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기상청이 발간한 ‘한반도 역사 지진 기록’을 보면 과거 문헌에서 액상화 지진으로 추정되는 기록은 총 다섯 차례 등장한다. 한반도 역사 지진 기록은 기상청이 2012년 삼국사기 고려사절요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증보문헌비고 승정원일기 일성록 풍운기 천변초출승록과 개인 문집, 지방지를 참고해 서기 2년부터 1904년까지 역사 문헌에 기록된 2161번의 지진을 집대성한 것이다.
액상화로 추정되는 기록이 처음 등장한 것은 304년 삼국사기와 증보문헌비고이다. 여기에는 ‘지진이 있었다. 샘물이 솟구쳤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액상화에 대한 기록이 구체적으로 나온다. 두 번째 액상화 추정 기록은 1597년 함경도 지역의 지진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에 있다. 기록을 보면 ‘함경도에 8월 26일부터 28일까지 연속적으로 여덟 번의 지진이 있어 담벽이 모두 흔들리고 새와 짐승도 다 놀랐으며, 이로 인해 병들어 누워 일어나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인차외보 동쪽으로 5리쯤 되는 곳에는 붉은 빛의 흙탕물이 솟아오르다가 며칠 만에 그쳤다’는 내용이 보인다.
세, 네, 다섯 번째 기록은 모두 1643년 지진을 다룬다. 부산 동래, 경남 합천, 울산 등 동남권에서 액상화로 추정되는 현상이 기록돼 있다. 1643년 5월 30일 승정원일기를 보면 ‘초계(경남 합천 초계) 지역에서는 진동하던 때에 건천(마른 하천)에서 탁한 물이 나왔다. 변괴하고 비상한 일이다’는 기록이 있다. 1643년 6월 9일 조선왕조실록에도 ‘오랫동안 마른 샘에서 흙탕물이 솟구쳐 나왔다’고 기록돼 있다. 승정원일기도 이 지진에 대해 ‘마른 샘에 물이 넘쳤으며, 큰 길이 찢어지고 갈라졌다’고 기록했다. 마지막 기록은 1643년 7월 24일과 25일에 있던 지진에 관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경상도 대구 안동 김해 영덕 등 고을에도 지진이 있어 연대와 성첩이 많이 무너졌다. 울산부에서는 땅이 갈라지고 물이 솟구쳐나왔다’고 적혀 있다. 승정원일기도 울산 지진에 대해 ‘물이 샘처럼 솟았으며, 물이 넘자 구멍이 다시 합쳐졌다. 물이 솟아난 곳에 각각 흰 모래 1, 2두가 나와 쌓였다’고 기록했다.
지질 전문가는 1643년 발생한 동남권 지진에서 액상화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이 나온 점에 주목했다. 부산대 손문(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동남권에는 연약 지반이 많아 과거에도 액상화 지진이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대비 차원에서 동남권 지역 지반에 대한 액상화 연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호걸 기자

[이슈] 배재고 지역 비하 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