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흥해읍 체육관 800여 명 북적
- 계속된 여진에 불안 속 망연자실
- 일부 주민 “포항시, 대처 미흡”
- 두통 호소·씻을 곳 부족 불만도

17일 지진 대피소가 마련된 경북 포항시 흥해읍 체육관에서 숙식하는 이재민은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쏟아내고 있었다.

지난 15일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 후 건물 붕괴를 우려하는 주민 800여 명은 여진이 이어지자 서로 걱정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날 오후 1시 새마을회 등에서 나온 자원봉사자들이 건네는 국과 반찬을 식판에 담아 삼삼오오 둘러앉아 먹었다. 주민 김모(64) 씨는 “성의가 정말 고맙지만 따뜻한 집밥이 그립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할까 생각하니 막막하다”고 털어놨다.

흥해읍 마산리 대성아파트 주민의 고민이 가장 깊었다. 6개 동에 260세대가 입주한 이 아파트는 30년 전인 1987년 지어져 일대에서 가장 낡았다. 이번 지진으로 일부 동 벽체와 기둥이 무너지고 창틀이 심하게 뒤틀리는 피해가 났다. 1개 동은 옆으로 기울어버렸다. 이곳에 사는 한 주민은 “지난 15일 주민 대다수가 이곳 체육관으로 대피했고, 일부는 다른 지역 친척이나 시내권 모텔 등으로 거처를 잠시 옮겼다”며 “당시 일을 생각하면 너무 어이가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일부 주민은 대피령을 내린 뒤 어떤 조처도 하지 않는 포항시에 항의하기도 했다. 한 입주민은 “얼마 동안 어디서 지내야 하는지 설명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럴 바에 위험하더라도 집에서 지내는 것이 훨씬 낫다”고 목소리 높였다.

체육관에서 이틀 밤을 보내면서 대다수 이재민은 적잖이 초췌해져 있었다. 일부 주민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탓인지 오후 2시가 됐음에도 모포를 덮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대피소 구석에 마련된 약품지급소에서 가슴이 답답하고 두통이 심하다는 증상을 호소하며 약을 타가는 주민이 자주 보였다. 모포와 내의 세면도구 속옷 등의 응급 물품 지원이 계속되지만, 정작 몸을 씻을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불만도 커지고 있다.

포항=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