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인 광장
- 왜 '무형유산'인지 의아하다면
- 생명력 가득한 밤을 보면 된다
- 볼거리 먹을거리 가득한 광장에
- 골목골목 예술의 숨결도 스민다
- 사람과 사람사이 교감이 흐르는
- 광장의 고유한 매력이 넘쳐난다

혹시 기억하세요?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를. 크리스마스는 젊은 연인끼리 서로의 사랑을 장난스러운 눈싸움으로 주고받으며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마주잡고 활짝 웃는 풍경, 함박눈을 맞으면서 손을 맞잡고 거리를 헤매다가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서로 눈길을 나누지도 못하게 하는 강렬한 햇살과 무더운 바람이 불어오는 '8월의 크리스마스'라니. 크리스마스는 12월이지.

밤이 깃든 제마 엘 프나 광장. 밤이 되자 야시장이 서고 광장은 비로소 깨어난다.

물론 아시겠죠? 12월의 크리스마스에도 햇살이 따가워 눈을 뜨지도 못하는 곳이 아프리카, 아니 중앙아프리카인 줄을. 그런데 북아프리카 아니 북아프리카의 아틀라스 산맥 지역에는 눈이 내린다는 것을.

■광장인데 왜 '무형 유산'일까

제마 엘 프나 광장에서 만난 여인의 손. 손바닥에 부적을 새겼다.

올여름 어디로 갈 것인지를 인터넷에서 찾다 보니 2015년 1월 북아프리카 아틀라스 산맥에 80년 만의 폭설이 내린 기록이 있었다. 나는 그때 거기 있었다. 산악 지역에서 유목민으로 살아가는 이슬람교도 베르베르족 마을 우리카(Ourika)에 내린 폭설로 나는 여정을 중단하고 모로코 마라케시로 되돌아가서 며칠을, 낮에는 골목의 미로를 헤매고 밤에는 제마 엘 프나 광장으로 갔다.

제마 엘 프나 광장은 2008년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광장은 베르베르족이 지배한 알모라비드 왕조(Almoravid dynasty, 1040년~1147년)에는 왕조의 이름을 딴 이슬람사원 자리였다. 광장의 이름은 1050년 전후 사원 앞이 이교도의 공개 처형지였기에 '죽음(프나 Fnaa)의 집회(제마 Jemaa)'로, 1147년 왕조의 멸망으로 사원이 파괴되자 '집회(제마 Jemaa)의 마당(프나 Fnaa)'으로 불린다. 1147년 이래 광장은 실제로 기념물이나 건축물이 없는 텅 빈 곳으로 남아 있다. 그 주위를 오래되고 낡은 가옥들이 둘러싸 있고 그 너머 모스크의 첨탑들이 눈에 띌 뿐이다. 광장이긴 하지만 유네스코 유형 유산이 아니라 '무형 유산'으로 2008년 등재된 것은 낮에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지만, 밤이 되면 '아하'하고 감탄하면서 깨달음의 손뼉을 치게 된다.

■하나둘씩 불은 켜지고

폭설이 내린 아틀라스 산맥의 베르베르족 마을 우리카.

광장의 낮은 때로는 지중해로부터 불어오는 따뜻하고 습기가 많은 바람으로, 때로는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무덥고 건조한 바람으로, 때로는 그 바람들이 뒤섞여서 불어온다. 광장은 속칭 삐끼들, 관광객을 태우고 다닐 꽃마차들과 그 말들이 뱉은 오물 냄새 등으로 가득 차 있다. 도시 원주민들은 주변 골목에서 그다지 크지도 않은 가게를 지키면서 광장을 왕래하거나 순간순간 지나칠 뿐이다. 낮의 광장은 텅 빈 거리이다.

해 질 무렵 주위에서 하나둘씩 불이 켜지고 천막이 가설되자 광장으로 이어진 골목에서 온 시민이 다 쏟아져 나오는 것같이 북새통을 이룬다. 주위를 에워싼 가옥과 식당, 가설 천막에 불을 밝히고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이 모여들자 광장의 밤은 화려한 치장을 하고 아름답게 빛난다.

밤의 광장은 마치 화려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전 세계에 자랑하듯 풍광을 서서히 드러낸다. 이에 질세라 그 아름다움을 칭송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14곳의 광장'(2015년 7월 19일, 항공티켓 예약 전문 사이트 스카이스캐너)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14곳의 도시 광장'(2016년 11월 10일, 여행 전문 사이트 투어피아), '세계에서 반드시 봐야 할 31곳'(2017년 3월 28일, 미국 뉴스 전문 방송 CNN).

밤의 아름다움보다도 더 아름다운 것은 그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숨결이다. 그 숨결이 흩트러지지 않고 고스란히 배어 있는 것은 전통 음식이다. 양고기를 비롯한 육류와 야채를 익힌 요리를 곁들인 쿠스쿠스(couscous), 야채와 양념 및 향신료 혹은 육류 등을 넣어 만든 따진(Tagine), 토마토나 여러 채소에 매운 소스를 곁들인 스프인 하리라(harira) 등 광장 자체가 거리 음식의 마당을 이루고 있다.

■사람과 교감하는 광장 문화

그 가설 천막 식당들 사이 곳곳에 예술의 숨결이 스며들어 있다. 그 숨결은 옛 이야기꾼들, 거리예술가들, 음악가들, 예능인들 등등 시민들로부터 나온다. 매일 밤이 되면 시민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옛이야기를 다시 전하고, 어릴 적 그 누군가에게서 배운 악기들을 연주하거나 노래하고 춤춘다. 그 풍경은 매일 밤 되풀이되지만, 나날이 달라진다. 그 광장을 소설가 후안 고이티솔로(Juan Goytisolo, 1931년 1월 6일생)는 '일함의 이야기 : 제마 엘 프나 광장의 북을 두드리는 고통'(2001년)에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입으로 전해지는 풍부한 옛이야기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전통문화의 피난처, 보호지'라고 명명한다. 광장의 문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감정의 교류와 교감이 흐르게 한다.

광장의 매력은 사람에 있고 광장의 예술은 사람들이 교감을 나누게 한다. 부산의 광장은 텅 빈 채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람을 중심에 놓고 먹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를 채비하고 있는가. 민병욱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 bmw@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