하자 민주 선거에 따라 총리로 선출된 조제프 안탈(Jozsef Antall, 1932년 4월 8일~1993년 12월)의 이름을 빌려서 명명한 길을 따라 아카데미를 지나가면 ‘다뉴브 은행의 신발들(Shoes on the Danube Bank)’ 조각을 만난다. 그 신발들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파시스트 민병대에 살해되기 직전 또는 살해되면서 다뉴브강으로 뛰어들었던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조형물이다.(본지 지난 6일 자 22면 이 시리즈 제42회 상편에 소개)
■투사의 동상과 미술관,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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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뉴브강의 수상 버스. |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국가주의를 되돌아보면서 길을 재촉하면 1848년 혁명을 이끈 헝가리 민주주의의 아버지, 유럽 민주주의의 투사로 널리 존경받는 코슈트(Kossuth, 1802년 9월 19일~1894년 3월 20일)의 이름을 딴 광장과 그의 동상도 만난다.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다가 역사의 이야기 밖으로 나오고자 하면, 칼만 마클리 미술관(Kalman Maklary Fine Arts, 2005년 설립)에서 예술가들이 만들어 가는 초현실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거나, 민족지학 박물관(Museum of Ethnography, 1872년 설립)에서 헝가리인의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도자기, 의상, 가구 등 민속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래도 오스트리아에 굴복한 1848년 혁명, 민주공화국이 사회주의 국가로 바뀐 1919년 혁명, 소련의 침공으로 독립을 상실한 1956년 혁명에서 치른 처절한 투쟁과 잔혹한 현실이 지워지지 않는다면 ‘무료 게임 센터’(Amusement Center)에 들어가 시간 여행을 떠나자.
시간 여행에서 되돌아오면 한 마리 개 앞에서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른 한 손으로 괜스레 머리를 만지고 있는 항해가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0년 10월 31일~1451년 10월 30일) 동상을 만나고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위대한 탐험가도 일상생활인이라고 느낄지 모른다.
■강변 산책로 자체가 문화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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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럼버스 동상. |
탐험이 아니라 산책으로 강을 건너려 하면 마르키드(Margithid) 다리가 기다린다.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 다리의 하나로 엔지니어 귄(Ernest Guen)이 설계하여 1876년 개통한 다리이다. 다리의 이름은 몽골의 1차 침입(1241년 4월 11일)때 패배했지만 2차 침입에 대비하여 나라를 재건해 ‘국가의 두 번째 설립자’로 추앙받는 벨라 4 세(Bela IV, 1206년~1270년 5월 3일)의 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다뉴브강의 모래톱 마르키드 섬을 중심으로 연결된 다리를 건너며 부다 지역으로 들어선다. 그 길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나치에 대항하여 유대인들을 구출한 가톨릭 신부 안젤로 로타(Angelo Rotta, 1872~1965년)의 이름애서 빌려온 것이다. 그 길은 1945년 9월 800명의 난민 아동으로 ‘어린이 공화국’을 창설하서 헌법과 법률도 만들어 동심의 세상을 건설하려 한 목사 첼로 가보(Gabor Sztehlo, 1909년 9월 25일~1974년 5월 28일)의 길로 이어지면서 체인 다리에 이른다.
체인 다리를 지나 제2차 세계대전 중 부다페스트에서 적십자 활동을 하면서 적어도 1만 명의 유대인을 구해준 프리드리히 본(Friedrich Born, 1903년 6월 10일~1963년 1월 14일)의 길을 따라가면 엘리자베스 다리에 이른다.
■이 길은 또 어디로 이어질 것인지
옛 산책로의 건너편 길에서는 드디어 역사 밖으로 나와 종교의 길, 생명 구원의 길로 산책하게 된다.
어떤 길이든 길은 시작되고 끝나지만 이어진다. ‘제로(Zero)’ 표지판을 석회암 조각으로 만들고, 그 받침대에 KM(킬로미터)이라는 글자를 새겨 부다페스트까지 나라 안 도로의 거리를 측정하는 기준점으로 삼는 제로 킬로미터 스톤(The Zero Kilometre Stone)이 국가주의와 공산주의로부터 인간의 자유와 생명의 존엄이 구원받는 출발점으로 다가온다. 그 출발점은 독수리의 공격을 받아 위험에 처한 뱃속 아기를 구하고 헝가리 부족을 지켰다는 신화 속 투룰(Turul, 매의 일종)의 동상으로 이어진다. 그 동상을 지나는 동안 조각가 카를리 센니(Karoly Senyey)가 1912년, 어느새 자란 바로 그 뱃속 아기를 ‘낚시하는 어린이들의 분수(Fountain of the Fishing Children)’에 새겨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근처에 있는 시인 가보르(Hogyeszi Dobrentei Gabor, 1785년 12월~1851년 3월 28일) 동상으로 다시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태아에서 어린이로 시인으로 과학자로 생명을 이어주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옛 산책로의 출발점이다. 언제나 길은 이어져 있고, 시작이 끝이고 끝이 시작이듯, 우리의 여행도 그렇게 이어진다.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디로 갈까?
민병욱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