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인들이 즐겨찾는 동양의 나폴리 응아빨리
- 즐비한 고급 리조트 옆 보석같은 장소가 있다
- 식민치하 어둠의 역사, 군사독재 반란의 몸짓
- 저항예술로 승화시킨 모래밭의 미술관들
- 지역민의 삶과 체취가 넉넉하게 묻어나온다
동남아 여행의 출발지인 방콕은 언제나 그렇듯 잠시 머물렀던 방콕대학교의 동료 교수들과 함께한‘술 익는’ 밤의 도시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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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웨이공항에서 응아빨리 중심지로 10㎞를 걸어가는 도중 만난 미얀마의 풍경. |
‘소맥(소주와 맥주)’의 순배가 이어지는 동안 펠레 교수(축구 선수 펠레 Pele보다도 더 축구를 좋아한다)가 어디를 가느냐고 묻기에 미얀마라고 답하자 여권번호와 영문 이름을 물으면서 갑자기 전화를 한다. 한 시간쯤 지나자 양곤(Yangon)에서 만들레이(Mandalay), 바간(Bagan), 인레(Inle), 응아빨리(Ngapali)를 거쳐서 다시 양곤(Yangon)으로 가는 순환 항공권이 착하고 착한 가격으로 배달되면서 입국하여 일정을 조정하라는 주문도 곁들여진다.
■응아빨리를 찾아간 건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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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림 아트 갤러리 간판. |
양곤을 중심으로 북쪽 지역을 둘러보고 남부 해변으로 갈 계획이 없진 않았지만, 영국 식민지 시대에 동양의 나폴리로 불렀던 응아빨리로 간다는 행운이 찾아왔다.
탄웨이 공항(Thandwe Airport)에서 해변까지는, 미리 숙소를 예약하지 않으면 걸어서 갈 수밖에 없다. 대중교통이나 택시는 물론 픽업트럭을 개조해서 만든 미니버스나 ‘라인 카(Line Car)’, 앞뒤로 두 명이 탈 수 있도록 자전거를 개조한 트리샤(Trishaw), 우마차 등도 없다.
그런데 걷다 보면 지역의 풍경, 지역민의 생활이 해변까지 이어지는 10km가 넘는 거리 곳곳에 묻어난다.
지역민의 일상과 그 삶의 체취는, 해변에 즐비한 고급 호텔과 리조트가 아니라 게스트하우스와 그 인근 미술관에서 넉넉하게 배어난다. 응아빨리에서 만나는 4개의 미술관은 미얀마가 영국 식민지이던 시대에는 고급 관리와 그 추종 세력이 살았다. 현재에는 유럽인들의 휴양처인 해변을 바라보면서 그 시절, 어둠의 역사를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미술관 주인장이 안내해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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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안 베이 아트 갤러리의 미술 작품. |
먼저, 버마갈대를 엮어 지붕과 삼면을 설치한 임시 공간 앞에 모래밭의 팻말처럼 놓인 ‘꿈 미술관(Dream Art Gallery)’이라는 간판이 따가운 여름 햇살을 피하고 잠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해변 휴양지의 문화공간에서 휴식을 함께 할 수 있겠다는 묘한 어울림이 미술관을 찾게 만들었다.
전시관, 작업실, 해변, 숲이 어우러진 응아빨리 미술관(Ngapali art gallery)에 들어서자 그림 그리기에 몰두한 화가들의 열정에 발걸음이 멈추어진다. 손짓으로 전시관에 들어오게 한 화가와 함께 그림을 둘러보고는 전통 차 러펫예(Lapietye, 발효된 녹차나 홍차를 진하게 끓여서 연유를 탄 차)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그림들은 해변 기슭에서 달 오름을 바라보고 있는 여성, 서로 껴안고 있는 연인, 남성과 여성의 은밀한 장면 등등으로 되어 있다.
그 화가가 미술관(2005년 개관)의 설립자인 산 나잉(San Naing, 1972년 생)임을, 2017년 여름 해운대 한 화랑에서 열린 ‘제66회 미술동인 혁, 정기전 겸 국제교류전’에서 알았다. 이후 이력을 ‘미얀마 타임즈 2011년 6월 10일 자에서 검색해 보고 나서 군사독재의 탄압, 종교 분쟁과 종파 간의 폭력을 겪고 그가 왜 “내가 마음의 평화를 가질 때, 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라고 말했는지, 왜 추상화만을 그리는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반독재의 투지, 저항의 몸짓 예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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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아빨리의 갤러리에서 그림 그리기에 몰두한 화가. |
그의 미술관을 나오자마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인틴 린 미술관(Htein Lin Art Gallery)였다.
화가 산 나잉과 달리 인틴 린(1966년 생)의 미술관은 그림 전시관이라기보다는 저항 예술을 실천한 현장에 가깝다. 전시관에는 그가 참여한 연극과 영화, 실내 공연과 거리 공연, 회화와 설치 미술 등 작품들이 가득 차 있다.
그 작품들은 그가 군사독재 시절에 학생운동에 참여하고 반란군으로 저항하다가 7년간의 징역살이(1998년~2004년)를 하고, 설치미술과 행위예술로, 연극과 영화 활동으로 폭을 넓혀가면서 감행한 예술적 실천을 담고 있다.
그의 미술관을 나와서 해변으로 다시 내려오면 만나는 것은 미얀마 젊은 화가들의 공동 전시장인 시안 베이 미술관(Cyan bay Art gallery)이다.
이 미술관은 9월에서 다음 해 4월까지만 문을 열고 6월에서 8월까지는 화가들이 작업 기간에 들어가면서 문을 닫는다. 참여하고 있는 화가들로는 훌라 폰 아웅(Hla Phone Aung, 1966년생), 모에(S Moe Z 1977년생), 탄 캬우(Than Kyaw Htay, 1978년생) 등이었다.
■그 그림의 기억은 왜 그리 강렬할까
전시관의 그림들은 참여 화가만큼이나 다양했다. 작품의 장면들은 스님의 기도, 명상, 설법을, 산사와 시골 풍경, 강변 수상 가옥, 곧 무너질 듯 허물어 내린 가옥들, 길거리 난전에서 물건을 파는 노파들 등을 담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과 생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질식할 것 같은 모습 등이 전시관에서 함께 어우러져 있다.
마지막 여정으로 찾아가서 미술관을 둘러본 해변은 휴식처가 아니라 피서지의 문화공간으로 다가왔다. 아니 문화공간이 아니라 독재 권력에 저항한 역사의 공간으로 다가섰다. 귀국한 뒤 한동안 잊고 지내다 대학원 수업의 일환으로 해운대 미술관 투어를 하면서 본 그림들보다 그때 응아빨리에서 본 그림들이 내 가슴에는 더 강렬하게 남아 있다.
민병욱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 bmw@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