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인 신분증·사업등록증 보여줘
- 송장번호로 구매자 안심시켜
- 전국 1000명 피해액 1억 육박

지난 1일 부산에 사는 직장인 A 씨는 인터넷 중고거래 카페에서 저렴한 가격의 빨래건조기를 검색했다. 가격은 70만 원으로 새 제품보다 30만 원 이상 저렴했다. A 씨는 '거리가 멀어 갈 시간이 없다'는 판매자의 말에 속아 돈을 먼저 보냈다. 판매자는 신분증과 사업자등록증까지 보여주며 A 씨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판매자는 돈을 받자마자 거짓말처럼 연락을 끊었다. A 씨의 돈도 증발했다.

중고용품 전문 사기조직의 일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피해자를 조롱하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화면. 피해자 제공

중고물품 카페에서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를 도용한 전문 사기조직이 활개 치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돼 부산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전국적으로 피해자가 1000명 이상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사기 피해 정보공유 사이트인 '더 치트'에 올라온 피해액만 1억 원에 육박했다.

임산부인 B 씨도 A 씨를 속인 판매자에게 중고 로봇청소기 대금 40만 원을 보냈다가 물건을 받지 못했다. B 씨는 "83년생에 이름이 '이○○'인 신분증을 보고 믿었다.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도용해 범행에 이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A·B 씨와 유사한 피해 신고는 부산 강서·영도·부산진경찰서뿐 아니라 서울·대전·강원도의 경찰에서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사기조직은 카페 상품 판매 게시글에 카카오톡 아이디를 남겨 메신저로 대화를 유도한다. 또 다른 사람의 명의를 도용한 사업자등록증과 이전에 사용됐던 실제 송장 번호까지 보내 구매자들을 안심시킨다.

뒤늦게 피해 사실을 안 구매자들은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조언을 주고받고 있지만 경찰 신고 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 추가 피해를 볼까 두려워하는 피해자도 있다. 판매자에게 자신의 전화번호와 주소가 노출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기 조직은 환불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에게 폭언과 욕설을 하거나 "사기를 당한 기분이 어떠냐" "더 힘들게 치킨 배달시켜줄게. 결제 잘해라"고 조롱하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피해자 C 씨는 "이미 개인정보가 공개된 탓에 가해자들로부터 신상털기라도 당할까 봐 두렵다"며 "사업자등록증을 도용당한 사업자들은 또 다른 피해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피해자는 "돈을 다시 돌려받기 어렵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피해는 막아야 한다"며 "피해자들이 개인적으로 신고를 하다 보니 경찰이 심각성을 못 느끼는 것 같다. 지역별로 피해 사례를 모아 다시 경찰을 찾아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김봉기 기자 superch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