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7년 높은 경쟁률을 뚫고
- 부산 원양어업기술훈련소 입소
- 유엔지원으로 고급훈련 받아

- 바다를 누비다 잠시 쉬는 동안
- 여기저기 빌려준 돈 못 받아
- 결국 4년 만에 다시 바다로

- 대양 위 한평생 아쉬움도 커
- 이랬으면 더 좋았을 걸
- 저랬다면 더 잘했을 걸

그는 1943년 경남 통영 한산면에서 태어났다. 4남 3녀의 7남매 중 셋째였다. 1962년 상업고를 졸업하고 1967년 군 제대한 후 당시 충무시 위생대(보건소)에서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어느날 고교 동기가 원양어업기술훈련소 실습을 마치고 그를 만나러 왔다. 훈련소 얘기를 듣고는 귀가 솔깃했다. 유엔(UN) 산하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 기금으로 운영되니 훈련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훈련소 마치고 대서양으로

어부가 되기로 마음먹은 그는 1967년 10월 높은 경쟁률을 뚫고 부산의 원양어업기술훈련소에 7기생으로 들어갔다. 1964년 FAO와 협정을 체결한 한국은 원양어업 육성과 기술훈련생 양성을 위해 유엔 자금으로 이 훈련소를 설립해 해기사와 통신사, 선원 등을 배출했다.

"교육과정은 1년으로 한 해에 2개 과(어로과, 기관과)를 모집했죠. 한 과에 30명 정도씩 뽑았어요. 저는 어로과에 들어갔습니다. 1년 중 6개월은 항해법 등 이론 공부, 나머지 6개월은 연안 및 원양 실습을 나갔어요. 유엔 지원을 받으니 훈련생들은 '의식주' 뿐만 아니라 실습재료가 풍족했습니다. 당시 우리 정부로서는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파격적인 지원이었죠."

배 수리차 서부 아프리카 감비아에 입항해 쉬고 있는 모습(1972년).

훈련소를 마친 그는 1969년 1등항해사로 취업했다. 당시 제동산업 소속 참치잡이 어선으로 200톤급인 지남35호였다. 이 배를 타고 대서양으로 나갔다. 주 어종은 알바코(날개 다랑어)와 옐로핀(황다랑어)이었는데, 대부분 미국의 캔 가공용으로 넘겨졌다. 이듬해 대서양을 누비던 그는 배 수리를 위해 아프리카 잠비아에 갔다. 그곳 기관 담당자를 만나러 가는 길가에서 한국인들과 조우했다.

"아프리카에 파견된 한국 의료진이었습니다. 그곳 조선소 사무실에 들렀다가 정박된 배로 돌아오는데, 의료진 자녀들이 저희 일행에게 태극기를 흔드는 것을 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외국에서 조국 사람들을 만나니 감정이 벅찼던 것 같아요. 그때의 느낌을 잊을 수 없어요."

27세에 어부가 됐던 그는 2년 반 만에 선장 자리에 올랐다. 당시 인력이 모자라서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사람은 진급이 빨랐다고 한다. 1974년 결혼한 그는 신혼의 달콤함을 뒤로 하고 이듬해 다시 배를 탔다. 고려원양으로 회사를 옮겨서 350톤급의 광명156호를 맡았다. 목적지는 인도양으로 바뀌었다. 그 배는 주로 횟감용 참치를 어획해 일본에 판매했다.

■인도양에서의 조업

대서양에서 청새치를 잡아 올리는 선원들(1972년).

1978년에는 대림수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배는 450톤급 청룡5호였고 어장은 인도양이었다. 당시 인도양은 참치가 많이 잡혀서 그곳으로 어선들이 대거 몰렸다고 한다. 배의 크기가 서로 비슷했는데, 유지경비를 감안한 것이라 비교적 규모가 작았다.

