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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33> 남해 다랭이지겟길

계단식 논·쪽빛바다·뱃고동소리 … 눈과 귀가 즐거운 해안길

  • 이완용 기자 wylee@kookje.co.kr
  •  |   입력 : 2017-10-01 18:53:28
  •  |   본지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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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산항서 시작 16㎞ 코스
- 마을 초입부터 경치 압도
- 톳나물·미역·고둥·게 지천
- 발밑 몽돌 구르는 소리
- 바래길 듣는 즐거움 만끽

경남 남해군 남면 가천 다랭이마을은 척박하기 짝이 없는 섬 주민들의 억척스러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보면 볼수록 가슴이 아리는 곳이다. 그러나 그런 아련함을 안고 있는 계단식 논을 중심으로 오늘을 사는 후손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편이 되고 있다. 힐링과 체험의 현장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 앞에서 탐방객들이 그림 같은 해안을 배경으로 걷고 있다. 남해군 제공
다랭이지겟길은 모두 16㎞로 5시간가량이 소요된다. 코스는 평산1리 평산항에서-유구마을 철쭉군락지-사촌해수욕장-선구마을 몽돌해안-항촌마을 조약돌 해안-항촌전망대-가천 다랭이마을-다랭이마을 앞 정자까지다.

■잔잔한 바다 바라보며 걷는 재미

   
가천 다랭이마을을 종점으로 하는 다랭이지겟길은 남면 평산1리마을의 평산항 선착장 옆 ‘바래길 작은 미술관’에서 시작된다. 옛 평산보건진료소가 이용객이 줄어들어 제구실을 못하고 폐쇄되자 남해군은 이곳을 문화공간으로 바꾸기로 하고 작은 미술관으로 개조했다.

모두 73㎡의 작은 건물에 있는 5개의 방을 전시실로 개조하고 미술작품을 전시하거나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간으로 바꿨다. 몸을 치료하던 의료시설이 마음을 치료하는 문화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마을을 벗어날 때까지 300여m의 농로를 걷다 보면 짙푸른 바다에 목섬과 죽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떠 있는 항구를 만나게 돼 초입부터 경치에 압도돼버린다. 개발이 더딘 탓에 해안선이 그대로 살아있다.

평산1리에서 평산2리를 거쳐 유구마을까지의 2㎞가량은 바닷가를 따라 갯바위를 깎아가며 만든 길이라, 길도 길이려니와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재미가 그만이다.

길 오른쪽으로 펼쳐진 잔잔한 바다와 그림을 그리듯이 떠 있는 정치망도 아름다움을 더한다. 유구마을 앞에 있는 세 개의 무인도 주변에는 감성돔과 참돔 농어 등의 대물 낚시터여서 해안에는 낚시꾼들도 제법 많이 눈에 보인다.

유구마을에서부터 사촌해수욕장까지의 1.5㎞ 구간은 검은 몽돌이 깔린 자갈길과 갯바위가 어우러진 길이다. 자갈길을 걸으면 발밑에서 몽돌 구르는 소리가 ‘자갈 자갈’하는 느낌이다. 이 길은 남해군이 자랑하는 바래길의 진수를 보여주는 구간이다. 자갈길을 지나 갯바위로 덮힌 사촌해수욕장 입구까지의 해안길을 지나다 보면 톳나물이나 미역, 고둥, 게 등이 지천이다. 하지만 마을어촌계에서 해삼과 전복을 키우는 양식장이기도 해 함부로 채취하면 곤란하다.

유구마을에서 바다 건너 여수시 쪽으로 해가 기우는 저녁이면 석양이 붉은색 페인트를 쏟아놓은 듯 장관이다. 특히 삼여 뒤쪽으로 여수나 광양을 오가는 대형 화물선이 배경이 된다면 그림은 더더욱 환상적이다. 특히 석양이 시작될 때 묘박지가 있는 ‘소치도’ 주변에서 뱃고동 소리라도 들릴라치면 바래길을 걷는 즐거움보다 귀로 듣는 즐거움이 그만이다.

■맺음·소통의 길

   
항촌마을 갯바위에서 낚시꾼들이 낚시를 하고 있는 모습.
200여 m의 해안이 모래로 덮인 사촌해수욕장은 여름 피서객이 떠난 모래사장에는 갈매기가 날개를 접고 쉬고 있다. 운이 좋으면 중부리도요도 만날 수 있고 겨울에는 청둥오리나 흰뺨검둥오리 등의 철새들을 만날 수도 있다. 사촌 해수욕장에서 바다 반대쪽 야산으로 이어진 1㎞가량의 농로는 10여 층의 작은 다랭이논이 펼쳐진 사이로 호젓하게 걷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항촌마을에서 가천 다랭이마을 입구까지의 2㎞가량은 별도의 인도가 없다. 해안가는 50도 이상의 가파른 급경사지라 오솔길을 개발할 수 없어서다. 이 때문에 걷는 길을 인도도 없는 군도를 이용하도록 연결해 교통사고 위험이 높은 편이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이 코스에서 오른쪽으로 전남 여수시와 광양항을 오가는 크고 작은 선박들을 조망할 수 있어 색다른 볼거리가 있다.

다랭이지겟길의 끝인 가천 다랭이마을은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우리 선조들의 억척스러운 삶을 느낄 수 있다. 이동로가 충분하지 않은 논밭이나 바다를 다니면서 물건을 나르기 위해 지고 다녔을 지게길이 논밭두렁으로 펼쳐져 있다. 암수바위가 있는 마을 앞 계곡에서 400여m를 더 걸어가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정자가 있는데 이곳이 1코스인 다랭이지겟길이 끝나는 곳이자, 2코스인 앵강다숲길의 시작이다.

다랭이지겟길을 걷기 위해서는 남면 평산마을까지 승용차를 타고 와 주차하고 가천 다랭이마을까지 걸어왔다면 여기에서 승용차를 주차해 둔 평산마을 출발지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하루 9회 운행되는 군내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남해군 걷기동호회 이곤 씨는 “남해의 해안가 길은 대부분 해안선을 따라 경계를 서던 군인과 전투경찰대원들이 구축해 놓은 것을 새롭게 손본 것이고 농로는 새참을 나르고 마을 소식을 나누며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소통과 맺음의 길이었다”며 “선조들이 지게를 지고 다녔다 하여 붙여진 다랭이지겟길이 따뜻한 남해의 명물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완용 기자 wyle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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