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대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 제인 하이닝의 강변길을 걸으니
- 헝가리 독립을 노래한 시인부터
- 선조들이 쌓은 평화를 누리는
- 소녀와 여섯 살 작은 공주까지
- 갖가지 동상이 도시를 얘기한다
- 온천천 등에 들어선 설치작품도
- 도시를 품은 이야기가 있을까
온천천을 산책하듯 걸어 출퇴근하다가 여유가 있으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풍경을 물끄러미 본다. 그럴 때는 헝가리 부다페스트(Budapest) 다뉴브강변 산책로(Old Danube Promenade) 풍경이 떠오른다. 온천천이나 수영천 천변에 그려져 있는 그라피티를 비롯해 청동조각, 실사스크린, 타일, 천자문 등으로 구성된 벽면들, 가끔 보이는 돌 표지와 기념비석이 왜 거기 설치되었는지, 설치된 장소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이 꼬리를 물자, 다느뷰 강변 산책로 풍경이 겹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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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다뉴브강과 체인 다리의 풍경. |
세병교에서 안락교에 이르기까지 하나둘 늘어나는 카페가 천변 풍경과 어울려 ‘핫 스팟’이 될 수 있을까? 뉴욕타임스가 ‘올해 가봐야 할 52곳’(2017년 1월 4일) 가운데 48위로 전포동 카페거리를 선정하면서 “도시의 독립적 디자인이 없는 부산에서 디자인 핫 스팟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는데, 그 비슷한 의미를 지닌 온천천 카페거리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 2㎞ 남짓 산책로가 빛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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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세계대전 중 파시스트 민병대에 살해된 이들을 기리기 위해 조각가 파우어가 다뉴브 강변에 만든 작품 ‘다뉴브 은행의 신발들’. |
그 기사를 떠올리면 우리 언론에서는 그런 각도에서 관심받지 못한 지역을 선정한 뉴욕타임스의 버그만(Justin Bergman) 기자의 안목도 놀랍지만, 왜 그 기사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가 ‘50위’로 선정됐는지도 궁금하다. 부다페스트를 50위로 꼽은 기사에서 담당자 아캄(Alia Akkam) 기자는 “레스토랑, 보석, 전자제품, 숙박시설’로 살아나는 도시의 역동성”을 선정 이유로 밝혔다.
몇 년 전 여름, 부다페스트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부다페스트 중앙시장에서 필요한 물품을 사고, 시간이 남아 다뉴브강변으로 나갔다. 그러자 그간 하나하나에만 관심을 뒀던 동상들이 전체로 보이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 다리(Elisabeth Bridge)에서 시작해 부다페스트에서 유태인들의 생존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끝에 1944년 나치에 체포돼 숨진 제인 하이닝(Jane Haining, 1897년 6월 6일~1944년 8월 16일)의 이름으로 명명한 강변길을 따라 2km도 되지 않는 거리에 있는 체인 다리(Chain Bridge)까지, 다뉴브강변 산책로가 하나의 스토리텔링으로 다가온다.
■ 쉬지 않고 나타나는 동상과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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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톤의 조각 ‘작은 공주’. |
엘리자베스 다리는 44년 동안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통치한 엘리자베스 여왕(1837년 12월 24일~1898년 9월 10일)을 기념하고자 1897년과 1903년 사이에 지은 다리다. 다리에서 200m쯤 가면 시인이자 자유주의 혁명가 샌도르 뻬쩨피(Sandor Petofi, 1823년 1월 1일~1849년 7월 31일) 동상을 만난다. 그는 ‘국가의 노래(Nemzeti dal)’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노예였습니다./우리 조상은 저주 받았고,…노예의 땅에 안주할 수 없습니다’라고, 오스트리아 제국에 대항한 헝가리 혁명(1848~1849년)을 노래한 시인이다.
거기서 다시 400m를 채 못 가 당시 혁명에 참여한 선조의 희생으로 지금 안락한 삶을 누리는 듯, 조각가 데이비드(Raffay David, 1973년 8월 8일생)가 청동으로 만든 ‘강아지와 소녀(Girl With Her Dog Statue)’ 동상을 만난다. 그 옆에는 강변 기찻길 울타리 난간에 걸터앉은 ‘작은 공주 동상(Little Princess Statue)’도 있다. 조각가 마톤(Laszlo Marton, 1925~2008년)은 ‘공주처럼 옷 입고 어깨에 목욕 가운 얹고 머리에 왕관 쓰고 정원에서 노는 여섯 살 딸’을 모델로 그 동상을 제작한다.
천진난만하고 장난기 많은 소녀 동상을 보면서 더 가면 작가이면서 정치가 조제프 에요브스(Jozsef Baron Eotvos, 1813년 9월 3일~1871 년 2월 2일) 동상이 기다리고 있다. 그는 “오스트리아 제국과 동등한 지위”라는 명분을 내세워 헝가리 혁명을 일으킨 정치가로 자유와 해방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쓴 작가이다.
■한 번 가본 사람도 다시 부르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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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의 조각상 ‘강아지와 소녀’. |
동상을 뒤로하고 강을 바라보면 체인 다리가 눈앞에 다가선다. 윌리엄 클라크(William Tierney Clark, 1783년 8월 23일~1852년 9월 22일)가 설계하고 아담 클라크 (Adam Clark, 1811년 8월 14일~1866년 6월 23일)가 제작해 후원자 세제니이(Istvan Szechenyi, 1791년 9월 21일~1860년 4월 8일)의 이름으로 1849년 개통한 다리는 당시 기술로는 경이로운 설계로 여겨졌다.
다뉴브강 동편 페스트 지역을 거닐었다. 그러다 보니 “헝가리 혁명사도 문화예술사도 제대로 읽지 않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느새 친숙하게 다가온 이 나라 역사와 문화가 새삼스레 소중하다.
체인 다리를 지나, 엘리자베스 다리에서 걸어온 만큼 더 가면 마가렛(Margaret) 다리와 모래톱으로 이뤄진 섬으로 가거나, 서편 부다 지역으로 갈 수 있다. 거기 가면 또 얼마나 흥미롭고 뜻깊은 산책을 할 수 있을까. 다뉴브강변 짧은 산책로는 그렇게 역사·문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긴 길이었다.
무엇보다도 제2차 세계대전 중 파시스트 민병대에 살해된 사람들을 기려 조각가 파우어(Gyula Pauer, 1941년 2월 28일~2012년 10월 8일)가 만든 ‘다뉴브 은행의 신발들(Shoes on the Danube Bank)’을 다시 보기 위해서라도 부다페스트에 또 갈 것이다.
민병욱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 bmw@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