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문 밖으로 바다가 보인다'
- 이 말 듣고 수산대학 진학
- 해군 제대 후 본격 어부의 길
- 트롤선 승선 1년 만에 선장으로

- 미국 쿼터량 단속 까다로워
- 어획량 소수점까지 기록하기도
- 파독 광부보다 먼저 외화벌이
- 한국경제 발전에 기여 자긍심

그는 1944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3남 5녀 중 장남으로, 위에 누님이 한 분 계셨다. 6살 때 부모님을 따라 충남 예산으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6·25전쟁을 겪었고 중학교를 마쳤다. 1961년 서울로 올라와 고교를 졸업한 뒤 1964년 부산 수산대 어로학과에 들어갔다.
■북태평양 조업 부흥기

"제가 고3 때 공군사관학교에 가려고 공부했는데, 시력이 좋지 않아서 파일럿(조종사)은 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부산에 수산대학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좀 특이하다, 색다르다 싶었죠. 그래서 수산청에 찾아가 그 대학에 대해 물어보고 그랬는데, 그분 말씀이 '수산대학은 창문 밖으로 바다가 보인다'고 하셨어요. 그 말이 수산대학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항해 중 배에서 회식하는 202대왕호 선원들(1973년 대서양).

대학 3학년 때 그는 처음 원양실습을 나갔다. 수산대의 389톤급 실습선인 백경호가 1967년 신조되고 나서 두 번째 원양실습이었다. 실습생은 어로학과 50명 중 몇 명 빠지고 45명 정도 됐다. 3개월간의 실습은 시모노세키~하와이~사모아로 이어졌다. 남태평양 해역의 참치어업 조황을 타진하는 목적도 있었다. 당시 교육실습선으로는 가장 먼 바다까지 나간 사례였다고 한다.

그는 1970년 해군을 제대하고 어부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때는 북태평양(북양) 트롤 조업이 활발한 시기였다. 1968년 5월 한국수산개발공사는 제601강화호(1470톤급 트롤어선)의 독항식 시험조업을 성공리에 마쳤고, 그후 북양 어장 개척이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1969년에는 북양에서 독항식 트롤어업이 기업화되기 시작했는데, 김종익이 북양 트롤어선을 타게 된 1970년에는 선단식 저인망 조업까지 북양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이로써 명태가 주 어종인 북양 조업은 부흥기를 맞았다고 한다.

"제가 대학을 졸업할 당시엔 해군의 초급장교 수급계획에 의해 저희(어로학과) 동기 50명 중 절반은 현역으로 가고, 절반은 졸업하면서 전역이 됐어요. 전역한 친구들은 대부분 참치업계로 갔습니다. 해군 현역으로 간 친구들은 군에서 2년3개월을 근무했죠. 제가 제대하고 나니까 트롤어선이 막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런 시대적 흐름으로 인해 저는 트롤어선을 타게 됐습니다. 만일 저도 졸업하면서 전역을 하고 실무로 나갔다면 참치어선을 탔을 가능성이 있었지요."

■위기의 순간

조업 중 와이어로프를 감는 장면(1971년 북태평양).

그는 1970년 7월 북양 트롤선(299톤)의 2등항해사로 선상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북양의 거센 풍파에 놀란 그 배 1등항해사 선배가 한 항차를 마친 후 갑자기 하선하는 바람에 곧장 1등항해사로 진급하게 됐다. 그런 뒤에도 만선의 성과로 1년여만에 다시 선장이 되었다.

"당시 어장은 북양 캄차카 반도 연안 12해리 밖이었죠. 그 해역은 공해여서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트롤 조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캄차카 연안은 바람이 심하기로 악명 높지만, 명태 자원이 풍부한 덕분에 출어를 하면 대체로 만선을 이뤄 돌아왔지요."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는 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자칫 방심하면 아찔한 순간을 맞을 수도 있다.