"그때 배들은 보통 440~450톤 정도로 규격화된 거 였어요. 경우에 따라서는 조금 작은 배가 있긴 했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드물었죠. (조업)경비 관계 등으로 인해 더 클 필요가 없었던 것 같아요."

어느 날 조업 중 선원 한 명의 눈 부위가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우리 배는) 연승 어선이니까, 낚시줄을 감아올립니다. 그걸 '양승'이라고 하죠. 이렇게 낚시줄을 감는데, 줄이 선원 머리에 걸리면서 눈 부위가 찢어졌어요. 하마터면 큰일 날뻔 했습니다. 당시엔 그 선원이 죽는 줄 알았어요. 내가 꿰매는 수술을 해서 다행히 위험한 고비를 넘겼습니다. 선장은 응급의료나 간단한 수술 교육을 받았거든요."

연승은 긴 모릿줄에 일정한 간격의 아릿줄을 달고 그 끝에 낚시를 매단 '주낙'이라고 부르는 어구를 물 속에 드리워서 고기를 살아있는 채로 한꺼번에 낚아 올리는 어법을 말한다. 연승 어업의 특징은 고기를 산 채로 잡을 수 있어 자연산 활어의 어획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는 배에 어군탐지기가 있지만 선장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때는 (탐지장비를 보고) 어군이 참 좋다 싶어서 그물을 바다로 내렸는데 물고기가 없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장비에 의존하기보다 경험이 중요한 겁니다. 늘 주변 배들과 어군 정보를 공유하고 부유물이 떠다니는 것, 갈매기떼, 어군탐지기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하지요. 그리고 과거에는 적도(위도 0도)를 넘을 때 적도제를 올리고 했습니다. 요즘은 잘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만. 적도제를 안 지내면 해를 입는다고 해서, 돼지머리 등 음식을 차려놓고 배에서 제사를 올리고 그랬죠. 어획이 시원찮아도 고사를 올리고 했어요. 고사 뒤에는 회식으로 선원들 마음도 달래주고 겸사겸사 핑계 삼아서 하고 그랬습니다."

■4년 휴식, 그리고 남태평양

선상 조타실에서 전방을 살피고 있는 강석순 선장(1971년).

인도양에서 돌아온 그는 잠시 쉬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여기저기 지인들로부터 보증을 서 달라, 돈을 빌려달라는 등의 부탁을 받았다. 그가 번 돈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거절도 못했다. 바다 위에서만 생활해 세상 물정이 어둡다 보니 결국 그들의 부탁을 들어줬다. 하지만 그게 잘못되어 많은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는 허탈감에 빠졌다. 그리고 4년 만에 다시 원양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 처음 들어간 곳은 한국 선사였어요. 종전까지는 배에 냉동고가 탑재된 어선이라 장기간 조업을 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빙장선(얼음으로 물고기의 신선도를 유지시키는 배)이라 규모가 아주 작은 거였죠. 그 배를 18개월 정도 타다가 그만두고 (남태평양) 피지 어장에서 조업 중인 중국 어선에 취업했지요. 그것도 빙장선이라 바다에 오래 있지 못했습니다. 얼음이 녹으면 안되니까. 물고기를 잡아서 피지 항구로 들어오면 비행기로 일본에 판매를 했죠. 그러다 대만 배로 다시 옮겼어요. 어장은 역시 피지였고, 차츰 다른 곳으로 이동했죠. 이렇게 1997년부터 3개 선사를 옮겨 다니며 10년을 보냈습니다."

그는 선상생활에서 고기를 많이 잡는 것도 좋지만, 선원 관리를 잘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한정된 공간에서 단조로운 생활을 하다 보면 신경이 예민해지기 때문에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선원들을 잘 대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가끔 배에서 회식을 하지만, 술은 아주 조심스럽게 먹습니다. 만약에 사고가 날까 싶어서. 선원들이 술 마시는 걸 선장이 체크를 하죠."

