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락희화학·제일제당·대양고무…
- 전란의 상흔 속 성장한 기업
- 근대산업유산 추억길로 재회

- 도심 속 성지곡 편백나무숲
- 오밀조밀 전포카페거리와
- 740ｍ은행나무 낙엽길까지
- 번화가에 감춰진 힐링장소 곳곳

번화가, 광장, 만남의 장소, 쇼핑시설, 영화관. 대부분 시민은 부산진구를 두고 부산 최고의 번화가 ‘서면’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부산진구에는 6·25전쟁 이후의 근대 산업이 태동한 흔적이 고스란히 간직돼 있고, 도심에서도 도보로 30분이면 가 닿을 수 있는 의외의 ‘힐링 숲’도 자리하고 있다. 전포카페거리는 명실상부한 전국구 ‘핫플레이스’로 떠올라 평일에도 인파로 붐비는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근대 산업 유산 추억길’을 만나다

	은행나무잎이 소복히 쌓인 부산 부산진구 놀이마루 앞 인도에서 관광객들이 셀카를 찍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부산진구는 12월 한달 동안 NC백화점에서 더샵센트럴스타에 이르는 740ｍ 구간에서 ‘동천은행나무길 낙엽축제’를 연다. 서순용 선임기자 seosy@kookje.co.kr

오늘날 LG 그룹의 전신인 락희화학을 비롯해 제일제당, 흥아타이어, 대양고무, 경남모직, 동명목재 등 굵직한 기업의 모태가 된 곳은 부산진구다. 옛 서면 극장가까지 포함하면 그 흔적은 대부분 서면 인근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들 기업이 자리했던 흔적과 그 사이사이에 숨은 명소는 부산진구가 운영하는 도보 여행 프로그램 ‘서면 근대 산업 유산 추억길’(이하 근대 유산 추억길)을 통해 직접 둘러볼 수 있다. 부산진구는 지난 7월부터 근대 유산 추억길을 시범적으로 운영했으며 다음 달 본격 운영을 앞두고 있다.

도보여행에 나선 시민은 전체 약 8㎞에 달하는 근대 유산 추억길 구간을 ‘황금신발길’(4.5㎞·1시간 10분 소요)과 ‘서면영화길’(3.4㎞, 50분 소요)로 나눠 둘러볼 수 있다. 황금신발길은 도시철도 서면역 9번 출구에서 출발해 황금신발조형물-LG사이언스홀(옛 락희화학)~부산시민공원~부전마켓타운을 둘러보는 코스다. 서면영화길에서는 동명목재, 제일제당, 경남모직, 대양고무, 흥아타이어 등 전란의 상흔 속에서 일궈진 기업들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도보여행에는 부산진구가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양성한 문화해설사가 동행한다. 이들 기업이 자리했던 물리적 흔적은 오늘날 대부분 사라졌지만, 문화해설사들은 코스별로 주요 거점에 얽힌 내력을 여행자들 앞에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 이해를 돕는다.

이달 중 신나라레코드를 비롯해 커피가게, 공방 등 볼거리나 체험적 요소를 갖춘 ‘관광 거점 시설’ 10곳도 선정된다. 이들 거점은 근대 유산 추억길을 둘러보는 여행자의 쉼터로, 또 팸플릿 등 추억길의 정보를 담은 유인물을 비치해두는 곳으로 활용된다.

■도심 속 ‘힐링 숲’ 성지곡 편백림

	부산진구 성지곡 삼림욕장 편백숲.

지난 8일 오전 초읍 어린이대공원 입구는 평일임에도 공원을 거쳐 백양산에 오르려는 이들로 붐볐다. 부산 유일의 동물원인 삼정더파크 곁을 지나 덱길을 따라 20분가량 오르면 곧 수원지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아스팔트길을 지나 10여 분을 더 걸으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 성지곡 삼림욕장 편백숲(이하 편백숲)이다.

넓이 약 9만 ㎡의 편백숲에는 5만 그루가 넘는 편백나무가 빼곡하게 자리했다. 대부분 수령이 70~ 80년 된 나무들로 키는 20ｍ를 훌쩍 넘겼다. 빽빽한 숲길 사이로 난 길이 3.5㎞의 산책로 위에서는 겨울 숲길이 자아내는 고요함을 느낄 수 있다.

피톤치드가 그득한 도심 속 힐링공간은 지난달 삼림청이 주최한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우수상)에 선정됐다. 대회에서는 제주 2곳, 강원 2곳을 비롯해 전국의 유려한 숲 9곳이 선정됐고, 부산에서는 유일하게 편백숲이 수상했다. 편백숲에는 생태학습장과 벤치, 피크닉 시설 등이 조성돼 숲길을 걷는 것은 물론 일행과 둘러앉아 담소도 나눌 수 있게 돼있다. 특히 편백숲 전망대에서는 부산진구와 남구를 넘어 해운대구의 전경까지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전포카페거리에서 낙엽을 보다

	전포카페거리. 국제신문 DB

소담한 카페와 식당 약 40곳이 자리한 서면 전포카페거리는 뉴욕타임스(NYT)가 ‘2017년 꼭 가봐야 할 여행지’로 호명하면서 더 큰 유명세를 누리고 있다. NYT는 통상 ‘꼭 가봐야 할 여행지’로 53곳을 꼽는다. 왜 53곳을 선정하는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적은 없지만, 1년이 통상 53주로 구성되는 만큼 세계 각지의 여행객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쯤 시간을 내 가볼 만한 장소’를 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카페거리 일대에 자리한 카페와 식당에서는 체인점에서는 접하기 힘든 그 가게만의 ‘시그니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연말이면 중구 남포동이나 해운대해수욕장 일대가 전등·트리로 장식되는 것과는 달리 부산진구는 12월 한 달간 전포카페거리가 있는 동천 은행나무길을 낙엽으로 뒤덮기로 했다. 은행나무길이라는 이름대로 약 740ｍ에 이르는 이 길에는 은행나무 120여 그루가 자리했지만, 부산진구는 관내에서 발생하는 낙엽까지 공수해와 거리를 낙엽으로 장식했다. 연말 분위기를 위해 일부 구간에는 크리스마스 트리도 들어선다. 이외에도 12월 이 길을 방문하면 나쁜 기억을 휴지통에 버리거나 새해 소원 메모에 적어 달기, 신년 운세 뽑기 등 이벤트도 체험해 볼 수 있다. 한때 철물·공구상이 주로 입점해 있던 전포카페거리는 2010년 아기자기한 카페·식당이 들어서기 시작하며 분위기가 달라진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김민주 기자 min8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