"어느날 일본 북해도와 동해를 거쳐 부산으로 돌아오는 중이었습니다. 만선을 해서 귀항할 때는 선내 긴장감이 좀 풀어지죠. 이제 며칠 있으면 입항한다, 맛난 음식을 먹는다, 아가씨도 만날 수 있다 등의 생각이 드니까요. 당시 우리 배에 팔푼이라고 놀림 받는 선원이 한 명 있었죠. 저녁식사를 마치고 어둑어둑한 시간이라 마음이 풀어지는 분위기였는데, 이 선원이 나에게 선장님 저것 보세요 라고 다급히 말하더군요. 그래서 돌아보니 일본 어선 한 척이 정면으로 오고 있는 거예요. 그 선원이 말하지 않았다면 충돌했을 겁니다. 배가 만선인 상태에서 급회전하면 기울어지거든요. 팔푼이 선원 덕에 위기를 모면한 거죠. 지금도 그 일이 잊혀지지 않아요. 저녁 무렵 해가 서쪽으로 지고 파도가 넘실대면 바다 색깔이 약간 짙은 초록색이랄까, 그런 색을 띠죠. 그 일본 배의 색깔이 딱 그런 거였어요. 그래서 눈에 언뜻 띄지 않았던 겁니다."

■베링해 쿼터량 단속

거북이를 바다로 놓아주기 전에 술로 '대접'하는 모습(1981년 519동원호).

그 당시 어장 환경은 각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200해리 선포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자국 연안으로부터 200해리(약 370㎞) 범위에서 수산자원 등에 대한 주권적 권리를 행사는 것이다. 우리 어선들로서는 어장이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북양 베링해에서 조업할 때 200해리가 선포되기 시작했어요. 베링해에서 미국도 200해리, 러시아도 200해리. 그러니 그것에 해당되지 않는 가운데 해역(공해)에서 조업했죠. 공해였지만 미국 해안경비대의 경비정이 와서 조사하고 그랬습니다. 경비대원들이 배에 올라와 여러 가지 규정 준수 여부를 점검하는 거죠. 그 외에도 옵서버(observer)라는 명칭의 미국 사람이 배에 타서 조업하는 걸 지켜보고 했어요."

그때는 공해상에서도 잡을 수 있는 어획물의 쿼터량이 적용됐다고 한다. 200해리 밖이었지만, 명태 등 어족자원이 200해리 안에서만 살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미국 당국이 우리나라 쿼터량을 정해주면, 한국수산청이 원양어업협회를 거쳐 쿼터를 나눠줬다.

"미국 측이 준 쿼터를 한국에서 북양어업 면허를 가진 곳을 대상으로 선사별, 어선별로 쿼터를 할당했지요."

망망대해 공해에서 미국 측의 쿼터량 단속은 까다롭게 이뤄졌다. 쿼터량보다 적게 잡는 건 문제가 안 됐지만, 초과분에 대해서는 벌금이 부과됐다. 그는 단속이 강화됨에 따라 어획량 기록을 철저히 했다고 한다.

"미국 경비대 사람들이 우리 배에 올라오면, 우선 '어로일지'를 내라고 합니다. 그리고 10여명의 경비대원들이 어창에 직접 내려가서 체크를 해요. '체크워치'를 가지고 어획물을 세는 거죠. 명태 하나가 20㎏인데 어창에 모두 1000개가 있다, 그러면 200톤인데 어로일지에는 왜 185톤으로 적혀 있느냐, 15톤을 덜 기록한 거 아니냐, 이런 식으로 꼼꼼하게 따졌어요. 만선인 경우에는 부두에 물량을 하나하나 내려서 확인하고 그랬습니다. 그렇다 보니 저는 거의 소수점 자리까지 (어획량을) 기록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서양으로

202대왕호 시절의 김종익 선장.

