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고 당시 의식 없었다" 무죄
- 투약 않고 면허갱신 때 안 알려
- 예방 안한 책임 물어 금고 5년

지난해 7월 부산 해운대에서 '광란의 질주'를 벌여 22명의 사상자를 낸 교통사고 가해자가 1심에서 금고 5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뇌전증(간질)을 앓고 있는 운전자가 당시 의식이 있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금고형은 교도소에서 복역하지만 강제 노역을 하지 않는 점에서 징역형과 구분된다. 본인이 원하면 강제 노역을 할 수 있다. 참혹한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에게 법원이 금고형을 선고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7월 부산 해운대에서 '광란의 질주'를 벌여 22명의 사상자를 낸 교통사고 장면. 국제신문 DB

■"운전 중 의식 없었다" 금고형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1단독(권기철 부장판사)은 24일 이번 사고의 가해자인 김모(53) 씨에게 금고 5년을 선고했다. 김 씨는 지난해 7월 6일 해운대구 좌동의 한 아파트 앞 도로에서 앞서가는 승용차 뒷부분을 들이받은 데 이어 신호를 무시하고 시속 138㎞로 교차로를 통과해 2차 사고를 낸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고로 3명이 숨지고 1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검찰은 김 씨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운전한 것으로 보고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또 법원이 김 씨가 의식이 없었다고 판단할 경우에 대비해 예비로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금고 7년6개월을 구형했다.

하지만 1심은 '운전 중 의식이 없어 책임능력이 없다'는 김 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권 부장판사는 의식이 없었다는 전제 아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과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사·치상)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권 부장판사는 "사고 당시 의식이 없는 사람의 운전행위로 보기 어렵고 뇌전증 전문의가 '의식이 상실된 상태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사정만 보면 의심할 여지가 있다"면서도 "제한속도를 시속 78㎞ 상당 초과한 시속 138㎞로 진행하면서 충돌한 운전행위는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너무나도 위험한 행위였다"고 판시했다. 이어 "뇌전증 환자들이 자전거 타기나 운전행위 도중 갑자기 복합 부분발작이 시작되면 잠시 앞을 응시하다가 계속하던 기계적인 행위를 지속하는 행태를 보인다는 캐나다 뇌전증협회 논문도 있다"며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김 씨에게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의식 잃을 수 있다는 점 알았다"

다음 쟁점은 뇌전증으로 의식을 잃고 교통사고를 일으킬 것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다. 검찰은 뇌전증 처방약을 먹지 않으면 의식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운전을 해 중대 교통사고를 냈다고 예비적 공소사실을 보탰다. 운전면허 갱신 때 뇌전증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 전문의의 판단에 따라 면허 갱신을 받아야 하지만 이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 업무상 주의의무를 모두 위반했다는 것이다.

1심은 검찰의 예비적 공소사실인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사·치상) 혐의는 유죄로 판단해 김 씨에게 금고 5년을 선고했다. 김 씨는 사고 10개월 전 의식을 잃은 채 집 계단에 쓰러졌다. 또 8개월 전에는 운전 중 의식을 잃어 인도의 볼라드를 들이받았다. 현행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서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에게 징역형을 선고할 수 없고 과실만 인정해 금고형만 선고할 수 있다. 법원은 "자동차 보험으로 기본 배상이 되고 운전자가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은 점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반면 검찰은 "법원에서 전문감정기관과 뇌전증 전문의의 의학적 소견을 배제하고 예비적 공소사실만 인용한 것은 이해가 안 된다"며 "판결문을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사고로 딸(43)과 손자(18)를 잃은 한 유족은 이날 "아찔한 곡예 운전을 했는데 어떻게 의식이 없었다고 볼 수 있나. 가해자는 한 번도 피해자 가족을 찾아와 사과하지 않았다"며 검찰에 즉각 항소를 요구했다.

정철욱 기자 jc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