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롤선 척양호로 북태평양 실습
- 일손 부족할땐 고기 처리작업
- 피곤해서 심한 파도에도 쿨쿨

- 공장식 대형트롤선 신안호 탑승
- 새로운 기기 갖춰 기술발전 체감
- 어획물 하나도 버리는 게 없어
- 때론 그물에 잠수함 걸리기도

- 거친 바다 위 힘든 생활 속
- 새우·게다리살 맛보면 행복

그는 1949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났다. 마산고를 졸업한 후 1968년 부산 수산대 기관학과 1기생으로 입학해 4학년 때 고려원양의 트롤선 척양호를 타고 북태평양에 실습을 나갔다. 생애 첫 원양 항해를 앞두고 그는 비장한 기분이 들었다. 당시 북태평양은 공포의 바다로 불린 까닭이다. 1967년 한국 어선단이 그 해역에 첫 출어했는데 악천후로 두 척이 침몰하는 참사가 발생했다고 한다.
■험난했던 실습 생활

"척양호에서 일손이 부족할 때는 고기 처리작업을 거들었습니다. 명태를 동결 팬에 담는 건데, 쉬운 게 아니었어요. 같은 크기로 골라서 넘치지 않도록 가지런하게 담아야 했지. 그렇게 기관실과 처리실에서 시간을 보내니까 해가 뜨는지 지는지,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알 수 없었어. 우리 침실은 선체에서 요동이 제일 심한 곳이었지만 너무 피곤하니까, 파도에 침대가 쿵덕쿵덕 널뛰기를 해도 잠을 쿨쿨 잘 잤어. 거기는 봄에도 햇빛 구경하기 힘들었어. 안개가 자욱하거나 구름 낀 하늘이 바다에 딱 붙어 있었지."

척양호가 그곳 어장에서 조업할 때 부근에 러시아 어선단이 많이 있었다.

"100톤급 작업선들이 50여척 흩어져 있고, 호위 구축함이 양떼 지키는 사냥개처럼 주변을 맴돌고 있더라구."

김종찬은 1974년 12월 처녀 출항한 신안호에 승선해 2등기관사로 일했다. 신조 어선인 이 배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고 설비가 좋은 공장식 대형 트롤선 중 하나였다. 사진은 신안호에서 대형 넙치를 잡은 뒤 기뻐하는 선원.

그곳에는 2만 톤급 공모선이 작업선들 중앙에 버티고 있었다. 해질 무렵 비행기 한 대가 척양호 주위를 선회하다가 사라지곤 했다. 척양호 선장은 그곳 어황이 좋았지만 분위기가 꺼림칙해 다른 어장으로 옮겼다. 혹시 소련 작업선과 접촉이라도 생기면 무슨 트집을 잡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척양호는 다른 트롤선 동성호(880톤급)가 러시아 경비정에 나포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해침범이라는 것이었다. 그때 동성호는 캄차카 근해에서 조업 중이었다. 척양호도 그곳에서 빠져나올 때 동성호를 목격했다.

"갑자기 경비정 두 척이 나타났다고 하더군요. 다른 배들은 얼른 도망쳤는데, 동성호는 예망 중이라 잽싸게 못 빠져나온 거지. 우리는 그 소식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어요. 그때는 영해를 침범했든 안 했든 일단 나포되면 무슨 혐의를 덮어씌울지 몰랐거든."

■무사고 조업 고사

그물을 걷어올리는 양망 작업.

그는 1974년 3월 해군에서 전역하고 그해 5월 신라교역 소속 한진호에 승선해 다시 북태평양에 나갔다. 그리고 7개월 뒤 같은 회사의 신안호로 옮겨 탔다. 당시 신안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설비가 좋은 공장식 대형트롤선 중 한 척이었다. 종전까지 트롤선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기기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어체 선별기, 어두를 자르는 기기, 껍질을 벗기는 기기, 살코기를 저며 내는 기기 등등.

"불과 3년 사이에 트롤선들이 대형화되고 설비가 개량되었죠. 척양호에서는 명태를 통째로 냉동해 제품을 만들고, 나머지 잡어는 그냥 버렸는데, 신안호에서는 어획물을 하나도 버리는 게 없었거든. 잡어는 물론이고 명태 필레를 하고 남은 머리, 뼈, 껍질까지 모두 어분공장의 원료탱크로 싹 쓸어 넣었지요. 어분 원료를 잘게 갈아서 증기로 찌면 원심분리기에서 건더기와 액체를 분리한 뒤, 액체는 유수분리기를 통해서 어유와 오수로 분리하고, 건더기는 어분이 되어 나오는 설비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신기했어. 기술이 날로 발전하는 걸 체감했지."

