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숙인 관리도… 일당 3명 구속

노숙인을 법인 대표로 둔갑시켜 유령 법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만들어 범죄 조직에 넘긴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부산 기장경찰서는 12일 노숙인이나 저소득층 명의로 다수의 유령 법인을 설립하고, 대포통장을 만들어 유통한 혐의(전자금융거래법 위반)로 총책 허모(34) 씨와 노숙인 관리·모집책 등 3명을 구속했다. 허 씨 일당은 지난해 8월부터 지난달까지 노숙인과 저소득층 14명의 명의를 빌려 22개의 유령법인을 설립하고 대포통장 72개를 만들어 유통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 조사 결과 허 씨 일당은 서울역 청량리 노량진 등지에서 노숙인에게 ‘생활할 곳을 제공하고 용돈도 주겠다’고 접근했다. 노숙인 출신의 모집책 이모(61) 씨는 부산역에서도 노숙인을 포섭하려 했으나 부산역 노숙인은 서울 출신을 끼워주지 않는 텃세가 있어 부산 노숙인 모집은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허 씨 일당은 노숙인의 신용도를 조사해 법인 설립이 가능한 노숙인만 모집했다. 사업체를 운영하려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려고 목욕시키고 옷도 사줬다. 노숙자를 기장군 일광의 민박이나 남구 대연동 고시텔 등에 지내게 하며, 주민센터 직원 응대 요령과 경찰 적발 때 대응법 등을 가르쳤다. 매일 2만 원의 일당도 지급했다.

이들은 노숙인 명의의 법인을 만든 후 법인 명의의 통장을 개설했다. 은행 직원의 구체적인 질문을 피하려고 통장 개설은 위임장을 받은 노숙인 관리책 조모(34) 씨가 담당했다. 경찰은 “노숙인 본인이 가야 하는 것은 교육하고, 서류 마련이나 통장 개설 등 복잡한 것은 허 씨 등이 위임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만든 통장은 보이스피싱과 인터넷 도박 등을 하는 범죄조직에 넘어갔다. 허 씨는 통장당 매월 100만~150만 원의 관리비를 받아 총 4억 원을 챙겼다. 경찰은 유령 법인을 만드는 데 협조한 법무사 등으로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