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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마지막 전력질주 <2-4> 활기찬 자활공동체- 위기 뒤 더 단단해진 의지

외부시선 두려움 떨치고 ‘할머니 조합’ 첫발 내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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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립총회 날 우려한 일 터졌다
- 사회적 편견의 벽 앞에서
- 어르신들 결행 의지 또 동요

- “내일 일도 모를 내가 뭘 하노”
- “주변서 노인 이용해 묵는다고…”

- 새로운 도전 멈칫하려는 순간
- 김순한 할머니가 소리친다
- “이기 다 우리 위한 일이라꼬
- 어불려 살게끔 돕는 복지인기라”

- 그 외침에 상황이 급반전됐다
- 곳곳서 “내 뭐든 도울꾸마”
- 이사도 뽑고 정관승인도 끝내
- 10통 협동조합이 탄생했다

요즘 말로, 조금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얘기를 먼저 꺼내야겠다. 부산 부산진구 개금3동 8통, 10통 어르신들이 어쩌다 한 번씩 나누는 대화다. 그동안 차마 기사에 담지 못했다.
   
지난 9일 부산 부산진구 개금3동 10통 새마을경로당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공동기획팀이 전력질주협동조합 창립총회를 마친 뒤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영록 기자 kiyuro@kookje.co.kr
#1 “니하고 내하고는 나라의 ‘좀’이다. 우리가 세금 내는 자식이 있길 하나, 그렇다고 돈을 벌길 하나. 남의 귀한 자식들이 힘들게 내는 세금으로 우리가 먹고사는 거다. 우리 같은 노인들이 빨리 사라져야 나라도 부자가 된다.”

#2 “지하철 적자 난다고 맨날 노인들이 욕먹는다 아니가. 근데 그게 틀린 말이 아니야. 할 일 없는 노인들이 우르르 지하철을 타서, 사람이 그래 붐비는데 자리 다 차지하고 앉아 있거든. 정 타려거든 출퇴근 시간 피해서 젊은 사람들 안 바쁠 때 타든지.” 또 한 명의 어르신이 거든다. “요새 보면 지하철 타는 노인들이 일부러 가방 들고 앉아 있는 젊은이들 앞에 딱 붙어 선다. 자리 양보해 달라는 거지. 그러면 안 돼. 젊은 사람들이 대번에 욕해.”

#3 “(소풍) 안 간다. 내가 (잘 걷지도 못하는데) 이래 가지고 구르마(보행기) 끌고 나가 봐라. 당장 보는 사람들이 욕해. ‘자기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할매가 누구 고생시킨다고 이런 데 나왔노’ 당장에 이래 얘기한다고. 나도 염치가 있는 사람이야. 안 가.”

어르신들의 얘기를 가만히 들어 보면 “자신 없다” 또는 “못 한다”고 말할 때 항상 그 이유는 ‘외부의 시선’에 있다. 남들이, 젊은 사람들이 안 좋게 볼까 봐 오래 사는 것이,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것이, 자유롭게 외출하는 것이 두렵다. 외부의 시선, 세상이 만들어 놓은 편견이 어르신들의 의지를 꺾는다.

■잠깐의 머뭇거림

   
복지법인 우리마을 김영민 활동가가 경로당에 전력질주협동조합 창립총회 공고문을 붙이고 있다.
개금3동 8통, 10통 어르신들의 ‘어울려 살아갈 준비’는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집과 마을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만났고, 해발 1100m 산꼭대기에 올라 성취감도 맛봤다. 못 할 게 없었던 젊은 시절, 그때의 꿈도 다시 꾸기 시작했다. 자식 같은 콩나물을 키우며 자활 의지를 다졌고, 직접 장 봐서 만든 반찬을 나눠 먹으며 ‘활기찬 자활공동체’의 소중함도 느꼈다.

그러나 지난 9일 자활공동체의 기초가 될 협동조합 창립총회를 앞두고 그동안 걱정했던, 경계했던 일이 벌어졌다. 이 역시 외부의 시선 탓이다.

창립총회 직전 어르신들이 10통 새마을경로당에 모여 자유롭게 의견을 나눴다. 협동조합 설립에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던 어르신 몇 명의 마음이 갑자기 흔들렸다. ‘생애 마지막 전력질주’ 보도를 통해 협동조합 구성이 임박했음이 알려지자, 여기저기서 어르신들에게 우려의 말을 전했다고 한다.

“내가 나이가 적나.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 말이야. 그런데 내가 무슨 협동조합을 하고 반찬을 만들어 팔고 하겠노. 주변에서 자꾸 나한테 그래 말한다. 걱정이 되는지 전화도 온다. 너희(공동기획팀)가 다 알아서 하고, 나는 뒤에서 도와만 주면 안 되겠나.”

협동조합에서 진행할 사업이 제대로 굴러갈지에 대한 고민도 나온다. “할매들 반찬을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겠나. 어찌어찌 파는 것도 한두 번이지. 다들 안 될 거라 하더라.”

