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지개마을연구회와 주민
- 옛 흔적 더듬는 인문학사업
- 책 ‘무지개를 찾아서’ 출간
1972년 부산 동구 수정동의 판잣집은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이 밧줄로 매어 엎어버렸다. 아무런 보상도 못 받고 강제철거를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저 반여동 집을 만들어놨으니 그리로 가라고 했다. 돈이 있는 사람은 그 터를 사서 주택을 짓고, 없는 사람은 여기(해운대구 반여2·3동)로 다 몰려왔다.
| |  |
| 1970년대 부산 동구 수정동 철거민들의 이주단지로 조성된 해운대구 반여2·3동 ‘무지개마을’의 과거(왼쪽)와 현재 모습. 해운대구·무지개마을연구회 제공 |
쫓겨나다시피 해 온 반여동 집은 시설이 열악했다. 이주민을 위해 마련된 집은 방 두 칸과 부엌 하나 구조의 뼈대만 세워진 곳이었다. 사람들은 ‘구지빼기’(뽑기)로 살 집을 정하고, 각자 자기 집 공사를 마무리했다. 이렇게 반여동 경사지를 따라 조성된 단층 연립주택이 빈틈 없이 메워졌다.
윤쌍순(85) 할머니는 “말도 마소, 얼마나 살기가 고달프던지. 뼈대만 있는 집에, 아는 사람도 없었지.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길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빨주노초파남보’. 이주 당시 정부는 구획을 나누며 주택 지붕을 무지개색으로 칠하면서 반여2·3동은 ‘무지개 마을’로 불렸다. 지금도 골목길을 지나다 보면 무지개 떡집, 무지개 문방구, 무지개 상회 등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백영애(84) 할머니는 “‘노랑 다이(지붕), 파랑 다이’라고 말하면 위치를 대강 알 수 있었다. 그 열악했던 곳이 주민의 손을 거쳐 제법 살만한 곳이 됐다”고 말했다.
15일 부산 해운대문화복합센터에서는 디자인북 ‘무지개를 찾아서’ 출판기념식이 열렸다. 이 책은 무지개마을연구회가 반여2·3동 주민과 함께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의 애환과 삶을 담은 책이다. 책 발간에는 해운대구의 골목길 인문학 사업비 총 1100만 원이 투입됐다.
총 8명의 이주민이 기억 속의 무지개 마을을 기록해 엮었고, 20·30·50대 주민이 이곳의 현재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무지개연구소 해운대구 드림스타트와 반여 어깨동무 지역 아동센터 소속 17명의 어린이가 일회용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도 포함됐다.
반여2·3동은 1972년 부산시 주거환경 개선 계획에 따라 서구 구덕 수원지 수재민의 이주를 시작으로 1975년까지 중구 영주동, 동구 좌천·초량동 등 고지대 철거민이 이주해온 인구 밀집형 주거지역이다.이주 당시 10평(약 33㎡)이던 협소한 연립주택 촌은 이후 주거환경 개선사업으로 현재 대부분 2~5층 빌라 형식이다. 외곽에는 아파트 단지도 들어섰다. 주거공간이 수직적으로 발달하면서 도로가 좁고, 주차 시설이 부족한 형편이다.
이 사업을 기획한 무지개마을연구회 이순행 작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곳 주민 대부분은 옆집의 찌개 냄새를 맡고, 대문 앞을 나서면 코앞에서 앞집 주민과 인사를 나눈다”며 “이 사업으로 무지개 마을 주민이 자신의 터전에 대한 소중함과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