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심 속 허파 율하천 양 옆 조성
- 자연 벗삼아 거닐면 마음 편안
- 카페 줄지어 늘어서 명소 등극
- 영감 얻어가는 예술인들 집결지

경남 김해시의 신도시인 장유 3동에 자리 잡은 율하천은 도심 속 '허파'로 불린다. 신안마을에서 조만강 합류부까지 전체 5.5㎞에 달하는 이 하천은 도심을 관통하는 하천으로는 드물게 옛 모습 그대로 갈지(之)로 흐른다.

	경남 김해시 장유동 덕정마을발전협의회 정병섭(오른쪽) 통장과 한글서예가 김종란 작가가 율하천 둘레길을 걷고 있다. 박동필 기자

둘레길은 신안마을~신리 1교 구간은 폭 20m, 3.5㎞ 하천 양옆(폭 2.5m)으로 올망졸망하게 조성돼 있다. 율하천은 10여 년 전 신도시 조성 당시부터 원시성을 최대한 살렸다. 율하천이 생태하천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하류 신리1교~상류 3.5㎞ 구간에는 카페들이 줄지어 들어서고 있다. 바로 최근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는 율하천 카페거리다. 여기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이 주변에 둥지를 틀고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인촌으로도 변신 중이다.

■ 한 폭의 수채화로 떠오르다

	율하천 전경

비가 내린 지난 11일 늦은 오후 신리1교에서 상류 쪽으로 향하니 형형색색의 우산을 쓴 중고교생들이 곁을 지나간다. 졸졸 쉼 없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시냇물 소리를 벗 삼아 걷는 이들의 모습은 흡사 물아일체(物我一體),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했다. 동행한 김종란 작가는 "5년 전 이곳으로 이사 와서 작품활동 중 틈틈이 찾는다"며 "때론 사색하며 또 때론 멍하니 냇물을 바라보며 거닐면 힐링도 되고 창의적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내 마음의 안식처 같은 곳"이라며 예찬론을 늘어놓는다.

잠시 멈춰선 길가에 몸을 배배 틀며 자라는 '타래란'에 눈길이 갔다. 이름 모를 곳에서 꽃씨로 날아와 보금자리를 튼 뒤 율하천의 일부가 된 모습에서 자연의 경이를 느꼈다. 하천을 가로지르는 미니 교량인 정든교와 만남교를 차례로 지날 무렵, 심술궂은 하늘은 다시 비를 흩뿌렸다. 이윽고 길은 크게 오른쪽으로 활처럼 휘며 탐방객을 인도한다. 둘레길 주변 카페촌에서 흘러나오는 진한 커피 향이 율하천을 휘감아 고즈넉한 분위기를 더욱 깊게 했다.

■ 유림의 흔적 월봉서원

춘화교 밑을 지나 물살이 거세지는 상류 쪽으로 접어들자 저만치 검은 구름모자를 쓴 굴암산이 인자한 자태로 반긴다. 몇 걸음을 더 옮기자 나뭇가지 위에 매달린 대나무 가지에 종이배 형상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지난 4월 장유3동 덕정마을발전협의회에서 축제를 벌인 곳이다. 덕정마을은 이곳의 옛 지명이다. 당시 전국 각처에서 모인 주민들을 주도하는 주민협의회가 '제1회 덕정마을 축제'를 개최하고 예술가, 문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체험교실을 열면서 호평을 받았다. 율하천 곳곳에는 아이들이 보낸 색색의 종이배가 떠다니고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든 무대 위에서는 색소폰의 선율이 하천을 맴돌았다. 축제를 주도한 마을협의회 정병섭 통장은 "나홀로족인 도시민들이 서로 감성을 부대끼며 인성을 회복하자는 취지에서 축제를 열었다"며 "앞으로 율하천 주변에서 차별화되는 체험, 볼거리를 갖춘 축제를 열 방침"이라고 말했다.

키 큰 녹색의 무궁화 숲길을 지나자 팔판마을 아파트가 율하천 언덕배기에 서 있다. 팔판마을은 이곳에서 내려오는 전설로 예로부터 판서(判書.정승) 8명이 난다는 말에서 유래됐다. 팔판마을 너머에는 2007년 8월 타계한 유학자 화재 이우섭 선생이 머물던 월봉서원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김해지역 유림의 정신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지금도 제향 의식과 전통적 서당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 예술의 향기 가득

신안마을 아래에서 미니 교량인 신안교를 지나 반대편으로 건너가자 물소리가 더 크게 귓전을 때렸다. 둘레길은 폭 2.5m에서 1.5m로 좁아졌으며 길 오른쪽으로는 대나무 군락지가 500m 정도 줄지어 있다.

바람을 타고 일렁이는 녹색의 매실나무밭을 지나자 이파리마다 영롱한 이슬을 매단 들국화가 하얀 도화지 빛으로 언덕을 물들이고 있다. 무더위를 가르며 하늘을 찌르는 매미 소리가 율하천 공기를 뒤흔들고 이윽고 도착한 유적지 공원에는 아담한 야외무대가 나타난다. 매주 금, 토, 일요일만 되면 이곳에서는 학생이나 무용팀 등이 길거리공연을 한다.

또한 4, 5년 전부터 이곳에는 문인이나 화가, 서예인 등이 집결하기 시작해 현재 20여 명에 달한다. 5년 전 이곳에 둥지를 튼 한국화 화가인 이현정 작가는 "사시사철 율하천을 걸으며 문득 행복감에 빠질 때가 많다"며 "깨끗하고 맑은 공기와 둘레길, 카페거리 이런 것들이 예술인들을 빠져들게 하는 것 같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어둠이 내리는 저녁이 되면 율하천 카페거리에는 약속이나 한 듯 하나둘 릴레이로 불을 밝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든다.

박동필 기자 fee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