신안호의 승선인원은 150명이었다. 선원이 많아서 식당도 세 개나 되었다. 1등 사관들이 사용하는 살롱, 2·3등 사관 및 준사관들이 사용하는 오피서 메스 룸, 일반 선원들이 사용하는 크루 메스 룸으로 나뉘었다.

"크루 메스 룸은 비좁아서 한꺼번에 식사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시간대별로 교대를 했지만, 그래도 식당이 버글버글했지."

원양어선들은 처음 어장에 진입하면 조업 시작 전에 고사를 지내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다. 상선이 적도를 지날 때 안전 항해를 기원하며 적도제를 지내듯 어장에 도착하면 무사고로 고기가 잘 잡히게 해달라고 고사를 올린다.

"브릿지와 기관실에 제상을 차려놓고, 목욕재계한 선원들이 쭉 늘어서서 절을 합니다. 제상에는 촛불을 켜고, 쌀 담은 대접에다 향을 피워 용왕님을 모시는 거죠. 돼지머리, 통닭, 사과 배, 밤, 대추, 곶감, 그리고 각종 나물에다 도미찜, 조기찜, 밥 등을 올리고 술을 따라 올리지. 돼지머리를 깨끗한 백지에 싸서 과일 등과 함께 용궁으로 보내면 고사가 끝나요. 그런 뒤에는 선원들이 술잔을 돌리면서 차린 음식을 나눠 먹는 거지."

■바다사자, 그리고 잠수함

북태평양의 유빙(流氷).

어느날 신안호가 조업 중 그물을 끌어올렸는데, 바다사자 한 마리가 따라 올라왔다.

"바다사자가 이빨을 드러내면서 막 울부짖는 거야. 선원들이 멍해서 고기를 쏟을 생각은 않고 그놈 주위를 에워쌌어. 그러니까 바다사자가 더 사납게 울부짖는 거야. 선원들은 무서워서 덤벼들지도 못하고. 가만히 보니까 수놈이더군. '해구신'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 있었어. 물갈퀴는 신경통에, 쓸개와 간은 간장에, 골은 고혈압에 좋다는 얘기를 들었지. 그래서 선원들이 그놈과 실랑이를 하는데, 선장이 놓아주라고 고함을 치는 거야. 그래서 풀어줬는데, 바다에 떨어진 그놈이 우리 배를 계속 따라오면서 울부짖는 거야. 나중에 알고 보니 그물을 풀어 놓은 피쉬 폰드(어획물 저장창고) 속에 바다사자 한 마리가 더 있었어. 암놈이었는데 그물 올라올 때 질식해 숨졌던 거지. 그래서 수놈이 막 따라오면서 울부짖었던 거야. 그래서 우리가 암놈 사체를 그대로 바다에 던져줬어. 마음이 개운치 않았지."

당시 북태평양에 나간 선원이라면 러시아 잠수함이 트롤선 그물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한국 어선 한 척이 와이어 로프를 감았는데 로프 장력이 여느 때보다 훨씬 세더래. 윈치(견인장치) 부하가 억수로 크고 속력도 안 오르고. 이상하다 싶었지. 그래서 처음에는 큰 바윗덩어리인 줄 알고 조심조심 감았더니, 굴뚝같은 게 보이고 시커먼 물체가 솟아올랐다는 거야. 그렇게 잠수함을 처음 본 선원들이 멍하니 있는데, 잠수함에서 수밀문을 열고 승조원 한 명이 나오더래. 뭔가 길쭉한 것을 들었는데, 선원들이 총을 쏘는 줄 알고 기겁을 해서 몸을 숨겼다는 거야. 알고 보니 절단기였는데, 그물을 잘라야겠으니 기관을 정지하라고 했대. 승조원이 그물을 제거하고 잠수함도 사라졌지. 그 일 말고도 북태평양에서는 드물게 잠수함이 그물에 걸린다는 얘기가 들렸어."

배에서 이발하는 모습.

신안호는 첫 항차 때 사고 없이 순조롭게 조업을 했다. 그물을 올리면 어류도감에도 없는 이상한 고기들도 많이 잡혔다.

