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 수사 급물살 탈지 주목

서울대병원이 고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를 기존 '병사'에서 '외인사'로 변경했다. 첫 사망진단서가 나온 지난해 9월 이후 9개월 만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백 씨 사망 사건 처리에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검찰이 수사에 속도를 낼지도 관심사다.

	김연수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이 15일 오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열린 고 백남기 농민 사인 변경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 정부 들어서자 사인 변경

서울대병원 김연수 진료부원장은 15일 어린이병원 1층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에 기재된 사인을 변경했다고 밝혔다. 사망자의 사인이 변경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김 부원장은 "오랜 기간 상심이 컸을 유족에게 진심으로 깊은 위로의 말과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며 "오늘 오전에 유족을 직접 만나 설명을 드렸다. 국민 여러분께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점을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외상 후 장기간 치료 중 사망한 환자의 경우 병사나 외인사에 대해 의학적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대한의사협회 사망진단서 작성 지침을 따르는 게 적절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덧붙였다.

서울대병원은 당시 사망진단서를 직접 작성한 신경외과 전공의가 의료윤리위원회의 수정 권고를 받아들여 사인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고 백남기 농민은 2015년 11월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1차 민중 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후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이후 서울대병원에서 317일 투병 끝에 지난 2016년 9월 사망했다.

당시 주치의였던 백선하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고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병사로 기록해 유족으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아왔다. 서울대병원 특별위원회는 사망진단서 작성 과정에 외압이 있었는지를 조사했으나 사망진단서 작성은 '주치의 고유 권한'이라는 이유로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지부진한 검찰 수사 급물살 탈까

검찰은 서울대병원의 새 사망진단서를 확보해 검토하기로 했다. 지난 1년 반 동안 느리게 진행됐다는 평가를 받은 검찰 수사가 사인 수정을 계기로 급물살을 탈지에 관심이 쏠린다. 백 씨 가족은 백 씨가 쓰러지고 난 직후 당시 강신명 경찰청장과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살인미수(예비적 죄명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유족은 현장 살수차 운용 경찰관들이 직사의 위험성을 알고도 백 씨를 조준해 물대포를 쐈으며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이 지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검찰은 경찰의 살수차 운용 지침을 검토하면서 백 씨 사건 당일 '경고 살수→곡사 살수→직사 살수' 운용 지침이 제대로 지켜졌는지와 직사 당시 물대포 강도 설정이 안전 지침을 준수했는지를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는 검찰이 박근혜 정부 시절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백 씨 사망 사건 처리를 미뤄온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했다.

시민단체 '백남기투쟁본부'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명백한 사망 원인을 왜 병사로 기재했는지 규명해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백 씨 주치의였던) 백선하 교수와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은 유족과 국민 앞에 사죄하고 사인 조작 시도의 전말을 고백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서 원장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사적인 만남을 갖고 고 백남기 농민 상태에 관해 청와대에 수시로 보고했던 일들도 철저히 조사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인의 딸인 백도라지(35) 씨는 "이제 외인사로 확정됐으니까 검찰 수사에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