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성항법시스템 갈릴레오 활용
- 사고 위치 1㎝ 단위까지 확인
- 내년 4월부터 신차에 의무 장착
- 체코 시범사업 통해 정확도 높여
- 안전 최우선… 사생활 침해 논란
- 국내서도 표준 제정·법제화 검토
2018년 4월 어느 날 동유럽 체코 프라하. 홀로 차를 몰고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으로 향하던 콜러(가명) 씨가 교외의 한 도로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갑자기 나타난 산양을 피하려다 갓길 가로수를 들이받은 것이다. 그는 머리와 다리를 다쳐 서서히 정신을 잃어갔다. 인적이 드문 새벽 시간이어서 콜러 씨 대신 신고를 해 줄 사람도 없다. 다행히 그의 차에는 ‘이콜(eCall·emergency Call)’이라는 긴급구난체계 서비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충돌 즉시 이콜은 위성으로 사고 위치를 확인해 프라하에 있는 응급대응센터에 구조를 요청했다. 동시에 사고 정보가 실시간 응급대응센터 화면에 띄워졌다. 곧 구급차와 경찰차가 사고 현장에서 콜러 씨를 구조했다. 유럽에선 6개월 뒤 이런 일이 현실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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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 차량이 보내는 긴급 신호를 처리하는 응급대응센터(PSAP)에서 직원들이 근무하는 모습. 박장군 기자 |
■EU “내년 4월부터 이콜 의무화”
내년 4월 1일부터 유럽 28개국에서 출시되는 승용차와 소형 화물용 밴은 이콜 시스템을 의무적으로 갖춰야 한다. 유럽연합(EU) 의회는 2015년 4월 이런 내용을 담은 규정을 통과시켰다. 사고 차량이 보내는 긴급 신호를 처리할 응급대응센터인 ‘PSAP(Public Safety Answering Points)’ 같은 인프라 구축도 강제 사항이다. EU 회원국 모두가 다음 달 1일까지 인프라를 갖추고 내년 4월 이콜 시스템을 시행해야 한다.
EU는 2003년부터 이콜 도입을 논의해왔다. 2011년부터 4년간 모두 610만 유로(82억4000여만 원)를 투입해 시범사업을 벌여 관련 차량 시스템과 인프라를 구축해왔다. 시범사업에는 체코, 독일 등 15개국이 참여했다.
■운전자 대신 구조 요청하는 이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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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3일 방문한 유럽연합 위성항법청(GSA)의 본사가 있는 체코 프라하의 건물 외부. GSA는 도로·항공·IT 등 관련 산업에 위성항법시스템 적용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
이콜은 도로를 주행하던 차가 사고를 당했을때 운전자 대신 가까운 112 응급대응센터에 자동 구조신호를 보내는 기술이다. 차량에 장착된 심카드(sim카드)는 사고 위치와 차량 종류·진행 방향과 같은 사고 내용을 송신해 응급대응센터 스크린에 일목요연하게 띄워 준다.
EU에 따르면 독자적인 위성항법시스템인 갈릴레오는 사고 위치를 1㎝ 단위까지 확인할 수 있다. EU는 현재 14기의 위성을 2020년까지 모두 30기까지 늘려 이콜의 정확성을 더 높일 계획이다. 여기에 응급센터 직원과 운전자 간 음성 대화도 자동으로 이뤄져 상황에 맞는 실시간 조치가 가능할 전망이다. 러시아의 이콜인 ‘ERA-GLONASS’와의 협력 덕분에 유럽내 운전자들은 러시아에서도 이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기대효과와 논란
이콜이 의무화된 가장 큰 이유는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다. EU에 따르면 2014년 유럽연합 28개국의 자동차사고 사망자는 2만5700여 명에 이른다. 이콜을 통해 매년 2500명씩 사망자를 줄여나가 2020년까지 1만5000명 수준으로 사망자 수를 낮추는 게 EU의 목표다.
골든 타임 단축 효과도 예상된다. 신고가 빨라지면서 교외는 50%, 도심은 40%가량 구조 대응 시간이 더 빨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야간 교외에서 일어나는 사고 때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교통체증 완화, 배기가스 배출 등 환경피해 감소, 납세자 수 유지는 매년 1600억 원의 사회적 비용을 200억 원 수준으로 떨어뜨릴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 위성항법청 GSA(European Global Navigation Satellite Systems Agency·갈리레오 위성을 운영하고 도로·항공·IT 등 관련 산업에 위성항법시스템 적용을 연구하는 기관)의 이콜 담당자 알베르토 페르난데즈 씨는 “유럽연합은 오직 안전만 보고 이콜을 추진한다. 도로에서 자행되는 대학살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위치 추적·운전 습관 감시·개인정보 노출과 같은 사생활 침해 논란은 여전하다. 특히 사고 때 응급센터에 전송되는 정보가 제3자에게 유출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EU는 이런 가능성을 일축했다. 사고 때만 이콜이 활성화되고, 전송 정보도 구조대응에 필요한 최소 수준만 포함한다는 것이다. 이콜 책임자 알베르토 페르난데즈 씨는 “유럽은 개인정보 존중이 엄격한 곳이다. 긴급 대응에만 정보를 활용해 오용의 소지는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콜 선도국 체코, 우리나라는?
체코는 EU 내에서 이콜을 가장 먼저 준비한 나라다. 2011년에 9개국으로 시작한 1차 시범사업부터 참여해 ‘신차 이콜 의무화’가 결정될 당시 체코는 이미 PSAP 등 관련 인프라를 구축한 상태였다. 기존 14개의 긴급구조센터가 PSAP 역할을 맡았고, 관련 부처 간의 유연한 협업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체코 정부는 내년 4월 의무화 전까지 교외 지역을 중심으로 이콜 작동 테스트를 꾸준히 진행해 정확도를 더욱 높일 계획이다. 이콜 응급구조센터 총 책임자 얀 우르바넥 씨는 “유럽 IT 강국 중 하나인 체코는 이콜 시범사업에 최적화된 곳”이라며 “체코 정부는 돈·정치에 상관없이 시민의 안전을 위해 이콜 도입을 선도해나간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토교통부가 공동으로 이콜 표준을 만들고 법제화를 검토 중이다. 지난해 8월 정부 부처·자동차 업계·연구자들이 모여 이콜 포럼도 창립했다. 이콜 포럼에 따르면 이르면 10월 국내 이콜 도입 로드맵이 공개될 예정이다.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양상운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도 정부가 안전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부처 간 이콜 연구개발을 공동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체코=박장군 기자 genera@kookje.co.kr
※ 공동기획: 부산광역시, 부산교통공사, 부산지방경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