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약지반 요동에 지하수 분출
- 물렁해진 땅 피해 더 키워
- 밭에 솟구친 흙탕물이 증거”
- 주민들 “물 끓어 올랐다” 증언
- 부산도 연약지반 많아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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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일대 밭에 지진 여파로 지하수가 뿜어 오른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 부산대 손문 교수 연구팀이 이 일대의 지질을 조사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
지난 15일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이 큰 피해를 낸 것은 ‘액상화’ 현상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액상화는 강한 지진동에 의해 지하수가 주변 점토나 모래를 흡수하고, 이 흙탕물이 지표면 밖으로 분출되는 현상이다. 국내 지진 관측 사상 액상화가 발견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문가는 연약지반이 많은 부산이야말로 액상화 대비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부산대 손문(지질환경과학과) 교수 연구팀은 17일 포항 지진 현장을 점검한 결과 진앙 주변에 액상화 흔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액상화가 발생하면 지표면 위 건물이 일시적으로 물위에 떠 있는 상태가 된다. 지진의 영향으로 기울어진 포항시 대성아파트도 땅속 흙탕물이 분출해 생긴 공간 탓에 지반이 뒤틀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지진이 발생한 직후부터 현재까지 포항 진앙 주변을 조사하고 있다. 진앙을 기준으로 약 2㎞ 반경에서 흙탕물이 분출된 흔적을 발견했다. 손 교수 연구팀 이성준(지질환경과학과·박사과정) 씨는 “지진 발생 당시 ‘물이 부글부글 끓으며 솟아오르더라’는 주민의 증언을 확보했다”며 “그 전에는 밭 전체가 바싹 말라 있었고, 지진 후 지금까지 이 지역에 비가 온 적도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취재진이 현장을 찾은 17일 추수가 끝난 밭 곳곳에서 개펄과 비슷한 형태의 흙덩어리 구역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밭 전체는 마른땅이었지만, 액상화가 발생한 곳과 밭의 고랑 사이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분출된 흙탕물이 고랑을 타고 흐른 것으로 추측된다. 이 마을 이장 권해길(62) 씨는 “이 주변에서 물에 젖은 밭을 서너 군데 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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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액상화 지진 탓에 기운 것으로 추정된 포항 대성아파트. 연합뉴스 |
액상화를 조사하려고 전국의 연구진도 몰려들고 있다. 한국교원대와 고려대, 한국기초과학연구원이 이날 조사에 함께했고, 18일에는 부경대와 한국지질자원연구원도 현장을 찾을 예정이다. 한국교원대 경재복(지구과학교육과) 교수는 “지진 피해는 지진동뿐만 아니라 액상화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 영일만에서 보고된 지반 침하 현상도 액상화에 의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매립지가 흔한 부산도 연약 지반이 많아 액상화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9월 규모 7.1 지진이 발생한 멕시코시티는 진원에서 123㎞ 떨어졌지만 370여 명이 사망했다. 이곳이 호수를 매립해 만든 도시이기 때문이다. 손 교수는 “매립지가 많고, 낙동강을 낀 부산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강진이 발생해도 큰 피해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 액상화
모래 지반에서 순간 충격, 지진, 진동 등에 의해 간극 수압의 상승 때문에 유효 응력이 감소돼 지반이 액체와 같은 상태로 변화하는 현상. 액상화의 영향으로 구조물 침하 및 파괴, 지반의 이동 등이 있다.
포항=박호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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