임원 명부를 작성할 때 필요한 주민등록등본 인감증명 등의 서류도 어르신들에겐 적잖은 부담이다. “너희가 우리한테 사기 칠 사람이 아니란 건 알지만, 주변에선 그래 생각 안 한다. ‘노인들 꾀어서 다른 데 이용해 먹으려고 그런 거 아니냐. 조심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어르신들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젊은 사람들이 마을에 이리 오랫동안 들어와서 우리랑 함께해주니 하루하루 꿈꾸는 것 같기도 하고 좋은데… 솔직히 걱정된다.”

마지막 전력질주를 위해 여태껏 즐겁고 유쾌하게 잘 달려왔던 어르신들이 낯선 도전 앞에서 주춤한다. 창립총회에 참석한 공동기획팀의 마음도 편치 않다. ‘총회를 뒤로 미루고 잠시 쉬었다 가야 하나’. 자활공동체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어르신들이다. 공동기획팀은 모든 걸 어르신들의 의지에 맡기기로 했다.

■다시, 새로운 다짐

바로 그때, ‘만물박사’로 불리는 김순한(82) 할머니가 나섰다. “이게(협동조합) 다른 데서도 하는 거더라. 이 사람들(공동기획팀)이 하자는 것도 자기들 덕 보려는 게 아니고 사회복지의 일종이다. 다 우리 노인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다.”

어르신들은 물론 공동기획팀도 깜짝 놀라서 김 할머니를 쳐다본다. 김 할머니가 큰 소리로 말을 잇는다. “같이 어불려(어울려) 살자고 하는 거다. 잘 되면 배당금도 받고. 요새 사회복지가 무조건 돈 내라, 도와 달라 이러는 게 아니다. 우리가 콩나물 키우고, 반찬도 만들고 해서 보람도 찾고… 다른 건 몰라도 파김치는 내가 해줄게. 파김치는 (먹기) 이틀 전에 담가야 한다. 파는 굵은 거 사면 안 돼.”
김 할머니가 분위기를 완전히 전환한다. “(주민등록등본 인감증명) 떼 주는 건 내가 떼 줄게. 내가 (가진 게) 뭐 있노. 뭐 뺏어 가려고 해도 가져갈 거도 없다. 내가 다리가 불편하지만, 앉아서 하는 건 다 할게.”

“저도 가진 건 없어예.” 평소 취재팀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써주는 김만연(84) 할머니도 쑥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김순한 할머니의 말에 동의한다. 지켜보던 박영수(84) 할머니도 한마디 한다. “그럼 서서 하는 건 내가 할게.”

지난달 콩나물 시범 재배 때 아깝게 ‘실패’ 판정을 받은 황원선(80) 할머니도 의욕을 보인다. “나는 콩나물 꼭 제대로 다시 키워보고 싶어. 앞으로 반찬 하려면 양념이 필요한데, 물엿은 슈퍼마켓 가지 말고 시장에 가면 기름집에 쌀엿 뭉쳐놓은 게 있어. 그걸 사야 해. 부전시장 가면 싸고 많이 줘.”

어르신들이 잠시 망설였던, 흔들렸던 마음을 다잡는다. 자발적인 의지로 외부의 시선과 편견을 이겨냈다. 창립총회가 정식으로 시작되자 어르신들은 서로 협동하고 의논해 이사장과 이사 등 임원도 뽑았다. 공동기획팀의 안내에 따라 정관 승인 등의 절차도 모두 끝냈다. 그제야 어르신들 눈에 창립총회 현수막이 보이고, 농담할 여유가 생긴다. “전력질주가 뭐고, 전기로 달린다는 뜻이제?”

현수막 앞에 둘러앉아 파이팅을 외치며 더 단단해진 의지를 확인한다. 기념 촬영을 할 때 경로당 창밖으로 가뭄에 마른 땅을 적시는 반가운 비가 쏟아진다. 어르신들이 말한다. “비가 시원하게 내린다. 좋은 날로 참 잘 잡았네. 우리 일도 잘 풀리겠다.”

이날 창립총회엔 10통 발기인 7명을 포함해 어르신 12명이 모였다. 협동조합엔 생산자 조합원인 어르신들 외에도 사회복지연대와 복지법인 우리마을 활동가, 국민연금공단 부산지역본부 직원들이 각각 자원봉사자 조합원, 후원자 조합원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이번에 창립총회를 마친 개금3동 10통뿐 아니라 8통에서도 조만간 또 하나의 협동조합이 탄생한다. 조합명 전력질주. 드디어 ‘전력질주협동조합’이 신호탄을 쐈다.

복지법인 우리마을 김영민 활동가는 “믿을 건 어르신들의 의지밖에 없다. 협동조합, 어울려 사는 자활공동체, 나아가 ‘대안가족’의 성공 여부도 어르신들의 의지에 달렸다. 이런 사실을 또 한 번 실감한 창립총회였다”고 말했다.

권혁범 김영록 기자 pearl@kookje.co.kr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공동 기획=사회복지연대, 복지법인 우리마을, 국민연금공단 부산지역본부, 녹색도시부산21추진협의회 ▷후원=개금3동주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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