선상에서는 사고 방지를 위해 규율이 엄격하다. 1960년대에는 선원들의 인권이 침해당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1970~80년대 들면서 선상 환경이 많이 개선되고 선원 구타행위도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에는 중국 어선들 증가로 짜증나는 일들도 많았다. 중국 배들은 조업 기술이 부족하고 장비가 낙후해 다른 배들의 구역과 붙어서 조업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서로 엉키게 되고 조업을 망치는 일도 생겼다.

■아쉬운 지난 세월

강석순 씨

그는 1968년 배를 탄 이래로 대서양과 인도양, 남태평양 바다를 40년간 누비며 참치를 잡았다. 북태평양과 동태평양을 제외하고는 다 가본 셈이다. 2007년 8월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어부 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자신이 현역으로 활동할 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원양어업은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우선 어로장비가 굉장히 발달했다. 어업기술도 마찬가지다. 그로 인해 승선 인원 수가 과거보다 많이 줄었다. 하지만 인건비와 부대비용이 오르는데 비해 어획량은 따라가지 못하니 원양사업도 어려워졌다.

"제가 원양어선을 탈 때는 선원 수가 25~28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18명이 안되는 거 같아요. 과거에는 원양어선을 타는 사람들의 보수가 육상 근로자보다 훨씬 높았죠. 그런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제가 첫 선장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가 1973년이었습니다. 그 당시 내 친구가 경남모직의 과장대리로 있었는데, 내가 그 친구의 봉급보다 10배를 더 받았습니다. 나도 한때 돈 많이 벌었죠. 그런데 세월이 갈수록 그 간격이 점점 좁혀지더군요. 요즈음은 바다나 육지나 양쪽 다 비슷한 것 같아요."

그는 원양어업에 종사했던 한 사람으로서 정부에 이런 점을 바란다. 수산 먹거리를 확보하는데 원양어업이 아직까지 괜찮은 분야이니 관심을 더 가져달라는 것이다. 원양어업은 선박 건조가 잘 안 되고, 인건비가 올라서 외국인들을 써야 하는데 선원 구하기도 어려움이 많은 실정이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아쉬움이 많지요. 선장으로서 왜 그때 이런 걸 안 했을까, 저런 것을 왜 안 했을까, 그때는 이렇게 할 것을 하는 아쉬움이죠."

◇ 원양어업 용어 '항차와 독항선'

원양어업에서 한 '어기'는 보통 3년 단위의 계약기간이다. 어선은 바다에서 물고리를 잡아 선내 어창이 가득 차면 기지항으로 들어와 이를 하역하고 연료나 식료품 보급을 받아 다시 조업을 나간다. 이 과정을 한 항차(航次)라고 한다.

규모가 작은 배는 항차 수가 많을 것이고, 큰 배는 어창이 훨씬 크기 때문에 고기를 잡는 기간이 더 오래 걸릴 수 있다. 대체로 한 항차는 약 3~4개월 정도가 된다. 한 항차를 마치고 입항하면 선원들은 육지에 내려서 하루 이틀 쉬었다가 다시 출항한다. 입항했다가 음주 등으로 노는데 빠져서 승선을 안 하려는 선원은 현지 대리점을 통해 귀국조치했다고 한다.

독항선(獨航船)은 선단 조업에서 어로를 직접 담당하는 선박 중 단독 항해가 가능한 배를 뜻한다. 보통 조업을 하면 1, 2차례는 어획물 운반선에 실어 보내고 그 다음 물량은 직접 싣고 귀항하게 된다.

독항선은 한 항차를 갔다오면 곧장 배 수리에 들어가기도 했다. 배에 따라서는 일본에 가서 수리를 받고 했지만, 가격이 비싸다 보니 한국에서 수리를 많이 했다고 한다.

채영희 부경대 국문학과 교수·강대술 부경대 외래교수

사업기획·참여: 부산시 수산자원과, 부경대 해양인문학연구소,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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