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전처 "재난문자 요청 없어"
- 구청은 대피 반경 1㎞로 늘려
- 악취 나도 원인 몰라 발동동
- "주민센터 방송 안 들려" 분통
- 인근 장애인학교 대피권고 안돼

부산 사상구 덕포동의 한 폐수처리 공장에서 유해가스가 유출됐는데도 국민안전처와 소방·자치단체가 대피 여부를 놓고 혼선을 빚었다. 자연재난과 달리 사회재난의 대피 매뉴얼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재난 대응시스템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해당 공장과 500m 거리 내 장애인 특수학교인 솔학교까지는 대피 권고 소식이 닿지 않았다.

1일 부산 사상구 덕포동의 유해가스 유출 공장 인근에서 부산소방본부 관계자들이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부산소방본부 제공

1일 오전 7시52분 부산 사상구 덕포동의 한 폐수처리 공장에서 노란색 가스가 누출돼 일대를 뒤덮었다. 부산시 보건환경연구원에 따르면 누출된 가스는 생명에 치명적인 위협을 줄 수 있는 이산화질소와 아크로나이트릴 성분이었다. 이날 오후 3시 넘어서까지 악취가 진동했다.

낙동강유역환경청과 부산소방안전본부는 누출량을 측정한 결과 인체에 유해한 정도는 아니라고 봤다. 국민안전처도 대피해야 할 가능성이 있는 사고인데도 재난문자를 발송하지 않았다.

안전처는 "소방이나 자치단체로부터 대피가 필요하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 자연재난은 기준이 명확한데 화재나 폭발·가스누출 같은 사회재난은 현장에서 재난문자 발송 의뢰 요청을 해야 하는데 요청이 없었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사상구는 안전처에 재난문자 발송을 의뢰하지 않은 채 2만여 명의 주민에게 대피를 권유했다.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대피 반경을 1㎞(덕포2동·삼락동)로 늘렸다.

한 60대 주민은 "오전 내내 창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구역질 나는 냄새가 나는데 원인을 몰랐다. 재난문자만 보내줬어도 창문을 닫았을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가스가 유출된 S사 근처 공장에서 일하는 정모(여·47) 씨는 "일하느라 바빠서 대피하라는 이야기도 못 듣고 실내에 계속 머물렀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우리 집은 주민센터랑 멀리 떨어져 있어 방송이 들리지 않았다. 전화로 대피하라는 권유를 받은 사람 역시 소수"라고 지적했다.

덕포동에 사는 이모(30) 씨는 "뉴스를 보고 집에 있던 가족에게 가스가 누출됐다고 알렸다"며 "산불이나 지진이 났을 때처럼 문자로 알려 줬다면 대피를 하거나 열린 창문을 닫는 등 대비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혼선은 사고 수습이 마무리된 오후 1시30분까지 계속됐다. 낙동강유역환경청 측은 "환경 오염사건이라 낙동강유역환경청에서 가스 누출 경위를 확인하고 업무상 잘못이 있었는지 확인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봉기 기자 superch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