"선원들 사이에서 용고기라 부르는 용 닮은 고기가 있는데, 속을 빼내고 쌀을 넣고 말려서 윤이 나도록 니스를 칠한 다음에 어류 박제를 만들기도 했어. 어쩌다가 그물에 발그스름하게 생긴 새우들이 들 때도 있었는데, 새우도 아주 많이 들면 상자에 담지만 어중간할 때는 선원들 차지였거든. 가운데 손가락만한 새우를 까서 바닷물에 흔들어서 우적우적 씹어 먹었지.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 다른 생선맛에 비길 수 없는 일품이었지. 한 가지 비길만한 게 있었는데, 게 다리살 회였어. 싱싱한 게 다리살만 발라내 초장에 무치거나 찍어 먹으면 끝내줬지. 그 맛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어. 거친 바다에서 오랫동안 힘든 생활을 할 때 간혹 이런 맛을 보는 게 유일한 낙이라면 낙이었죠."

■영원한 뱃사람

신안호는 공장식 트롤선이라 명태 필레, 어분, 어유 등을 생산해 만선이 되려면 오래 걸렸다고 한다. 때문에 바다에서 어획물을 옮겨싣는 작업은 하지 않고 만선이 되면 바로 부산항으로 입항했다.

"부산항에 들어오면 2등 기관사인 내가 가장 걱정한 건 벙커링 작업이었어. 트롤선은 선체구조상 연료탱크 용량이 작고 탱크 수는 많아요. 하역 도중에 연료유를 수급해야 해서 트림 변화가 심했지. 그래서 벙커링이 아주 위험하고 까다로웠어. 그런데 그것보다 더 골치 아픈 게 유류 수송업체 사무장들의 농간이었어. 당시 부산항에 악질 유류공급업자들이 많이 있었는데, 여러 방법으로 잔꾀를 부렸어. 기름 속에 기포를 섞어 체적을 부풀리다 보니, 유량계보다 기름양이 부족할 때도 있었지. 더 심한 업자는 기름 속에 물을 섞은 적도 있었어. 나중에 연료유 침전 탱크 드래인 콕에서 물이 쿨쿨 쏟아졌지. 지금도 기름 도둑질로 유명한 항구가 싱가포르인데, 중유 속에 미세한 공기입자를 섞어서 양을 팽창시키는 방법을 써서 사기를 치는데, 일본 선주들은 이런 수법을 카푸치노 벙커라고 불러요."

그는 신안호를 타다가 1976년 10월 원양어선에서 내린다. 그 뒤 10여년 동안 상선을 타고 세계 대양을 누빈다. 1998년 몇 달간 고려원양의 트롤선을 타고 북태평양에 나가기도 했다. 그러다 2012년 배에서 하선한다. 그는 부산 자택 앞에서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자주 바다를 쳐다봤다. 아직도 바다를 꿈꾸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뒤 은퇴했다던 그가 다시 바다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에게 하선이란 육지에 잠시 머문다는 뜻에 불과했다.


◇ 재미난 어장 별칭

- 수심이 깊은 '수원지', 씨알 잘은 '양어장'

캄차카 근해에는 별칭이 붙은 소문난 어장이 많았다. '수원지'는 수심이 너무 깊어서 붙여진 이름이고, '양어장'의 경우 고기는 많은데 씨알이 잘고 노가리가 많아서 붙여진 것이다. '발사장'은 해군 장교 출신의 어느 항해사가 조업 중 배에서 투망할 때 무슨 영문인지 'NET let go'라 할 것을 'Fire(발사)'라고 외쳐서 그렇게 됐다고 한다. '야시장'은 주로 밤에 고기들이 많이 놀아서 야간에 배들이 야시장을 이루기 때문이다.

'아리랑고개'는 바다 밑바닥이 고르지 못하고 바위와 언덕이 있어서 그물이 잘 상하고, 재수 없으면 통걸이(그물을 통째로 잃어버리는 일)를 하는 수도 있어 그물끌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북태평양 조업 경력이 많은 선장들은 이들 외에도 자기만 아는 '비밀 어장'을 몇 군데씩 알고 있었다고 한다. 선장들은 그 비밀 어장의 위치를 기록한 '어장도'를 자신의 집문서만큼이나 소중히 간직했다고 한다.


강성민 소설가

사업기획·참여: 부산시 수산자원과, 부경대 산학협력단,(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