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이주자와 아프리카 노예
- 원주민이 모여 이룬 대도시
- 번성했던 항구였으며
- 한때 아르헨티나로부터의
- 독립을 꿈꾼 라 보카
- 이곳에서 태어난 화가는
- 라 보카의 활기를 화폭에 담고
- 그의 친구였던 음악가는
- 이 도시를 닮은 탱고를 탄생시켰다
“진정한 라 보카(La Boca)는 관광객이 오후 6시께 돌아갈 때 시작됩니다. 모든 이곳 사람이 언제나 거리에 있습니다. 거리는 이웃의 안뜰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놀고 거리에서 먹으며 거의 모두 서로를 알고 있습니다.”
탱고의 발상지로 널리 알려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라 보카’로 가는 버스 속에서 지역 정보를 재확인하려고 메모장을 열어보니, 그 첫머리에 몇 겹 폐곡선으로 동그라미를 치고 별표를 한 곳에 적혀 있던 글귀였다. 이어 화가 마르틴(Martin)과 친구 음악가 후안(Juan)이라고 밑줄을 긋고 큰 별표를 그려 놓은 메모가 있다.
운전석 뒷좌석에 바짝 붙어 앉아 메모장과 차장 풍경에 시선을 번갈아 두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동안 버스 운전사가 베니토 퀸켈라 마르틴 박물관(Benito Quinquela Martin Museum)에 다 왔으니 내리라고 친절하게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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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보카의 알 카미니토 거리에서 사람들이 탱고 연주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고 있다. |
■라 보카로 가고자 한 이유는
라 보카로 가고자 한 것은, 화가 마르틴(Benito Quinquela Martin, 1890년 3월 1일~1977년 2월 28일)과 그의 친구 음악가 후안(Juan de Dios Filiberto, 1885년 3월 8일~1964년 11월 11일) 때문이다.
버스를 내리니 박물관은 마탄자 강(Matanza River)변에 자리하고, 아르헨티나 황금시대를 이끈 대통령 니콜라스 아베야네다(Nicolas Avellaneda, 1837년 10월 3일~1885년 11월 24일)의 이름을 빌려온 다리가 건너편 강변을 연결하고 있다.
입(mouth)이라는 뜻을 가진 라 보카는 글자 그대로 마탄자 강의 입에 해당하는 강변 지역이다.
토착 원주민 마푸체족(mauphe)도 외면한 이 지역은 1536년 처음 상륙한 스페인인들, 1830년 제노아(Genoa)에서 대규모로 이민 온 이탈리아인 그리고 그리스, 동유럽, 아일랜드, 영국, 프랑스 등에서 온 이민자와 그 후손 크리오요(Criollo), 아프리카 흑인노예가 합류하여 대도시를 이룬 곳이다. 그러면서 이 도시는 자기 지역만이 가진 역사와 문화, 예술 현장의 경험을 축적하고 보존한다. 그 결과 1880년대 아르헨티나 공화국 (Argentine Republic)에서 탈퇴하여 ‘라 보카 (La Boca) 독립 공화국’을 설립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 지역은 독특한 사회·문화·민족적 특성을 바탕으로 연대한 구역인 바리오(Barrio)를 형성한다.
그 와중에 바리오가 지방자치단체의 하위 행정구역이 되고, 도시가 빈민촌으로 몰락하여 폐허가 되면서 전래되어 온 고유한 지역 문화도 사라져 간다.
■탱고, 라 보카에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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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라 보카 지역을 ‘라 보카 공화국’으로선포한 벽화. |
폐허에서 태어나 고아원에서 자란 화가 마르틴과 그의 친구 음악가 후안은 바리오를 행정 단위가 아니라, 문화예술가의 연대를 통해 여전히 많은 이민자들, 볼리비아인, 파라과이인, 페루인 및 일부 아랍인, 아프리카인 및 라틴 아메리카의 다른 지역 출신 예술가들의 메카로 만들기 시작한다.
마르틴은 한때 아르헨티나의 두 번째 도시로 번창했던 시절의 라 보카 항구 지역을, 활기와 활력이 넘쳐나는 일상생활의 생동감을 그림으로 그리고, 거리 골목과 그 집들도 밝고 강렬한 색으로 화려하게 채색하면서 엘 카미니토 (El Caminito) 거리를 야외 박물관으로 만들고자 한다.
후안도 그 시절 일을 마치고 카미니토 거리에서 술 마시고 춤추고 노래 부르며 서로 한 가족처럼 어울려 놀았던 항만노동자들의 삶을 시 작품으로, 음악으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그는 쿠바계 음악, 스페인 식민지시대 음악, 이들로부터 파생된 음악이 혼합된 탱고를 아르헨티나만의 음악, 땅고 아르헨티노(Tango Argentino)로 만들어간다.
그리고는 그는 악단을 편성하여 친구 마르틴이 만들고 있는 예술가의 거리에서 연주도 하고 작곡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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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 카미니토 거리의 입구. 화창하고 낭만적인 풍경이다. |
■마탄자 강은 여전히 흐르고
화가 마르틴은 그 거리를 후안의 작품 이름을 그대로 빌려서 엘 카미니토라고 명명하고 예술공동체 운동을 거듭한다. 죽으면서까지 그는 ‘색깔에 둘러싸여 살았던 사람들은 일반 상자에 묻힐 수 없다’라고 하면서 관의 덮개에 라 보카 항구의 그림을 붙였다. 1959년 시정부도 거리 엘 카미니토 (El Caminito)를 야외 박물관(open-air museum)으로 공식 선언한다.
박물관을 나와서 한숨의 광장(Plazoleta de los Suspiros)을 지나 야외미술관(Museum of Fine Arts Outdoor)과 카페 하바나 사이로 접어들자 카미니토 거리가 펼쳐진다.
그 거리는 빨강, 노랑, 파랑 등 강렬하고 화려한 원색으로 채색한 이층집들과 카페와 기념품 가게들이 줄지어 서 있고 관광객을 호객하면서 탱고를 연주하는 거리예술가들과 탱고를 추는 남녀들, 관광객의 시선을 집중하도록 강요하는 그라피티들과 조각들로 가득 차 있다. 또 조그만 빈터에는 작품을 전시, 판매하려는 거리 화가들과 구경꾼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길을 되돌아 나와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니 마탄자 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강물을 따라 라 보카도 이웃공동체에서 예술공동체로, 드디어 외국인 전용 관광지로 흘러간다. 화가 마르틴과 음악가 후안이 자리하고 있는 강의 수심을 보지 못하면서, 우리도 예술 창작 공간을 관광지로 만드는 것에만 너무 깊이 몰두하고 있지는 않은가?
민병욱·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 bmw@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