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얀 강철로 만든 카프카의 두상
- 철판의 움직임에 따라 '변신'하는 카프카
- 그 옛날의 문학청년이 카프카의 도시에 왔다
※ 프란츠 카프카(1883~1924)
유대계 독일인 작가. 인간 운명의 부조리와 존재의 불안을 통찰해 현대인의 실존적 체험을 극한으로 표현한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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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하 콰다리오 쇼핑센터 입구에 설치한 '카프카의 움직이는 두상'. |
체코 프라하로 여행을 가고자 작정한 것은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년 7월 3일~1924년 6월 3일)에 관한 어떤 기억을 확인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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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츠 카프카 |
그 기억은 1976년 5월 18일 '개교 30주년 기념 부대 문학의 밤'(부대신문, 1976년 5월 24일) 모노드라마 '학술원에 보내는 보고서(1917년 창작)' 공연으로 거슬러 간다. 그 공연이 초연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은 1977년 8월 20일 시작된 추송웅(1941년~1985년)의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이었다. 그 기억은 공연의 출발이 배우 추송웅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라고 자부하면서 부산대 장전 캠퍼스 대학극장 앞 솔밭에서 밤새 통음한 문학청년의 자만심으로 감싸여 있었다.
('빨간 피터의 고백'은 카프카의 소설 '학술원에 보내는 보고서'를 각색한 연극이니 '개교 30주년 기념 부대 문학의 밤' 공연이 더 앞섰다는 뜻이다.)
■시시각각 변신하는 카프카의 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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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하 황금소로 22호집. 현재 카프카박물관으로 쓰고 있다. |
그 되살아난 기억을 소중히 간직한 채, 이 여정을 '카프카의 예술적 초상을 찾아서'라고 스스로 정했다. 프라하에서 처음 만난 것은 신구 시가지의 경계지역에 있는 콰다리오 쇼핑센터 입구에 하얀 강철로 된 '카프카의 움직이는 두상'이다. 제작자는 데이비드 체르니(1967년 12월 15일 프라하 태생), 제작 연도는 2014년이다.
두상은 서로 달리 움직이는 하얀 강철판 42개를 11m 높이로 쌓아서 그 판들이 정렬하는 위치에 따라 그의 얼굴로 형상화되며 결코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시시각각 변화한다. 그는 '변신 Die Verwandlung'(1912년 창작)에서 사람이 벌레로, '학술원에 보내는 보고서'에서 원숭이가 사람으로 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두상'은 시시각각 움직이면서 얼굴이 되는 순간의 위치와 그 시선의 방향이 변하는 것을 보여준다.
두상을 제작하면서 체르니는 몽상의 길로 빠져들면서 스스로 마음앓이를 하는 카프카의 성격을 표현했다고 한다.
■홀로 지냈던 카프카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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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프카의 작품 원본을 소장한 카프카박물관 전경. |
그의 마음앓이는 무엇일까? 도시를 가로지르는 블타바 강 건너 프라하 성안 황금소로 22호집에서 그는 2년 동안(1916년 11월~1917년 5월) 살았다. 17세기 무렵 연금술사가 살았던 골목, 황금소로의 집에서 그는 첫 연인 '펠리체에게 보낸 편지 Briefe an Felice'(1912년~1917년)에서 "방 안에 단 혼자 있다는 것은 삶의 전제조건인 것 같습니다. 혼자 집 안에 있다는 것은 - 엄밀히 말하자면 때때로 혼자 있는 것이지만 - 행복의 전제조건인 것 같습니다."(배동섭 역)라고 말한다.
정말 삶은 홀로 살아가는 것이며 행복인가? 황금소로에서 블타바 강으로 1㎞ 정도 걸어가면 말라 스트라나에 카프카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앞에서 그는, 왼손을 옆구리에 붙이고 오른 손으로 남성을 잡고 작은 물웅덩이에 소변을 보고 있는 쌍둥이의 형상으로 서 있다. 그 동상도 역시 체르니가 2005년에 제작하여 '오줌 누는 동상 peeing statue'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그 동상을 지나 박물관으로 들어가면 전시관 'K의 도시'(정식명칭 : K.프란츠 카프카의 도시와 프라하')를 볼 수 있다.
■그는 어떤 피안을 꿈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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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말' 탄 카프카를 표현한 조각. |
독일계 유대인이던 그는 당시 주류를 이루었던 독일계 지식인으로부터, 유대 민족주의 운동(시온주의) 세력으로부터 배척받는다. 그래서 그는 혼자 있음이 삶과 행복의 전제 조건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홀로 있기에 살아있고 행복하다는 그는 1924년 세 누이동생이 강제수용소에 유배되어 살해된 바로 그때 죽음을 맞이한다. 옛 유대인 공동묘지에 묻혔지만, 그는 첫 소설 작품 '아메리카 Amerika' (혹은 실종자 Der Verschollene, 1912년 창작)의 속 이미지의 동상으로 남아 있다. 그 동상은 2003년 조각가 로나(1957년 4월 27일 프라하 태생)가 첫 소설 '아메리카'의 한 장면, 곧 "선거 캠페인을 하는 동안 거인의 어깨에 목말을 탄 후보자가 거리를 가로질러 간다"를 보고 제작한 것이다.
동상에서 카프카는 두상과 양손이 없는 채 양복 상의를 입고 있는 거인의 어깨 위에 목말을 타고 있다. 소설 '아메리카(실종자)'가 현실에서 고통으로 살아온 주인공이 피안의 세계로 실종된 미완의 작품이듯이, 죽음이라는 피안의 세계로 실종된 그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과 그 대답은 여전히 남겨져 있다.
■선구적인 예술가들을 기리며
카프카의 예술적 초상을 찾아서 둘러본 프라하에서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면서 가끔은 내 스스로에게도 질문할 것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부산으로 되돌아가면 삶과 행복이 무엇인지에 관한 답이 주어질 것이라는 희망도 가질 것이다. 부산의 선구적인 예술가들도 그런 희망에 관해 최소한 힌트라도 줄 것이다. 자기 이름으로 문학관이라도 가지고 있는 소설가들의 작품은 우리에게 소중한 계기를 줄 것이다.
부산에는 문학인의 이름을 딴 문학관으로 요산문학관과 이주홍문학관이 있다. 부산에 몇 되지 않는 선구자의 기념관일지라도 찾아가 보자.
민병욱·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