1970년대 초 우리 정부는 외화 획득을 높이기 위해 어획물 전량을 수출할 수 있는 대서양으로 어장을 옮기도록 권장했다. 이 시책에 따라 300톤 미만의 트롤선들이 북양에서 대서양으로 이동하게 됐다. 제202대왕호(349톤)의 김종익도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 대서양의 전진기지는 카나리아제도의 라스팔마스였죠. 우리나라가 1965년부터 시험조업에 성공해 개척한 곳이었습니다. 제가 그곳으로 향했던 1972년도는 원양 트롤이 잘 나가는 시기였습니다."

대왕호와의 계약 종료로 배에서 내린 그는 육상 근무를 택했다. 선상 생활보다 편할 거 같았고 가정도 꾸려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가고 집안 형편도 걱정이 돼서 5년 간의 육상 근무를 접고 다시 배를 탔다. 2년 계약의 제519호 동원호 선장으로 다시 라스팔마스로 갔다.

만선으로 기지에 들어온 날은 최고의 날이다. 고기를 가득 잡은 데다 모처럼 육지에서 즐길 수 있고 가족 등의 편지도 받아볼 수 있어서다.

"기지에 입항하면 현지 주재원들이 나옵니다. 경리주재원이 현금과 그동안 온 편지 등을 가지고 와요. 상륙비를 현금으로 주는데, 월급에서 제하고 주죠. 입항식 하고 그날 저녁에 나가서 놀아요. 라스팔마스의 경우 스페인이니까 세르베싸(cerveza) 맥주를 마시죠. 이 맥주를 스페인 사람들은 아주 좋아합니다. 그리고 햄, 즉 하몽이라고 하죠. 돼지고기 훈제한 것을 썰어놓은 건데 안주로 아주 좋아요. 하몽 중에서도 하몽 세라노란 게 있는데, 그건 맷돼지살로 만든 훈제죠. 스페인왕이 좋아한다고 하든가? 투우 구경할 때도 일반 관객들과 똑같이 앉아서, 집에서 막걸리 마시듯이 포도주를 마시고 하몽을 씹는다고 하더군요."

그는 1982년까지 8년간 원양어선에서 일했다. 그 기간 위기도 많았지만 큰일은 없어서 행운이라고 여긴다. 선상생활을 정리한 뒤로는 10년간 수산회사에서 육상근무를 했다. 대학 시절, 하와이와 사모아 등의 실습을 마치고 돌아오며 바다가 쉬운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바다에 대한 낭만 같은 게 깨졌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현실에 대응하며 살아왔다. 지금도 어부의 길을 택한 것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1960년대 원양어업은 우리나라의 국가적 관심사였다. 1967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부산 수산대를 직접 방문한 게 상징적이었다고 한다.

"과거 서독에 우리 광부들이 나가서 돈 벌고, 중동에도 우리 근로자들이 나가서 고생했죠. 하지만 원양어업은 그들보다 더 일찍 나갔고, 더 많은 외화를 벌어 한국경제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그런 것에 저희들은 자긍심을 가지고 있어요."


# '용왕 사신' 거북이 잡히면 술 입에 넣어 다시 바다로

■ 원양어선 속신

원양어선에서는 여러 가지 속신(俗信)을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김종익은 천주교 신자이지만, 종교를 떠나 선원들의 원망(?)을 듣지 않기 위해 출어 전에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고 한다. 간혹 조업 도중에 예기치 않은 어종이나 생물이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데, 거북이의 경우는 '특별대우'를 받았다. 우리 전통문화 속에 거북이는 신성한 동물, 용왕님의 사신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낚시줄에 거북이가 걸려오면 해치지 않고 술을 '대접'해서 다시 바다에 놓아줬다. 거북의 입을 벌려서 술을 넣어주고 예를 갖춘 다음 돌려보내는 것이다. 이 같은 예우는 우리 원양어선들에서 대부분 동일하게 이뤄졌다고 한다. 어떤 때에는 대형 거북이가 올라와서 선원들이 거북이를 놓고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채영희 부경대 국문학과 교수·강대술 부경대 외래교수

사업기획·참여: 부산시 수산자원과, 부경대 해양인문학연구소,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